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로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국민이 늘어나고 있다. 이들을 직접 진료한 합동분향소 의료지원센터 의료진은 국가 애도 기간이 끝난 뒤에도 지속적인 국민 정신건강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4일 이태원 참사 국가 애도 기간 종료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서울광장 이태원 참사 합동분향소 의료지원센터에서 근무한 의료진들은 많은 국민이 급성 스트레스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우려했다. 관련 환자는 우울·불안감 및 수면 장애와 악몽, 애도 반응으로 인한 감정 과잉 등을 호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날 기자가 서울시청앞에 마련된 의료지원센터를 방문했을 당시 응급의학과 의사 한 명과 두 명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두 명의 간호조무사가 현장을 지키고 있었다. 또 조문 중 넘어진 환자가 진료를 받고 있었다.
이 외에도 적지 않은 환자가 다녀갔는데 분향소 특성상 감정 과잉으로 실신하는 환자가 많기 때문이다. 식음을 전폐해 저혈당이 오거나 오랜 시간 서 있어 기립성저혈압이 생기는 경우도 많다.
분향소에서 환자가 쓰러져 구급차를 부르게 되는 경우 또 다른 트라우마가 생길 수 있어 현장에서 조치할 수 있도록 했다는 게 현장 의료진의 설명이다. 이를 위해 의료지원센터엔 혈압·혈당 측정기, 청진기, 체온계 및 두 개의 병상, 수액 등이 준비돼 있었다.
특히 많았던 것은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환자다. 현장에 방문한 환자도 많았지만 콜센터를 통해 전화로 상담한 환자가 상당수였다.
현장에서 진료 중이던 대한의사협회 박수현 대변인은 "환자들의 사례를 자세히 공개하는 것은 어렵다. 다만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보는 환자가 많았다. 공개된 공간에서 얘기하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 있는 만큼 콜센터를 통한 전화가 정말 많았다"며 "현장에선 감정이 격해지거나 울다가 쓰러지는 환자가 주였다"고 말했다.
이어 "안 그래도 재난으로 아픔이 남아 있는데 이를 애도하다가 누군가가 또 다치는 일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돼 의료지원에 나서게 됐다"며 "현장에서 발생한 환자를 최대한 조치하고 있으며 여기서 추가적인 치료가 필요한 경우 병원에 이송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함께 진료를 보고있던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 신용선 부회장은 국가 애도 기간 이후에도 지속적인 국민 정신건강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의학적으로는 볼 때 참사 피해자와 그 친지들, 경찰관·소방관 등 구조 인력, 현장 취재 기자와 언론을 통해 사건을 접한 국민 모두 급성 스트레스 반응을 보일 수 있다는 진단이다. 이렇게 단계적으로 참사 소식이 확산되면서 사회 전반이 급성 스트레스 반응을 보이게 된다는 것. 더욱이 이후에도 언론·SNS 등으로 참사에 반복 노출되고 있어 사회가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상태라는 우려다.
또 신 부회장은 실제 서울 소재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에 이태원 참사 관련 애도 반응으로 진료를 요청하는 환자가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금 시점에선 책임 추궁보단 심신을 안정시킬 심호흡·나비포옹법 등 릴렉스 테크닉 교육에 집중하는 것이 더 유효하다는 진단이다.
그는 신체에도 골든타임이 있는 것처럼 정신에도 골든타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급성 스트레스 반응은 초기 개입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신 부회장은 "트라우마는 초기 1주일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이 기간 만에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길면 6개월에서 1년까지도 간다"며 "국가 애도 기간 이후에도 이태원 참사와 관련 환자가 더 빠른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시간적·공간적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를 통해 국민이 적절한 애도 과정을 지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의사회 차원에서도 회원의 빠른 진료를 독려하는 등 이를 위한 방안을 계속 모색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 센터는 대한의사협회, 대한간호조무사협회, 국립중앙의료원이 공동 운영하며 국가 애도 기간이 끝나는 오는 5일에 맞춰 종료 예정이다.
의협은 이런 재난이 발생했을 때 의료계가 함께 추가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국민 건강문제에 대처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와 함께 각계가 국민의 트라우마를 보듬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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