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법이 간호인력을 위한 법안이라는 일각의 주장과 달리 간호조무사들이야말로 해당 법안을 가장 반대하는 직역 중 하나다. 이들의 대표자인 대한간호조무사협회 회장은 임기 첫 일정을 간호법 저지 1인 시위로 삼았을 정도다.
그렇다면 간호조무사들은 왜 간호법에 격렬히 반대하는 것일까. 15일 메디칼타임즈는 대한간호조무사협회 곽지연 회장을 만나봤다.
곽 회장은 간호법 안에 있는 독소조항을 문제 삼았다. 이 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는 간호조무사의 학력 제한이다. 간호조무사는 법적으로 고등학교 이상의 학력을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
고등학교를 졸업한 간호조무사와 대학교나 대학원을 졸업한 간호조무사의 처우에 차이가 없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에서 이처럼 법적으로 학력을 제한한 직업은 간호조무사 외엔 없을뿐더러, 이는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는 헌법 제31조에도 위배된다.
간호계는 간호법이 간호인력을 위한 법이라고 주장하면서 정작 이해당사자인 간호조무사는 배척하고 있다는 것.
■"간무사 대신 간호사 해라"…간호계 인식 현주소
곽 회장은 "임기 초기 비공식적인 자리에서 한 간호사단체 회장을 만났을 때 그분이 왜 간호조무사 학교를 만들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얘기를 했다"며 "간호조무사로서 학력을 높이지 말고 간호사가 되라는 의미였다"고 회상했다.
이어 "우리는 간호사가 되고 싶은 것이 아니라 간호조무사로서 자부심을 느끼고 싶은 것이다. 우리나라 모든 간호 인력이 간호사로만 충원된다고 하면 다른 직역들이 왜 만들어지고 왜 배출되겠느냐"며 "이런 독선적인 생각을 내려놔야 대화가 가능하고 그제 서야 간호 인력 발전을 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학력 제한 조항은 의료법에도 있다. 원래 간호조무사 시험응시자격은 '고등학교 졸업 이상'이었는데, 2015년에 의료법을 개정할 때 고등학교 졸업만 가능하게 바뀌었다. 현 대한간호협회장이 국회의원이었을 당시의 일이다.
더 문제인 것은 이 같은 조항을 개선하기 위한 간호조무사들의 노력이 간호계에 번번이 가로막히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시대전환 조정훈 당대표는 지난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처음으로 관련 문제를 거론했다. 하지만 이후 간호협회의 집중공세가 계속되는 상황이다.
관련 간호협회의 성명서를 보면 이 같은 주장을 하는 간무협은 법정 단체가 아니며 관련 취지의 헌법소원이 2016년 각하됐다는 내용이다. 어쨌든 간호법은 여야가 미는 민생법안이니 제정해야 한다는 취지다.
실제 간호조무사 학력 제한은 의료법 제80조 제1항 위헌확인 재판서 각하된 내용이기는 하다. 의료법에 학력 제한 조항이 있다고 해도 전문대학이 간호조무과 개설하는 것엔 문제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청구인이 간호조무학과 학생이 아닌 일반 고등학생에 불과하다는 것도 결격사유가 됐다.
■간호계에 가로막히는 처우개선…"간호법에서도 차별"
실상은 다르다. 전문대학 간호조무과는 2018년 규제개혁위원회서 허용된 뒤에도 아직까지 내외부 반발에 부딪히는 사안이다. 학벌주의를 부추기는 등 사회적 갈등을 야기한다는 이유에서다.
2013~2015년 보건복지부 간호인력개편협의체를 통해 간호조무사 전문대 양성을 담은 의료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입법 과정에서 빠진 채 통과됐다.
이와 관련 곽 회장은 "조정훈 의원이 법사위에서 처음으로 이 문제를 거론했다. 정말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역시 예상대로 간호협회는 조 의원을 집중적으로 공격했으며 인신공격도 마다하지 않았다"며 "간호협회의 공격을 각오하고 발언하기까지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한지 잘 알기 때문에 감사한 마음뿐이다"라고 전했다.
