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인 근거가 있습니까?"
"일종의 입장문으로 이해해 주십시오."
대한신장학회의 당뇨병성 콩팥병 진료지침 제정을 두고 학회간 이견이 나오고 있다. 신규 제정된 당뇨병성 콩팥병 진료지침의 큰 틀은 경증을 제외하고 이상 징후가 보이는 대다수의 환자를 신장내과로 협진의뢰하라는 것.
신장학회가 알부민뇨와 사구체여과율 지표를 기준으로 설정한 협진의뢰 대상자는 전체 18개 환자군 중 경증을 제외한 16개에 달한다. 소아청소년의 경우는 더 엄격하다. 사구체여과율(mL/min/1.73㎡) 90 이상, 알부민뇨(mg/g) 30 미만을 제외한 17개 군 모두를 협진 대상자로 본 것.
당뇨병성 콩팥병은 태생적으로 당뇨병과 콩팥병이라는 2개 과를 공유한다는 점에서 '협진'과 '협력'이 필요하다. 문제는 이와 같은 협진의뢰 요청이 제대로 동작하냐의 여부. 당뇨병 환자를 주로 담당하는 1차 의료기관이나 내과에서 협진의뢰를 하지 않는 경우 구속력이 없는 신장학회의 진료지침은 선언적 의미에 그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지침이 공개된 직후부터 당뇨병학회를 중심으로 절차적 당위성을 문제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과학적 근거가 없을 뿐더러 경증-중등도 환자까지 협력의뢰했을 때 신장내과만의 특별한 치료가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사실상 진료 영역 확장을 위한 조치가 아니냐는 것. 협업을 강조하면서도 지침 제정까지 타 과의 의견을 받지 수용하지 않았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신장학회가 신규 지침을 제정한 배경은 무엇일까. 국제 지침과의 유사성은 얼마나 될까. 신규 지침의 과학적 근거 및 타 학회의 의견 등을 정리했다.
▲신장학회 "이상 징후 땐 신장전문의 개입 필요"
신장학회는 29일 서울 코엑스에서 개최된 국제학술대회 KSN 2023에서 당뇨병성 콩팥병 진료지침을 발표했다.
신규 지침의 핵심은 신장전문의의 개입이 필요한 환자군을 대폭 늘렸다는 점. 당뇨병 유병률이 만성콩팥병 발병에 밀접하게 연관돼 있는 만큼 사구체여과율 및 알부민뇨에서 이상 조짐이 보이는 경우 신장내과로의 즉각적인 전원을 촉구했다.
학회는 "당뇨병 환자에서 알부민뇨가 있거나 추정사구체여과율이 60mL/min/1.73㎡ 미만일 경우"에 콩팥 손상의 원인 감별과 향후 관리를 위해 신장전문의 협진이 필요하다고 못 박았다.
사구체여과율은 90 이상부터 15미만까지 수치별로 ▲정상 또는 높음 ▲경도 감소 ▲경도·중등도 감소 ▲중등·고도 감소 ▲고도 감소 ▲말기콩팥병으로 6개 범주, 알부민뇨는 30미만부터 300이상까지 ▲정상-경도 증가 ▲중등도 증가 ▲고도 증가 3개 범주이기 때문에 각 지표값에 따른 환자군은 총 18개군으로 나뉜다.
이 중 사구체여과율 60 이상이며 알부민뇨 30 미만에 해당하는 정상-경도의 두 환자군을 제외하고 중등도, 고도에 해당하는 16개 군을 모두 협진의뢰 대상자로 지목한 것.
학회는 소아청소년의 경우 사구체여과율이 정상 또는 높음, 알부민뇨 정상-경도 증가의 1개군을 제외하고 17개 환자군 모두를 협진의뢰 대상자로 선정했다.
