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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형외과노트| 섬마을 어미와 구순구개열 아기

박성우
발행날짜: 2018-04-26 06:00:33

우리가 몰랐던 성형외과의 세계…박성우의 '성형외과노트'[17]

섬마을 어미와 구순구개열 아기

섬마을 언청이 어미는 그날 밤 뜬 눈으로 지새웠다.

아침 7시 50분, 얼마 후면 100일도 되지 않은 자식을 수술실로 보내야 한다.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기는 연신 입만 다실 뿐이다.

새벽 3시부터 쫄쫄 굶어서 배가 고플 만한데 보채지 않으니 고마울 따름이다. 하늘색 일회용 모자와 마스크를 쓴 어미는 아기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어머니, 성형외과 선생님 오셨어요. 가운 다 입으셨으면 같이 들어갈게요."
"잠시만요. 들어갈게요. 그대로 따라가면 되나요?"

어미는 호들갑스럽게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

"수술실까지 같이 들어갈 수 있는 거죠?" 다시 되물었다.
"네, 저랑 같이 들어가셨다가 아기 마취 시작하면 제가 모시고 다시 나올 거예요. 아기 잘 안으셨나요?"

곧 치렁치렁한 수액 주머니와 줄을 들고 의사 선생님이 먼저 앞장섰다.

한여름이었지만 수술실 공기는 제법 서늘했다. 집에서 챙겨온 포대기에 아기를 단단히 안고 어미는 따라갔다.

수술실은 아기 엄마에게도 낯선 풍경이었다. 초록색 옷을 입고 마스크를 쓴 이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여기저기 놓인 기구들 때문에 어미는 어정쩡하게 입구에 서 있었다.

"어머니, 아기 데리고 여기 침대 가까이 오세요." 수술대 머리맡에 있는 마취과 선생님이 말했다."아기 목 잘 받치고 계세요. 이제 마취 시작하고 아기가 잠들면 고개가 확 젖혀질 수 있어요. 그럼 환자 확인합시다."

낯선 환경이 신기한지 아기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 두리번거린다. 의사와 간호사들이 아기가 얌전하고 귀엽다며 웃었다.

그 모습에 한결 마음이 놓인다. ‘그래. 잘해주실 거야.’ 어미는 마음 속 주문을 외웠다. 아기의 목이 갑자기 무겁다.

"어머니, 아기 마취 시작되었어요. 여기 침대에 잘 눕히시고요. 저희가 안전하게 잘 해드릴 테니 걱정마세요."

마취과 선생님이 아기 얼굴에 투명한 마스크를 곧이어 씌웠다.

"보호자분, 저 따라오세요. 제가 다시 대기실 입구까지 모셔다 드릴게요."

같이 마중 나온 선생님이 어미를 이끌자 어미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선생님, 잘 부탁드릴게요. 잘 부탁드립니다."

어미는 죄지은 사람마냥 연신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주체할 수 없는 울음과 함께 쥔 채 수술실을 나가는 순간까지 인사를 멈추지 못했다.

배웅하는 선생님은 어미에게 위로와 안심의 말을 건넸다. 하지만 어미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흐르는 눈물을 꾹꾹 참으며 발길을 옮길 뿐이었다. 차마 지나온 복도를 다시 뒤돌아 볼 수가 없었다.

'그래. 다 무사히 잘 끝날 거야.' 마음속으로 연신 되뇌고 있었다.

아기는 서른 중반에 겨우 가진 자식이었다. 섬마을 어미 역시 언청이였다. 어릴 적 수술을 했다지만 여전히 인중 너머 뚜렷한 상처가 흔적처럼 남아있었다.

임신을 했을 때 얼마나 기뻐했던가. 아들인지 딸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자신의 몸에 새끼를 잉태했다는 것이 스스로 뿌듯했다. 몸에 좋다는 것은 모두 먹었고 태교도 열심히 했다. 멀리 배 타고 나와 진찰받은 산부인과에서는 아기가 건강하다고 했다.

초음파 사진 속 엄지손가락을 야무지게 물고 있는 아기의 얼굴이 어미의 마음을 한시름 놓게 했다.

'설마 아기도 구순열은 아니겠지.' 마음속 불안감을 애써 떨쳐냈다.

하지만 태어난 아기는 어미를 똑 닮아 윗입술에 틈새가 있었다. 태교로 간간이 읽은 책에서 구순열은 유전 비율이 높지 않다고 봤었는데, 어미의 마음이 무너졌다.

아이가 태어난 날 밤, 어미는 남편을 붙들고 울었다. 자신이 가지지 못했던 멀쩡한 입술을 그렇게 아기에게 주고 싶었건만 모든 것이 자기 잘못인 것 같았다.

