나는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이며 우리나라 공중보건의사(공보의)다. 근무한지 벌써 1년 반이 되어간다. 공보의 선배들이 3년은 지루한 시간의 연속일 것이니, 알차게 보내라는 말들을 내게 했는데 지금 내게는 그 말이 단 하루도 적용이 안되는 듯 하다. 하루하루가 빠르게 흘러가는게 너무나 아쉬울뿐이다.
그러나 작년에는 상황이 조금 달랐다. 공보의 생활이 힘들어서 1년이 빨리 지나 갔으면 하는 생각이 다소 있었던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나는 작년 4월부터 올해 4월까지 1년간 전라남도 완도군 소안도라는 밤이 칠흑같이 어두운 외딴 섬에서 공보의 업무를 수행했다. 일명 '섬 공보의'다. 서울까지 거리는 대략 편도 8~9시간이 걸린다. 이 섬에는 나와 성형외과 공보의 등 의사 2명과 한의사 1명, 치과의사 1명이 근무한다. 나는 성형외과와 번갈아가면서 24시간 근무를 했다.
이 섬에는 밤에도 응급환자가 상당히 많이 오기 때문에 레지던트 수련을 받을 때 처럼 밤낮없이 온갖 전화 문의와 응급환자를 해결해야 해서 근무강도가 상당한 편이다.
뇌출혈, 뇌졸중, 고혈압으로 인한 응급상황, 독사에 물림, 싸우다가 머리를 소주병에 찍힌 환자, 투석을 안받아 상태가 악화된 신부전 환자, 약먹고 자살기도한 환자, 수술이 필요한 복통환자 등 혼자 해결하기 벅찬 딱한 사정의 환자들이 많았다. 이런 환자들은 일단 수액 등 급한 처치를 한 후 해양경찰과 닥터헬기를 이용해 육지로 급히 이송하며 위급하면 직접 이송한다.
급성 후두개염 환자를 위해 바다를 달린 24시간
1년이 지난 지금 여러가지 응급상황이 머리에 남지만 그 중에서도 한가지를 꼽아보자면 12살 남자아이가 숨을 못쉬고 침을 질질 흘려서 온 케이스다. 진단은 전형적인 급성 후두개염(Acute Epiglotitis)이었다.
후두개가 염증으로 부풀어 올라 기도를 막는 병으로 중환자 치료와 응급 기관삽관이나 기관절개가 필요한 병이다. 내가 아무리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이지만 시설도 인력도 부족한 섬 보건지소에서 이런 중환자를 처치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도 이 섬의 중환자를 보고 미리 여러가지 응급키트 등을 구비해 놓은 것이 천만 다행이었다.
얼른 수액라인을 잡고, 산소통과 기관삽관 세트를 들고 작은 고기잡이배를 타고 바다를 미친듯이 달렸던 기억이 난다. 배가 너무 빠르다 보니 내가 바다로 튀어나갈 정도였다. 다행히 찬 바다 바람에 후두개의 염증이 다소 가라앉아 배안에서 기관삽관을 하는 일은 없었고, 육지의 큰병원 중환자실에 무사히 이송할 수 있었다. 환자는 7일 후에 완쾌돼 퇴원하였다. 힘들긴 했지만, 보람 있었던 기억으로 남는다.
사실, 이렇게 외딴 섬에서 환자를 살리면서 스스로 배운 것도 많고 뿌듯함도 있었기 때문에 보람이 있어 피로를 잊을 수 있었다.
그런데 정작 나를 힘들게 한 사건이 벌어졌다. 같이 근무했던 성형외과 의사가 점심시간 중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져 팔 부상을 당한 것이다. 8월부터 아무런 대체 인력 없이 나 혼자 일을 해야만 했다. 이에 더해 성형외과 의사가 부상으로 몇 개월간 공가를 받아내는 바람에 나는 혼자서 의료 공백을 채우면서 계속 격한 업무속에 지낼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의료원의 적절한 대책을 기대했지만 아쉬움만 남았다. 정작 남아서 의료공백을 힘들게 메우고 있는 나에게 만족할 만한 대책은 없었으며 공보의의 근무환경에 신경쓰기 보다는 어떻게든 문제가 커지지 않고 의료원 공무원들 입장에서 손해가 없는 방향으로 일처리가 되어갔다. 종종 수액을 맞으면서 진료를 볼 정도로 몸에도 무리가 왔다.
결국 기다리다 못해 현실 개선을 강하게 요구해 처우개선이 뒤늦게야 이루어 졌다. 사람의 본질, 믿음에 대한 것과 공무원의 행정 경직성에 대해 많이 생각해 본 시기였다.
"처방없이 전문약 팔고, 재고약 끼워팔고…비도덕 온상 약국
또 소안도에는 약국이 한 개 밖에 없는데, 이 약국의 행태가 비도덕적이어서 불쌍한 섬사람들이 고통을 토로하지만 개선이 되지 않고 있다. 의사처방 없이 전문의약품을 팔아서 환자에게 문제가 생긴 적이 있었고 환자의 병과 관련없는 재고약을 환자들에게 끼워서 처방해 달라고 나에게 요청하기도 했다. 게다가 약사 면허가 없는 약사 아내가 종종 조제를 하기도 했다.
참다 못해 내가 완도의료원에 신고를 했지만 필요악인 존재라 완도의료원도 손을 못 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신고할 당시에는 약사아내, 이장 등이 보건지소에 와서 앞으로 주의하겠으니 상급기관에 고발 하지 말아달라고 빌었지만 막상 완도의료원의 조치가 생각보다 약하다 보니 개선되지 않았다. 우리나라가 의료선진국이긴 하지만, 의료 취약지인 외딴 섬의 의료는 아직도 후진국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것을 몸소 느낀 1년이었다.
섬을 떠날 때, 애증이 겹쳐있는 복잡한 마음이 밀려왔다. 나의 성장과 어두운 기억이 공존해 있는 섬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후회는 없으며 내가 지난 1년간 그렇게 살아왔던 것처럼 앞으로 2년간의 공보의 생활도 한걸음 한걸음 원칙대로 뚜벅뚜벅 걸어가며 근무를 할 것이다.
이 섬에서의 여러가지 경험들이 앞으로 나의 공보의 삶, 그 이후의 삶에도 좋은 면역이 될 것이라 확신하면서 힘내면서 일하라고 완도의 특산물인 전복, 김 등을 한아름 가져와 주시곤 했던 섬 주민들, 나를 많이 도와주셨던 보건지소 여사님들, 언제나 내게 힘이 되었던 가족과 내가 사랑하는 여인을 추억하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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