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2년 6월 24일 미 연방대법원은 임신 15주 이후 임신중단을 전면 금지한 미시시피주법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에서 6대 3으로 합헌 판결을 내렸다. 보편적 낙태권을 보장한 '로 대 웨이드' 판례가 49년만에 뒤집힌 것이다. 이로 인해 미국의 13개의 주에서는 법적 효력이 발생하면 임신중단을 자동으로 불법화하는 방아쇠 법(trigger law)들을 통과시켰고 절반 이상의 주에서 임신중단과 관련된 새로운 규제나 금지 법안을 마련하고 있다.
비슷한 시기인 2022년 6월 29일엔 실종되었던 조양과 그의 부모가 전남 완도군 바닷속 차량 안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조양 부모의 검색기록과 CCTV에 찍힌 조양의 축 늘어진 모습을 보면 정황상 조양이 극단적 선택을 강요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두 개의 사건은 '세상을 살아갈 선택권이 주어졌는가'라는 점에서 비슷하다. 그 대상이 태아와 아이일 뿐. 다만, 판례에 따라 앞으로 미국에선 태아의 선택권은 존중될 것이고 조양의 선택권은 존중받지 못했다.
2020년 울산지방법원은 어린 자녀를 살해한 뒤 극단 선택을 했다 살아남은 40대 여성에게 '명백한 살인'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는 아무리 나이가 어리더라도 자신이 앞으로 이 세상을 살아갈지에 대해서 선택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판결이다. 그렇다면 태아의 경우는 어떨까? 태아도 앞으로 살아갈지에 대해서 선택할 권리가 있을까?
우리나라는 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헌재)에서 '낙태죄는 헌법정신에 위배된 법률이다' 라는 판결을 내렸다. 66년 동안 '낙태죄'라 불리던 형법이 폐지된 셈이다.
그동안 모자보건법 제 14조에 명시된 임신중지 수술이 허용되는 범위는 다음과 같았다. ①본인·배우자가 유전학적 장애가 있는 경우 ② 본인·배우자가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③강간에 의해 임신된 경우 ④ 혈족·인척 간 임신된 경우 ⑤본인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는 경우다. 헌재의 결정으로 2021년부터는 수술 허용 범위(모자보건법)만 남게 되고 처벌 규정(형법)은 사라지게 되었다. 여전히 모자보건법상 수술 허용 범위가 남아 있지만, 그 이상의 범위에서 수술이 이뤄지더라도 처벌되지 않는 이상한 상황이 1년 반 가까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낙태죄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우선 언제부터 태아를 인간으로 볼 것인지에 대한 정의를 내려야 한다. 의학에선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된 후부터 약 8주까지를 배아라고 하고, 이후 배아가 자궁에 착상되어 출산할 때 까지를 태아라고 한다. 헌재는 지난해 4월 낙태죄 관련 헌법불합치 결정에서 "태아가 생명권의 주체"라고 판시했다.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태아에게도 생명권이 있다고 본 것이다. 헌재 헌법불합치 의견은 "태아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인간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태아도 헌법상 생명권의 주체가 된다"고 했다. 태아에게도 생명권이 있다는 것을 명시한 것이다.
참 아이러니한 것은 이렇게 중요한 태아의 생명권에 대한 기준이 몇몇 대표자들을 통해 결정되고 있다는 점이다. 미 연방 대법원의 판결문을 일부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헌법은 낙태의 권한을 보장하지 않는다. Roe와 Casey 판결은 뒤집혔다. 낙태를 규제할 권리는 국민과 그들이 선출한 대표들에게로 돌아간다."
여기서 말하는 대표들이란 각주의 의회가 될 수도, 국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즉, 사법부의 판결이 아니라 입법부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는 선고인 것이다. 또한, 대법원은 15주를 기준으로 낙태를 규제한다고 했다. 임신 14주 7일차와 15주 1일차는 단 하루의 차이로 낙태가 합법이 될 수도, 불법이 될 수도 있다. 그 단 하루의 차이로 태아의 생명권이 없다가 생긴다는 것을 법적 판단으로 결정할 수 있는 문제인지는 의문이 든다.
산모의 자기결정권보다 태아의 생명권이 더 중요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다. 사실 미국 많은 주들에서 낙태는 이미 불법이다. 그러나 불법임에도 낙태를 시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대법원의 '위헌'이라는 판결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판결로 인해 이제는 낙태를 '합법적'으로 금할 수 있게 된다. 산모들은 태아의 생명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법률 하에 스스로의 신체에 대해 자율적으로 결정할 권한이 줄어들게 되었다. 특히나 이번 대법관들의 법적 해석의 초점은 '어떤 정책이 타당한지' 보다 '누가 정책을 결정할 헌법적 권리를 가지느냐'에 초점을 맞춘 듯하다.
국가의 기본 법칙으로써, 국가의 기본적인 인권을 보장한다는 헌법의 정의 하에 그동안 동성결혼, 피임 권리 등을 합헌 결정했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이번 판결은 산모의 최소한의 결정권조차 앞으로 보장받지 못한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우리는 공동체라는 사회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 그 속에서 인간답게 생활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며 그것을 보호해줄 수 있는 것이 바로 법이다. 낙태죄는 산모의 권리와 태아의 권리가 맞물려있기 때문에 그 중요성이 더 극대화된다. 낙태죄가 폐지되고 1년 반 정도가 지난 지금, 우리나라는 제대로 규정되지 않은 법률 속에서 오히려 낙태죄가 폐지되기 전보다 산모와 태아 둘 다 지켜지지 않는 위험한 상황에 놓인 것처럼 보인다.
여러 판결이 나오고 뒤집히고 했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근본적인 사회 문화의 변화이다. 법적으로 태아의 생명권을 보장해준다 한들 사회적으로 그 생명권을 보장할 장치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진정으로 태아의 생명권이 보장된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낙태죄를 폐지했다 하더라도 아직 태어나지 않은 새 생명이 경시되지 않는 사회적 문화가 뒷받침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모두 인간이기에, 누구 하나 배제할 것 없이 세상을 살아갈 권리를 가지고 있다. 무엇이 산모와 태아를 위한 최선의 방법인지 활발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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