문제는 이런 협력의뢰 시스템이 일선 의료 현장에서 제대로 동작할 수 있냐는 데 있다. 당뇨병 환자를 주로 관리하는 내분비내과나 내과, 병원급의 당뇨클리닉에서 해당 지표 기준으로 전원시키는 것은 정서나 인식상 아직은 성급하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이날 지침 공개 직후부터 청중으로부터 여론 수렴 과정 및 임상 현장에서의 실행 가능성에 대한 질문이 쇄도한 바 있다.
당장 영향권에 놓인 당뇨병학회는 불쾌한 내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협력'을 강조한 지침 제정의 취지와는 맞지 않게 지침 제정까지 당뇨병학회와의 협업이 없었다는 것.
김난희 당뇨병학회 교육이사(고대안산병원 내분비내과)는 "신장학회 지침이 국제신장병가이드라인기구(KDIGO) 지침과 유사하지만 전원 기준이 상당히 낮아졌다"며 "알부민뇨나 사구체여과율 기준으로 다수의 환자를 협진의뢰 대상자로 선정한 과학적 근거가 있는지 궁금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중등도 환자를 초기에 협진의뢰하면 신장내과에서 (타 과와 다른) 특별한 치료를 제공하는 것이냐"며 "보통 타 과가 함께 협력하는 질환은 특정 과가 지침 제정을 주도하더라도 다른 과의 지지승인(endorsement)을 받아야 하는데 그런 과정도 없었다"고 꼬집었다.
▲신장학회 지침 제정 이유는?
이같은 신규 지침은 당뇨병 환자의 급증 및 국제적인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우선 국내 성인 당뇨병 환자는 600만명을 넘어섰다. 문제는 만성신장질환자의 절반은 당뇨로 인행 발생한다는 점. 당뇨병 환자의 급증은 곧 신장질환자의 증가를 초래한다.
정성진 신장학회 진료지침위원장(여의도성모병원 신장내과 교수)은 "당뇨병 환자 증가와 같은 변화에는 신장 전문가 및 당뇨병을 관리하는 타 과 의료진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며 "한국의 당뇨병 환자 증가 추이는 당초 예상과 달리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어 작년 6월부터 당뇨병 콩팥병 진료지침 제정 작업에 착수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서구화된 식습관 등으로 당뇨병 환자의 증가는 전세계적 다양한 국가에서 발생하는 현상으로 해외에서도 당뇨병학회와 신장학회가 협력하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며 "실제로 미국당뇨병학회(ADA)와 KDIGO도 2022년 합의문 제정을 통해 전원 기준 환자 기준을 마련한 바 있다"고 강조했다.
해외의 흐름을 참고한 이번 지침은 국내에서도 비슷한 형태의 협력을 끌어내기 위한 아젠다 제시 측면이 강하다는 것. KDIGO가 국제 가이드라인을 대변한다는 점에서 신규 지침은 신장학회의 독단적인 판단이 아니라 국제적인 흐름에 동조하기 위한 방향타 설정이라는 뜻이다.
▲KDIGO 지침-신장학회 지침 차이는?
2022년 KDIGO는 당뇨병성 콩팥병 임상 실무 가이드라인을 공개한 바 있다. 크게 변화된 부분은 전원 기준을 기존 6개에서 11개로 대폭 늘렸다는 점.
개정 합의문은 적정 사구체여과율에도 알부민뇨의 '이상 조짐'이 있는 환자는 즉각 전원토록 대상 환자군을 늘렸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사구체여과율이 90 이상으로 좋은 상태를 유지하더라도 알부민뇨가 300 이상이면 협진을 의뢰해야 한다. 비슷하게 알부민뇨가 30 미만으로 좋은 상태를 유지하더라도 사구체여과율이 15 미만 신부전 상황이면 협진의뢰 대상자다.
한 지표가 정상 수준이더라도 다른 지표가 위험 신호를 보내면 신장전문의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 KDIGO 합의문은 사구체여과율 지표 범주는 6개, 알부민뇨 지표 범주는 3개로 총 18개 환자군으로 나눠 이 중 11개를 신장내과의 진료가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대한신장학회 지침 역시 18개 환자군으로 구분된 KDIGO 합의문을 참고하면서도 전원 대상자를 성인의 경우 16개, 소아청소년의 경우 17개로 더 늘렸다.
