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한창 유행했던 농담 중에 '삼성' 아이러니라는 말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재벌 개혁 등을 외치며 삼성그룹을 비판하지만 자녀가 삼성에 입사하면 동네 잔치를 한다는 신조어로 '웃픈'(웃기지만 슬픈) 이야기다.
마찬가지로 '법관' 아이러니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사법부를 불신하지만 자신들의 자녀는 판검사가 되기를 원한다는 아이러니다.
의료계에서도 언젠가부터 이러한 아이러니가 존재하고 있다. 아덴만의 영웅 이국종 교수에 대한 아이러니다.
많은 의사가, 국민이, 의대생들이 환자를 살리기 위해 모든 것을 반납하고 희생하는 이국종 교수를 응원하고 열광하지만 오히려 칼을 잡는 의사들은 점점 사라지고 있는 아이러니다.
실제로 얼마전 내년도 전공의 모집에서도 이같은 경향은 뚜렷하게 나타났다. 대표적인 기피과인 흉부외과, 외과, 비뇨기과, 산부인과, 소아과 등은 여전히 미달을 면치 못했다.
반면 전통적으로 인기를 자랑하는 피부과, 안과, 성형외과를 비롯해 새롭게 떠오르는 정형외과, 재활의학과, 영상의학과 등은 여전히 치열한 경쟁을 보였다.
사실 속칭 칼잡이, 즉 서전으로 불리는 외과 의사를 기피하는 현상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예산 지원부터 수련제도 변화까지 다양한 대안을 내놓고 있지만 그 어느 것도 약발을 받지 못했다.
오히려 이같은 기피 현상이 더욱 악화되며 대가 끊길 위기에 놓인 일부 전문과목들은 끝없는 한숨으로 망연자실하게 이러한 상황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경향에 대해 여론의 반응은 냉담하다. 이러한 뉴스가 나오고 소식이 전해지면 그 댓글은 늘 부정적인 단어들로 가득찬다.
'의사가 사람을 살릴 생각을 해야지 돈만 따라가다니'라는 댓글은 굳이 찾아보지 않아도 될 정도로 넘쳐나고 '돈도 많이 벌면서 편한 거만 찾는다'는 내용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는 의사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생각을 그대로 투영한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응급상황에 처했을때 이국종 교수처럼 경험 많은 전문의가 병원에 상시 대기하다가 자신을 살려주기를 원한다.
그 의사의 행위는 완전무결하게 아무런 실수도 없어야 하며 자신에게 꼭 필요한 검사만을 진행해 불필요한 비용 낭비도 없어야 한다.
이 모든 조건에 부합되지 않으면 그 의사는 수술방을 떠나 법정에 서야하고 때로는 구속이 되는 상황에 놓인다. 최근에 잇따라 의사들이 구속된 사례들이 이를 증명한다.
그렇기에 의사들은 칼을 놓는다. 이국종 교수처럼 열렬한 응원과 지지속에서 멋지게 환자를 살려내는 의사를 꿈꾸고 들어온 젊은 학생들은 수갑을 차는 선배들을 보며 좌절한다. 경쟁을 해서라도 속칭 '피'를 보지 않는 의사가 되려 애쓰는 이유다.
이국종 교수가 국민적 영웅이 되기 전에도 수차례 그를 만나러 갔던 길은 충격 그 자체였다.
그는 365일 중 360일, 24시간 수술복을 입고 있었고 책상과 연구실에는 먹다 남은 김밥과 컵라면 용기가 가득했다. 언제 뜯었는지 모르는 한입 베어문 샌드위치, 연구실 구석에 놓인 접이식 침대는 그의 생활을 굳이 보거나 듣지 않아도 충분히 예상하게 했다.
만약 내 아버지가, 내 남편이, 내 아들이 이국종 교수와 같은 삶을 살고 있다해도 진심으로 박수를 보내며 희생을 강요할 수 있을까.
아이러니는 여기서 출발한다. 국민 영웅 이국종 교수가 몇 십번이나 피를 토하며 외친 것도 '지지'가 아니라 '지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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