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연명의료법은 진료 관행을 어렵게 하고 비윤리적이다. 제도가 정착될 때까지 처벌조항을 유예하고 시범사업을 실시하자."
대한내과학회, 대한응급의학회부터 대한암학회, 한국임상암학회, 한국의료윤리학회,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 등 13개 학회는 25일, 공동 성명서를 통해 연명의료법의 한계점을 거듭 지적하며 시범사업을 촉구했다.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연명의료법)에 따르면 호스피스-완화의료는 오는 8월 4일부터 연명의료결정은 내년 2월 4일부터 시행한다.
복지부는 이와 관련해 시행령, 시행규칙 제정안을 입법예고 했지만 의료현장에 적용하기에는 문제점이 많다는 게 관련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들 4개 학회는 의료계가 참여하는 협의체를 통해 명확한 행정지침을 마련하고 제도가 정착할 때까지는 시범사업을 실시함과 동시에 처벌조항을 유예할 것을 요구했다.
그렇지 않으면 혼란만 야기할 것이라는 게 이들의 우려다.
가장 큰 우려는 비윤리적인 규제.
자료제공: 한국의료윤리학회 등 공동성명서
환자가 연명의료계획서에 직접 서명 또는 기명날인할 수 없는 경우 녹취해 기록하고 관리기관에 통보해야한다.
가령,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에게 '곧 임종할 것 같으니 인공호흡기를 원하는지'를 녹음기를 갖다대고 녹취를 해야한다는 얘기다.
이를 두고 이들 학회는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한다는 법의 취지를 벗어나 환자의 인권과 사생활을 침해할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차라리 이 같은 절차를 폐지하고 의무기록으로 갈음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게 이들 학회의 제안이다.
또한 과도한 서식과 처벌도 문제점 중 하나.
이들 학회는 "과도한 처벌과 각종 서식은 의료진의 질적인 환자 돌봄을 방해할뿐 아니라 입법 취지와 반대로 의료인들의 임종기 판단을 지연시킬 것"이라면서 "이는 연명의료가 조장되거나 지속되는 불행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와 함께 담당의사에서 전공의를 배제하는 것은 오히려 적기에 환자를 위한 최선의 판단을 놓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자료제공: 한국의료윤리학회 등 공동성명서
가족과 대리인의 역할을 배제하는 것도 문제다. 가족이 없는 독거노인, 가족이 있지만 연락이나 논의 참여를 거부하는 가족의 경우 대리인은 환자의 권익보호를 위해 절대적일 수 있다는 게 학회 측의 설명이다.
호스피스 이용신청 절차에 있어서도 법률이 허용한 가족 또는 지정대리인이 신청할 수 있도록 해야하는데 현행 법상에선 가족이 없는 경우 호스피스 이용이 불가능 할 수 있다고 봤다.
이밖에도 하위법령에 연명의료결정과 이행에 대한 세부지침을 명시하고 있지 않은 점,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에서 요구하는 심폐소생술, 정부 가이드라인의 심폐소생술금지 (DNR, do-not-resuscitate) 규정과 연명의료법 간의 명확한 행정해석을 요구했다.
이들 학회는 "입법 취지는 말기환자와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가 보다 인간적이고 품위있는 의료를 받을 수 있고 본인이 원하면 연명의료를 거부할 수 있도록 법적으로 보장한 것인데 지금의 연명의료법은 취지와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연명의료법과 하위법령의 표현 및 기준이 애매한 부분이 많아 그 해석에 혼선이 있다"면서 "특히 처벌에 대한 두려움으로 불필요한 연명의료를 조장할 수 있어 처벌을 유예하고 시범사업이 선행돼야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한편, 이번 공동성명서에는 대한가정의학회, 대한간학회, 대한감염학회, 대한결핵및호흡기학회, 대한내과학회, 대한심장학회, 대한응급의학회, 대한암학회, 한국정신종양학회, 대한중환자의학회, 한국의료윤리학회, 한국임상암학회,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 등이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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