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 빨리, 많이 만들라고 해서 정말 미친듯이 찍어냈는데 그 물건들 전부 창고에 있어요. 이젠 창고에 들어갈 공간도 없어서 동남아 같은데 덤핑이라도 해야할 판입니다."
얼마 전에 만난 방역 전문 용품 제조기업의 대표가 털어놓은 말이다. 지난해만 해도 의욕과 활기가 넘치던 그는 이제 얼굴에 생기조차 없어진지 오래다. 창고만 보면 울화통이 터진다고 토로한다.
이 기업은 코로나 대유행이 한창이던 2020년 말부터 정부의 요청에 따라 생산 규모를 크게 늘리며 방역 용품 국산화에 앞장섰던 것이 사실이다.
이를 보여주듯 정부의 고위 관리들도 연이어 그 공장에 방문했고 수입 대체의 공을 치켜세우며 생산량 증대를 독려했다.
하지만 올해 사회적 거리두기 폐지를 시작으로 급격하게 엔데믹 기조가 이어지면서 생산 공장을 늘리며 대처했던 이 기업의 물품들은 모조리 재고로 남게됐다. 이 대표가 속앓이를 하고 있는 이유다.
이는 비단 이 기업만의 문제도 아니다. 이른바 K-방역의 핵심으로 꼽히던 체외진단기업들의 불만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이들 또한 무조건 빨리, 많이 만들라는 정부의 요청에 응했던 기업들이다.
불과 올해 초 PCR에서 자가검사키트로 확진 검사를 변경하면서 전국적으로 품절 대란이 일어나자 정부는 체외진단기업들을 불러 모아 생산량 증대를 요청했다. 다른 키트를 생산하는 라인을 돌려서라도 공급량을 늘려달라는 요구였다.
나아가 정부는 아예 국내 유통을 위해 키트의 수출 노선도 막아버렸다. 이로 인해 급격하게 공급량이 늘어나며 품절 대란은 해소됐지만 그렇게 찍어낸 물품 중의 상당수는 역시 재고로 남았다.
마찬가지로 엔데믹 기조와 함께 키트의 수요가 급감하자 폭발적으로 늘어난 공급 물량이 악성 재고가 된 셈이다.
이러한 문제들은 코로나 방역 물품 제작에 동원됐던 기업들이 하나같이 안고 있는 고민들이다. 인공호흡기도, 음압병상도, 마스크도 체온계도 정부가 요구한 수요가 채워지자마자 모조리 창고로 향한 이유다.
이로 인해 이들은 적어도 정부의 요청에 따라 제작한 물품 만이라도 조달 형식으로 받아달라고 호소하고 있지만 메아리조차 돌아오지 않고 있다.
이 와중에 최근 코로나 확진자수가 다시 늘어나는 추세가 지속되자 정부는 이들 기업에 이에 대한 대비를 요구하며 재고 현황 등을 보고하라는 공문을 보냈다고 한다.
앞서 말한 그 기업의 대표는 이를 찢어버렸다고 한다. 그는 다시 한번 정부의 고위 관리가 공장을 찾는다면 창고에 쌓여있는 그 물건을 보여주겠노라며 이를 갈고 있다.
코로나가 다시 확산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다. 또한 이후 또 어떠한 감염병이 출몰할지도 예측할 수 없는 부분이다. 하지만 그때가 됐을때 이들 기업들이 또 다시 한마음 한뜻으로 정부의 요구에 부응할지는 확실히 알 수 있을 듯 하다.
그렇기에 지금이라도 이들 기업들의 고충과 고민을 한번쯤을 귀담아 들어볼 필요가 있다. 국가의 부름에 답했다면 이들을 지켜내는 것은 국가의 책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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