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격의료. 수십 년간 의료계의 뜨거운 화두였고 2022년 현재에도 여전히 뜨거운 주제입니다. 아직 공식적, 합법적으로는 원격의료는 허용되고 있지 않지만 한편으로는2020년 2월 코로나 상황이라는 비상시국에서 한시적으로 허용된 ‘비대면진료’라는 이름의 변형된 원격진료가 벌써 2년 반이라는 기간 동안 진행 중입니다.
축적된 경험과 기술을 바탕으로 이제 어느 정도 정리된 우리나라의 원격의료의 틀을 만들 때가 됐다는 목소리가 많은 힘을 얻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2022년은 원격의료에 대한 의료계의 자세의 큰 전환이 있었습니다. 제74차대한의사협회 대의원회의 결정에 따르면‘의료사고 및 책임, 적정수가 보장, 1차 의료기관 중심, 회원의 권리를 보장한다는 전제 하에 집행부가 ‘의협 주도로 비대면 진료에 대한 연구 및 시범사업'을 검토하고 회무를 추진할 수 있도록 집행부에 위임한다.’라고 입장을 정리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의협 집행부가 주도권을 가지고 원격의료를 주도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물론 찬성을 표명한 것은 아니었지만 과거 ‘결사반대’를 외치던 입장과는 전혀 다른 방향성을 보여주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021년 대의원총회에서 원칙적인 반대 입장의 부전으로 ‘시대적 변화에 따른 전향적 준비가 필요하다’는 내용이 추가된 이후 한 발 더 나아간 결과였습니다.
2021년 대의원회 결의 이후 서울시의사회 산하 원격의료연구회가 2021년 7월 발족될 수 있었고 본 연구회에서 ‘원격의료에 대한 공부’부터 시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의협 산하단체에서 공식적으로 원격의료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는 연구회가 만들어진 것은그 자체로 큰 의미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는 원격진료 혹은 원격의료,디지털 헬스 등을 주제로 하는 많은 학술모임들이 결성되고 있는 현실에서 그리고 관련 산업계에서도 원격의료산업협의회 등 다양한 단체를 만들어가는 시점에 시의적절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활동들은 우리 사회에 여러가지 이유로 원격의료가 성큼 다가와 있음을 느끼게 하는 움직임이었습니다.
원격의료는 다양한 영역을 포괄하고 있어 하나로 정의하기가 쉽지 않습니다.원격의료의 대명사처럼 불리는비대면 진료도 크게 화상 진료와 전화 혹은 문자정보로 진료가 이루어지는비대면 진료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여기에 의료진 간의 의료자문, 환자 정보 모니터링 등도 원격의료의 중요한 부분입니다.
환자를 직접 보지 않고 이루어지는 모든 의료행위를 원격의료로 정의한다면 더 많은 영역이 포함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다양한 영역을 포함하고 있는 원격의료는 각 임상과와질환에 따라 적용 가능한 범위에 대한 개인적인 또, 집단적인 이견이 존재할 수밖에 없습니다. 대부분 반대부터 어느정도 찬성까지의 범위에서 의사들의 의견이 존재한다고 해도 흑백논리로 찬,반을 묻는다면 결국 반대라고 답할 수밖에는 없는 상황이 이어져 왔습니다.
환자의 입장에서는불가피한 경우 휴가 등을 내서 병원을 방문하지 않고,본인이 원하는 시간에 진료를 받고, 필요하다면 약을 배송까지 받을 수 있는 비대면 진료를 마다할 이유가 없습니다. 산업계에서는 빅데이터와 AI의 활용,5G 인터넷,화상회의 모듈의 대중화 등 기술적으로도많은 발전을 이루어 왔기 때문에 이제는 비싼 비용을 들이지 않고서도 화상진료 등 비대면 진료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정부 측은 새로운 산업 혹은 새시대의 먹거리로 판단하고 원격의료의 본격적 시동을 위한 군불을 지피고 있습니다.국회는 다양한 방법으로 원격의료 관련 법안 들을 입안하면서 사회적 동의를 구하고 있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많은 나라에서 원격의료를 해왔거나 도입하고 있습니다.영국,인도,캐나다,미국,중국, 일본 등 다양한 나라에서 여러가지 형태의 원격의료 시스템이 가동되고 있고 확장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의료제도는 국가별로 사회적,문화적,경제적 등 다양한 차이가 반영되어야 하므로 다른 나라에서 하고 있다고 우리도 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기는 어렵습니다만 참고는 할 수 있을 것입니다.여러 나라들의 예에서 간과하지 않아야 할 점은 원격의료가 도입되었을 뿐 의료의 주류가 되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특정한 경우와 가능한 범위를 규정하는 등의 방법으로 환자의 안전성을 도모하고 있는 것도 공통점입니다.또한 COVID-19 상황이라는 특수성도 고려할 사항입니다.