간호협회 지적사항인 간무협의 법정 단체 불인정과 관련해서도 곽 회장은 할 말이 많은 모습이었다. 간무협 법정 단체 인정을 가로막은 것 역시 간호협회기 때문이다.
2017년 보건복지부는 간무협 중앙회 준용조항 신설 등을 포함한 의료법 개정안 입법을 예고한 바 있다. 2019년엔 간무협 설립 근거 마련 내용이 담긴 의료법 개정안이 국회 보건복지위 법안심사소위까지 올라갔지만, 간호협회의 반대로 무산됐다.
그는 간호법이 다른 직역에게 간호조무사의 설움을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됐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간호법은 간호사가 대부분 직역의 업무영역을 침탈할 수 있도록 만들기 때문에, 이를 저지하기 위해 13개 단체가 보건복지의료연대를 구축한 덕분이다.
곽 회장은 "그동안 보건의료직역들은 서로의 문제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며 "간호조무사가 꼭 대학교에서 배출돼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대학교에서 공부하고 싶다는 본인의 선택이 법적으로 가로막혀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간호조무사들에 대한 간호계 핍박이 드러난 조항은 또 있다. 간호법 제1조에 규정된 지역사회 문구다. 이 조항으로 간호사는 방문간호센터 등을 이용해 의사로부터 독립해 단독 간호업무를 할 수 있게 된다는 것. 이밖에도 간무협에 대한 규정, 간호조무사 업무에 관한 규정 등에 '간호사 등'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식으로 간호법 곳곳에 간호조무사에 대한 차별이 수두룩 하다는 지적이다.
곽 회장은 "간호법은 또한 장기요양기관, 장애인복지시설 등 지역사회 기관에서 근무하는 간호조무사의 생존권을 위협한다"며 "간호조무사는 간호법 당사자로 해당 법안이 도움이 돼야 한다. 하지만 간호조무사는 오히려 생존권 위협을 받게 됐다"고 지적했다.
■갈등 체감하는 현장…"껍데기로도 통과해선 안 돼"
그는 이 같은 조항이 사라져도 간호법이 제정되는 것은 위험하다고 우려했다. 간호법을 껍데기만 남긴 채 통과시킨 뒤 개정을 통해 기존 내용을 채워 넣는 것이 간호협회의 속내라는 이유에서다.
곽 회장은 "간호계도 이번에 간호법이 통과되지 않으면 100년간은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이번에 어떻게든 법안을 통과시키겠다는 목표다"라며 "한 간호협회 임원이 본인에게 간호법을 막아 훗날 후배들에게 질타받는 회장이 될 것이냐며 지금이라도 잘 생각해 통과시켜야 한다고 말하더라"고 말했다.
투쟁은 고단하다. 곽 회장은 지난해 5월 간호법 저지 총궐기대회서 삭발투쟁을 감행했다. 간호법 발의 후 이어지고 있는 국회 앞 1인 릴레이 시위에도 계속 참여하고 있다.
특히 지난 14일 열린 '간호법 강행처리 규탄 선포식'서 내놓은 "간호법 통과 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똑똑히 지켜보라"는 발언이 무엇을 뜻하냐는 질문에, 홍옥녀 전임회장이 국회에 시신기증서를 전달한 사례로 답했다.
곽 회장은 이 같은 멍에를 진 이유를 묻는 질문에 지난 30년간 간호조무사로 살아오면서 행복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 행복을 다른 선후배들에도 느끼게 해주고 싶다는 설명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간호계와 소통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곽 회장은 "간호법 제정을 둘러싸고 일어난 간호사와 다른 보건의료인들 사이의 갈등이 심각한 사태로까지 치닫고 있다"며 "종합병원같이 간호사가 다수인 의료기관에서는 간호조무사들이 많은 압력을 받고 있다고 한다. 반대로 다른 직역 보건의료인들과 간호사 사이에 냉기가 흐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게 다 간호법 때문이다. 간호법 제정만 중단하면 된다. 대신 전체 보건의료인이 함께 발전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며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간호협회는 혼자만의 질주를 멈추고, 다른 보건의료인들과 함께 발전할 수 있는 연대와 협력의 장에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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