"여보. 미안해요. 아기한테도 미안하고 당신한테도 미안해요. 나 때문에 아기까지 저렇게 됐나 봐. 당신도 나 같은 여자 만나서 자기 자식이 언청이라서 어떡해요. 미안해요."

일주일이 지났을까, 마음을 추스린 섬마을 어미는 남편과 함께 백방으로 병원을 알아보았다. 비록 아기가 자신을 닮아 언청이일지라도 제대로 수술받고 치료해주고 싶었다. 학교에서도 놀림 당하지 않고 스스로 부끄러워 고개 숙이고 다니지 않고 쑥쑥 컸으면 하는 욕심이 생겼다.

입소문을 통해 수술을 잘하고 많이 한다는 병원을 찾아 배를 타고, 기차를 타고 서울에 도착했다.

"어머니 지금 오시면 아기 수술 스케쥴 잡기가 매우 힘들어요."

그렇게 찾은 박사님이 난색을 표했을 때 어미의 마음은 덜컥 내려앉았다.

"그래도 어떻게 안 될까요? 제가 박사님한테 수술받게 하려고 입소문 듣고 섬에서 배 타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꼭 좀 부탁드릴게요."

혹여 수술을 못해준다고 할까 봐 어미의 마음은 바짝 타들어갔다.

"예. 일단은 알겠습니다. 보통 구순열 아기들은 부모님들이 산전 초 음파를 보고 아기 태어나기 6개월 전에 미리 수술 스케쥴을 잡아서 그래요. 아기 같은 경우는 제때 수술 해주려면 당장 다음 달에 해줘야 하거든요."

"늦어도 괜찮습니다. 꼭 좀 부탁드립니다." 옆에 서 있던 남편이 거들었다.

"일단 수술 일정을 조절해볼게요. 아기는 다행히 구개열은 없으니깐 모유 수유 가능하면 다 하시고요. 잘 키워서 몸무게 5킬로그램이 넘도록 해보세요. 그래도 아기가 얌전하고 착하네요."

섬마을로 돌아온 뒤 병원에서 전화오기만을 기다린 시간은 얼마나 길었던가. 남편은 바로 수술해줄 수 있는 다른 병원으로 가자고 했지만 순하디 순한 어미도 이것 만큼은 양보할 수 없었다. 치료만큼은 최고로 해주고 싶었다. 이것마저 안하면 견딜 수 없었다.

2시간 남짓이었을까. 어미는 복도에 서서 앉지도 못한 채 수술이 끝나기만을 빌었다. 1분이 1년 같던 시간이 흐르고 수술이 무사히 끝나 아기가 회복실로 나왔다고 간호사가 전했다. 배냇저고리와 포대를 꼭 쥐고 떨리는 마음으로 아기를 보러 회복실에 들어섰다.

"어머니. 수술은 무사히 잘 끝났습니다. 교수님께서 아주 예쁘게 잘 해주셨어요. 일단 통증 때문에 아기가 많이 보챌 수 있는데 잘 달래주세요."

얌전하던 아기가 목소리도 나오지 않는지 입만 뻐끔거리며 울고 있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해요."

섬마을 어미는 또다시 벅차오르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수술이 끝 나고 5일 뒤, 퇴원했던 아기와 함께 부모는 다시 서울로 상경했다.

남아있던 실밥을 뽑고나니 아기가 입술을 예쁘게 오므렸다. 섬마을 어미의 눈에는 아기의 모습이 사랑스러울 뿐이었다. 저 조그만 것이 어떻게 수술을 견뎠을지, 그 예쁜 입술로 옹알이를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어머니, 수술은 잘 끝났고 이제는 흉터 관리를 잘 해주셔야 돼요. 여기 선생님들이 흉터 관리하는 거 자세히 설명해줄 테니 다음에 오실 때까지 잘 해서 오세요. 엄마가 신경 쓰는 만큼 아기 흉터도 좋아져요. 아시겠죠?"

박사님이 아기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엄마를 쳐다보며 말씀하셨다.

"그리고 아기 태어나고 사진 안 찍으셨을 텐데, 이제부터는 각도를 바꿔서라도 많이 찍어주세요. 흉터 보기 싫다고 안 찍지 말고요. 아시겠죠?"

"네, 알겠습니다. 박사님. 아기랑 같이 사진 찍고 싶었어요."

그제야 섬마을 어미의 얼굴에는 활짝 꽃이 피었다.

※본문에 나오는 의학 용어들은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실제 에이티피컬 병원에서 사용되는 외래어 발음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이 글은 박성우 의사의 동의를 통해 그의 저서 '성형외과 노트'에서 발췌했으며 해당 도서에서 전문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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