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실 없는 도의적 합의에도 상병발생 확인서 근거로 소송 포착 의료계 "구상권 결정 전 의료과실 판단시 내부 규정 마련 필요"
병원과 환자 사이 발생한 의료분쟁에서 양 측은 '합의'로 마무리 지었을지라도, 의료기관 입장에서는 일어날 수도 있는 다음 단계에 가슴을 졸여야 한다. 분쟁과 합의 사실을 인지한 건강보험공단이 '구상금' 청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의료분쟁 과정에서 의료기관이 환자와 합의를 하고 환자에게 지급한 '합의금'이 결국은 건보공단에게 타간 요양급여비를 환자에게 돌려준 셈이 되니 부당이득금이라고 보고 건보공단이 의료기관에 요구하는 것이다.
의료진의 과실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요양급여비를 토해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 몰린 의료기관 사이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실제 경기도 A중소병원은 최근 2~3개월 사이 건보공단과 두 차례나 구상금 소송을 해야 했다. 결론은 건보공단의 '패'. 법원은 건보공단이 제출한 증거 만으로는 의료과실을 단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기각 결정을 내렸다.
구상금 소송 금액도 각각 600만원, 1300여만원 수준의 소액이다. 소송 과정에서 건보공단은 상병발생경위 확인서 등을 증거로 제출했다.
이 병원 법무 담당자는 "환자에게 민원이 들어왔고 환자와의 신뢰관계를 고려해 도의적인 책임을 다한다는 차원에서 진료비를 감면했다"라며 "의료적 과실이 있는 게 아니라서 합의서도 따로 쓰지 않았는데 건보공단은 상병발생경위 확인서를 법원에 제시하며 병원에 잘못이 있어서 감면해준 것으로 보고 있는 것 같았다"라고 비판했다.
이어 "의료과실 여부가 확실하지 않은 상병발생경위 확인서만으로 소송을 제기하는 것을 보면 내부적으로 구상금 청구 결정에 명확한 기준이 있는 것도 아닌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경기도 B대학병원 법무 담당자는 "의료소송을 하는 것만으로도 병원 입장에서는 부담이 상당한데 건보공단과 또 법적으로 다퉈야 하니 답답한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과실 여부 관계없이 소송부터 제기하는 것은 행정낭비"라고 털어놨다.
그렇다 보니 구상금 소송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매뉴얼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현재 건보공단의 구상금 결정 업무처리 내부 매뉴얼을 보면 상병발생원인 통보서에 상해요인이 있는 것으로 확인되면 현지출장 등을 통한 사고내용을 확인해 처리한다. 사고내용 등을 조사한 결과 부당결정으로 확인되면 전산입력 후 부당이득금(구상금) 결정통보서를 출력해 의료기관에 발송한다.
구상금 결정 전 필요하면 변호사 자문을 구할 수 있고 의료사고에서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과실과 인과관계 증명은 소송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A병원 관계자는 "소송을 통해서만 의료과실이 없는 사건에 대한 종결 처리가 가능하다는 점은 다소 무모해 보인다"라며 "건보공단 산하에 일산병원도 있고 의료분쟁조정중재원도 있는 만큼 의료자문을 받을 수 있는 절차를 내부적으로 마련해 굳이 소송을 하지 않고도 해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건보공단 구상금 소송 연 1100여건 수준 "사실관계 입증 근거 필요"
하지만 구상금 소송 당사자인 건보공단은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요양기관의 부당행위를 인지한 후에야 구상금 청구 등 사후 조치에 나서기 때문에 명확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건보공단이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 알리오에 공개한 소송 현황에 따르면 건보공단이 제기한 구상금 소송은 평균 1100여건 수준이었다. 2016년 357건에서 2017년 1485건으로 급증했으나 이후 1100~1200건 사이에 머물러 있었다. 지난해 구상금 소송은 1160건이었다.
사실 이 중 건강보험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크지는 않지만 지역본부마다 소송전담팀을 두고 있는 만큼 실적 쌓기 차원에서라도 구상금 소송은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라는 게 병원계 시선이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구상금 청구는 지역본부 소송 전담팀 차원에서 하고 있다"라며 "통상 구상금 청구를 위해서는 사실관계 입증을 해야 하는데 건보공단이 직접적으로 조사하는 것보다는 법원 판결이나 수사기관 결과를 보고 판단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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