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 정신건강복지법 시행규칙 강행 예고 입원실 규격 이격 내용 핵심 학계 의료계 병동운영 비상...환자‧직원 무더기 퇴원‧퇴사 불가피하다 토로
"입원 환자 절반이 퇴원해야 한다. 대책도 없이 무리하게 강행하고 있다."
정부가 입원실 규격을 두 배 가까이 넓히고 병상 간 이격거리를 조정하는 방안을 발표하자 일선 정신의학계가 발칵 뒤집혔다.
이들은 정부 발표안이 그대로 확정될 경우 환자 절반이상이 퇴원해야 할 처지에 놓이는 데다 덩달아 직원들도 실직상태에 놓일 수 있다고 하소연한다. 심지어는 단체행동까지 보일 조짐이다.
27일 의료계에 따르면, 최근 보건복지부는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에 관한 법률'(이하 정신건강복지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 했다.
개정안의 내용은 이렇다.
우선 정신병원의 입원실 면적 기준을 1인실은 6.3㎡(2평)에서 10㎡(3평)로, 다인실은 환자 1인당 4.3㎡(1.3평)에서 6.3㎡(2평)로 강화한다. 입원실 당 병상 수를 최대 10병상(현 입원실당 정원 10명 이하)에서 6병상 이하로 줄이며, 병상 간 이격거리도 기존엔 없었지만 1.5m 이상 두도록 변경했다.
또한 복지부는 개정안을 통해 입원실에 화장실, 손 씻기 및 환기 시설을 설치하도록 하고, 300병상 이상은 격리병실을 별도로 두도록 했다.
단서로 복지부는 신규 정신병원에는 이를 즉시 적용하고, 기존 의료기관은 2022년 말까지 기준 충족하되, 해당 기간 내에는 입원실 당 병상 수를 최대 8병상, 병상 간 이격거리 1m 로 적용하기로 했다.
취재 결과, 복지부는 국정감사 이 후 시행규칙 발표 과정에서 두 차례 신경정신의학회와 정신의료기관협회 등과 간담회를 가진 것으로 확인됐다.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코로나19에 따른 집담감염 방지를 위한 정신병원 시설개선 권고를 받은 뒤 즉각적인 후속조치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두 차례 의견수렴 과정에서 관련 의료단체들은 '현실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방안'이라고 강력하게 반대의사를 밝혔지만 복지부는 일단 입법예고 후 추가적인 의견수렴을 거쳐 확정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복지부 측은 "이번 개정안은 청도대남병원, 대구 제2미주병원, 서울 다나병원 등 정신병원의 코로나19 집담감염 발생에 따라 입원실 면적 확보, 병상 수 제한, 300병상 이상 격리병실 의무화 등 감염 예방관리를 철저히 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개정안 강행 시 입원환자 무더기 퇴원 불가피"
개정안이 발표되자 의료계는 정신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이 무더기로 퇴원하는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입원실 면적과 병상 당 이격 거리가 조정될 경우 환자 입원병상 규모가 감소하는 것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정신의료기관협회에 따르면, 심평원 2019년 의료급여 입원환자 심사실적 자료를 바탕으로 병실당 입원환자 정원을 10명에서 6명으로 줄일 경우 기존 한 해 1621만 7564명에서 648만 7026명으로 감소될 것으로 보인다. 이를 1일 평균으로 하면 4만 4432명에서 1만 7773명으로 줄어든다.
결국 입원환자도 40% 감소하는 데다 병상당 이격거리도 조정되는 만큼 절반 가까이 입원환자가 줄어들 수 있다는 계산이 가능하다.
한 지방의 정신병원장은 "다인실 병실 기준을 6인실로 조정할 경우 40% 환자가 줄어드는 데다 입원실 면적도 넓어지고 그에 따른 병상 이격도 넓어진다"며 "이 때문에 정신병원의 병상수는 절반가까이 감축이 불가피하다. 기존의 식당과 강당 등을 입원실로 돌리는 방안이 있겠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입원환자만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병원에 종사하는 직원들의 무더기 퇴사도 불가피할 것"이라며 "입원환자도 줄어드는 만큼 의사와 간호사, 보호인력 등도 퇴사가 불가피할 것이다. 즉 정신병원 환자와 종사자 모두가 피해 받게 될 것"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정신의료기관협회 측은 논의 과정에서 일반 병원과의 개정안 적용에 있어 차이가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2017년 개정된 의료법 시행규칙에서 일반 병원급의 경우도 이번 정신건강복지법 시행규칙과 같은 입원실 면적과 병상당 이격거리를 적용했지만 의료기관 적용을 두고선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당시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 절차 이전에 개설된 병원은 종전에 시설규격을 따르기로 했던 것과 달리 이번 정신건강복지법 시행규칙 개정에서는 모든 정신병원이 시설규격을 바꿔야 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정신의료기관협회 관계자는 "일반 병원과 시설규격 적용에 있어 형평성이 맞지 않다"며 "결국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엄청난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단계적인 적용도 어려운데 복지부는 향후 2년 안에 병원 입원실 모두를 개조하라고 시행규칙에 못박지 않았나"라고 허탈해 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신경정신의학회도 즉각적인 대응에 나설 채비를 하고 있다. 이번 시행규칙 개정에 대응하기 위해 긴급 이사회를 가지기로 했다.
신경정신의학회도 이번 복지부의 시행규칙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것인데, 가뜩이나 대형병원 폐쇄병실마저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입원환자들이 갈 곳을 잃을 처지에 놓여있다고 보고 있다. 의료급여 환자가 대다수인 정신질환자의 특상 상 퇴원한다고 해도 뚜렷하게 머물 수 있는 시설이 부족하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실제로 2018년말 기준 심평원 상급종합병원 정신과 폐쇄병동 현황에 따르면, 43개 상급종합병원 폐쇄병동 병상 수는 전체 857개로 2011년 1021개에서 200여개 감소했다.
신경정신의학회 최준호 총무이사는 "코로나19 상황에서 정신병동의 이격거리 조정 등은 필요한 것은 맞다. 하지만 너무 갑작스럽게 적용하는 터라 의료기관들의 대비가 부족하다"며 "이대로 그대로 적용된다면 입원환자들이 갈 곳이 사라진다. 대학병원도 폐쇄병동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대안을 마련해놓고 적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일단 학회에서도 긴급 이사회를 가지고 이 상황을 논의할 예정"이라며 "정신병동 관련 개정안이지만 의원급 의료기관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병동을 운영하는 의원급 의료기관이 많은데 이번 개정안의 영향으로 병동 운영을 접겠다는 곳이 상당수"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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