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가운만 걸쳐도 그리 춥지 않다고 생각했던 때였다. 새롭게 주치의가 되는 각 과의 1년차들이 모여 오리엔테이션을 하기 위해 가까운 춘천으로 향했다.
버스에는 지난 시간을 함께 보낸 동기들이 타고 있었다. 모두가 익숙한 얼굴들이다. 버스에 타기 전까지 병동에서 드레싱을 하다가 왔지만 초췌한 얼굴과 부쩍 마른 행색이 작년과는 사뭇 다르다.
여유가 느껴지는 것이다.
2월 픽스턴 이후 성형외과가 아닌 다른 과 사람을 보는 것이 한 달 만이었다. 다들 원숙함과 그간의 경험과 꼼수, 의사로서의 자부심이 느껴졌다.
오리엔테이션 장소에 도착해 오전, 오후 수업을 듣고 저녁이 되니 뷔페가 차려졌다. 부지런히 먹고는 각 조마다 자기소개를 했다. 150여 명의 레지던트 중에서는 같이 인턴을 하지 않은 이들도 꽤 많았다. 1년을 쉬고 복귀한 선배들과 군의관 3년을 보내고 복귀한 선배들도 있었다.
자연스레 밤이 무르익고 술잔이 돌고 나니 ‘짝턴’이었던 이들과 만나 회포를 풀게 되었다. 전신 성형을 해달라고 농담을 하는 동기 누나들도 있었다. 종합병원 성형외과의 삶을 잘 알고 있는 동기들은 미용은 무슨 미용이냐며 당뇨발 의사라고 놀렸다. 무슨 소리를 들어도 즐거웠고 회상에 젖는 밤이었다.
1년이란 인턴 시간은 의과 대학 시절 '이런 의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실천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의사라는 명패를 가지고 생활했던 시간이기도 했다. 의사라는 무게가 무거웠지만 보람차면서도 재미있었던 1년이었다. 월급을 타서 부모님께 용돈을 드릴 수 있었고, 아름다운 인연을 만나 멋진 연애를 하면서 보내기도 했다.
비록 마지막 순간 말턴다운 삶을 살지 못해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성형외과 의사라는 새로운 명패 앞에서 힘들었지만 치열했던 날들로 기억될 것이다.
굿바이 인턴! 이제부터 다시 시작이다.
[그동안 인턴노트를 사랑해주신 분들게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본문에 나오는 '서젼(surgeon, 외과의)'을 비롯한 기타 의학 용어들은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실제 에이티피컬 병원에서 사용되는 외래어 발음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이 글은 박성우 의사의 저서 '인턴노트'에서 발췌했으며 해당 도서에서 전문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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