왜 여러모로 편리하고 기술적으로도 이제는 받아들일 수 있는 원격의료에 대한 의료계의 저항이 있는가를 그저 밥그릇 싸움으로 치부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논의하는 자리가 이제는 만들어져야 합니다. 의료계가 우려하는 부분을 많은 고민과 노력을 통해 함께 풀어나가야 진전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진료는 환자와 대화가 시작되기 전 즉, 환자가 진료실로 들어오는 순간부터 시작됩니다.표정,걸음걸이도 진찰에 필요한 정보가 되기도 합니다. 기본적인 진찰만 해도 화상으로 많은 부분이 해결될 것 같지만 전해지는 정보의 정확성과 정보량에서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이런 정보량의 차이가 있는데 같은 수준의 법적 책임을 운운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든 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정보가 영향을 거의 주지 않는 경우 역시 존재합니다.예를 들어 만성질환자의 재진, 투약 등이 그럴 것입니다. 이런 부분부터 원격진료가 시작될 수 있는 논의가 가능할것으로 생각합니다.환자의 개인정보 보호에관한 내용은 또 다른 장벽입니다. 반대로 화상진료에서 진료장면의 녹화 등은 의사의 사적인 영역에 대한 침범 우려가 있습니다.
개원가에서는 플랫폼에 종속될 수 있다는 두려움,대학병원으로의 환자 쏠림 현상 등의 우려도 많습니다.현실적으로 의료전달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타당한 우려라고 생각합니다. 수가 역시 따져 볼 구석이 많습니다.사회적으로는 기회비용이 줄어들고 환자 입장에서도 이득을 가져올 수 있다면 의료기관의 이득도 따져봐야 할 것입니다.
정부는 4차산업,정보통신 기술 등의 산업기반과 소비자의 편의성 향상을 논리로 하여 원격의료를 접근하고 있습니다.하지만 이는 공급자 영역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큰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원격의료에 참여하는 여러 주체가 각자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고 서로의 신뢰가 형성이 되어야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인 원격의료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편의성과 산업적인 부분만 강조하면서 장밋빛 미래만 보여주는 것은 시장에 대한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결국 원격의료가 잘못된 방향으로 진행되고 결과적으로는 산업도 자리잡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환자들에게 불이익이 돌아가게 될 것 역시 자명한 일입니다.
여기에서 정확히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습니다.아무리 기술이 발달하고 3차원 적으로 사이버 공간에서 만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고 해도 진료는 대면 진료가 원칙이라는 점은 흔들릴 수 없다는 점입니다.원격진료는 결코 대면진료를 대체할 수 없고단지 보조적 역할을 할 뿐입니다.
원격의료를 의료의 좋은 보조적인 방법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환경이 조성이 된다면 혜택은 환자,의사,산업계,정부 모두에게 돌아갈 수 있는 좋은 모델이 될 것입니다.그렇지 않고 지금까지 그래왔듯 의료계의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방법으로 진행된다면 받아들일 수도 없고 반감만 불러오는 실패한 사례로 남을 것입니다.지금은 여러가지 면에서 우리나라의 원격의료에 있어 중요한 시점입니다.
잘못 접근하면 우리나라는 원격의료의 갈라파고스로 남을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많은 분야에서 눈부신 발전을 이루어 내고 있고 세계의 부러움을 사고 있는 우리나라가 원격의료 분야에서도 누구보다도 성공적인 모델은 만들어 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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