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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라이센스를 따는 과정은 국가마다 다른데 각국의 방법은 나름대로의 장단점이 있어서 우열을 가리는 것이 어렵고 무의미하다. 그럼에도 사람마다 선호도가 있을텐데 필자는 미국식 교육과정과 문화가 정말 부럽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교육과정 덕분에 미국에는 딴짓하는 의사가 없기 때문이다. 각자 본인의 관심분야와 재능을 살려서 나름대로의 커리어를 쌓고 있을 뿐이다. 딴짓하는 의대생이라고 불리고 싶지 않다. 그래서 미국식 교육과정과 문화가 참 부럽다.
우리나라 의대에서는 예과 2년에 본과 4년을 마치고 의학사를 취득할 수 있다. 학교마다 학사일정이 조금씩 다른데 결국 6년안에 의학사(MBBS)를 취득한다. 미국처럼 학부 4년 + 본과 4년 과정을 통해 의사를 배출하는 의학전문대학원 시스템을 도입해보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여러가지 이유로 지금은 폐기 수순을 밟고 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전문대학원생들이 본인들의 학부 전공과 경험을 살려 MD - Ph.D 과정을 밟거나 다양한 분야로 진출하는 것을 기대했는데 나이가 많은 전문대학원생들이 전문의(Residency) 과정도 밟지 않고 서둘러 개원을 하는 통에 기대했던 결과가 나타나지 않아서 정책 실패로 간주하게 되었다나 뭐라나. 의학전문대학원 출신들이 배출된게 2009년부터 였으니 이제 갓 10여년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정책 방향을 바꾼다는 것이 못내 아쉬울 뿐이다. 제1회 졸업생들이 전문의 과정을 마치고 펠로우까지 밟았다면 이제야 본격적으로 사회에서 영향력을 드러내기 시작할텐데, 국가의 백년대계여야 할 교육정책이 너무 가볍게 움직이는게 아닌가 싶다. 의전원 제도를 도입할 때 부터 신중하게 고민하지 않았으니 이번에도 이렇게 쉽게 정책을 바꿀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본론으로 돌아와 미국에서는 의대 본과에 진학하기 위해서 학사 학위를 취득하고 예과 과정(Pre-Med)에 해당하는 과목들을 수료해야 한다. 능력과 의지가 있다면 2년안에 학사과정을 마치고 의대에 진학하는 것도 가능하고, 대학교 입학 성적에 따라서 특정 의학전문대학원에 진학을 보장받는 프로그램도 존재한다. 덕분인지,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미국 의대생들은 예과 과정 중에도 쉬지 않고 공부하고 각자의 꿈을 향해 다양한 경험을 쌓는다. 그렇게 학위 콜렉터가 탄생한다. 결국엔 의사로 살아갈건데 뭐하러 다른 전공을 공부하느라 시간을 낭비하냐는 궁금증이 생긴다면 Dr. Kalanithi가 쓴 '숨결이 바람될 때'를 읽어볼 것을 추천한다. 그는 스탠포드에서 영문학 학/석사, 케임브리지에서 철학 석사, 예일대 의대에서 메디컬 닥터(MD), 스탠포드에서 신경과 Residency 과정을 밟았다.
미국 의사 중에는 학위 콜렉터만 있는게 아니라 경력 콜렉터(?)도 있다. 애플헬스(Apple Health) 디렉터 Dr. Sumbul은 컴퓨터공학 학사 취득 후 IBM, 월트디즈니, ABC-TV, 보건의료정책 연구재단, 스탠포드 흉부외과 전문의 과정을 거쳐 스탠포드 혁신전략실 부실장을 역임하였고 애플에 합류해서는 Research Kit, Health Kit, Care Kit을 만들고 Apple Watch Series 6를 선보였다.
이렇게 미국 의대생들은 모두가 다양한 백그라운드를 가졌기 때문에 의학 외 다른 분야에도 관심을 갖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한 풍토로 자리잡고 있다. 의사가 책을 쓰고, 유튜브를 하고, 발명을 하고, 창업을 하고, 정치를 하고, 식당이나 헬스장을 운영한다고 해서 딴짓하고 있다고 보지 않는 것이다.
딴짓을 하기 위해 휴학을 할 필요도 없다. MD/MBA 복수학위 과정을 통해서 의대를 다니면서 경영학 수업을 듣고 졸업하기 전에 회사에 인턴을 나가거나 창업을 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장려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펜실베니아대학(Upenn)에서는 본과 4학년때 부터 2년 동안 병원 실습과 MBA과정을 동시에 밟고 산업체에서 근무하면 MD/MBA과정을 5년만에 취득할 수 있는 길을 제공한다 (출처: https://www.med.upenn.edu/).
또 다른 예시로 하버드에서는 본과 3학년 때 부터 6년간 임상실습과 박사학위 과정을 동시에 밟고 하버드에서 MD 학위, MIT에서 Ph.D 학위를 받을 수 있는 기회도 있다 (출처: https://www.hms.harvard.edu/).
이렇게 미국에서는 임상의사 이외의 길을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인정해주니 병원 밖에서의 커리어를 꿈꾸는 의대생들이 주목을 받거나 눈총을 받을 일도 없고 나름대로의 커리어로 존중 받을 수 있어 부러울 따름이다. 눈치보지 않고 나만의 길을 만들어가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교육과정과 문화가 뒷받침 되어준다면 좋겠다. 그리고 국가 주도의 대대적인 변화가 아니라 대학과 민간 주도의 작은 혁신들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나는 '딴짓'하는 의사가 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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