2022년 KDIGO 합의문에서 대상군을 더 늘린 것에 대한 '과학적 근거'는 있을까.
정성진 신장학회 진료지침위원장은 "과학적인 근거라기 보다는 세계적으로 (신장학회에 동조하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많이 나왔다"며 "과거 기준으로 전원을 하면 당뇨병 콩팥병 진행에 있어서 콩팥 기능이 70% 망가진 상태로 가는 것이기 때문에 기준을 상향 조정해야 하는 의견이 많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런 전문가들의 관점과 의견을 종합해 초기 개입이 환자 예후에 더 좋을 것이라는 판단 아래 협진의뢰 기준 대상을 더 늘렸다"며 "정확하게는 성인 당뇨병의 경우는 협진이고 소아청소년은 의뢰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고 말했다.
그는 "당뇨병 전문가들 입장에서 대다수를 협진시키라는 표현이 섭섭할 수 있지만 지침에선 당뇨병 전문가와 다학제적 접근을 해야 하는 내용을 기술해 놨다"며 "신장내과가 일방적으로 환자를 보겠다는 의도가 없는 만큼 향후 당뇨병학회와의 공동 합의문 작성 때는 타협점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고 덧붙였다.
▲논란의 원인은 합의 부재…협진 체계 작동 '과제'
과학적 근거 여부를 떠나 신장학회의 지침이 타 과의 반발을 사는 이유는 합의 부재라는 시선도 존재한다. 협진의뢰를 위한 타 과의 공감대 없이는 신규 지침은 공회전할 수밖에 없기 때문. 특히 타 과의 협진이 필요한 데도 타 과를 배제한 채 지침을 만들고 아젠다를 제시하는 건 통념상 그 순서가 잘못됐다는 지적이다.
내과의사회 관계자는 "중등도를 넘어 중증이면 몰라도 사실상 거의 모든 환자를 협진의뢰하라고 하는 것은 선뜻 받아들이기 힘들다"며 "수 년간 자신들이 관리하던 환자를 해당 지표를 기준으로 협진의뢰할 의료진이 얼마나 될 지는 미지수"라고 진단했다.
그는 "시기, 증상별 신장내과 전원 시 예후 변화에 대한 데이터가 축적되고 이를 근거로 의료진들 사이에서 공감대가 있어야 다학제적 접근이라는 변화가 발생할 수 있다"며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급진적인 변화를 촉구하는 것은 성급한 면이 없잖아 있다"고 덧붙였다.
김난희 당뇨병학회 교육이사는 "직접 당사자인 당뇨병학회에 지지승인을 구하지 않은 이유가 궁금하다"며 "선언적으로 이런 지침을 내놓는다고 해서 임상 현장에서 이대로 지켜질 것으로 보는지도 의문"이라고 질타했다.
이와 관련 정성진 위원장은 "카운터파트에 있는 타 과에서 다른 입장 및 견해를 가진 것을 충분히 이해한다"며 "각 환자 특성에 맞는 치료는 개별 과, 개별 의료진의 선택이지만 이번 지침은 신장내과 전문의와 소아청소년 신장전문의들이 모여 환자 예후 개선을 위해 순수한 목적으로 만든 것임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고 이해를 당부했다.
그는 "신장 지침과 관련해 국제 합의문 그룹에 소속해 일하고 있고 그 그룹 내에서도 신장 전문가에 대한 전원이 보다 나은 예후를 제공해 주는지에 대한 질문이 나왔었다"며 "이에 대해선 신장 전문가 개입을 통한 적정 진료의 준수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각 학회, 기관마다 당뇨병성 콩팥병에 대한 지침을 만들어 제시하지만 이를 제대로 지키는지는 별개의 사안"이라며 "한 연구에 따르면 약제의 점진적 증량을 통한 최대 용량 투약 등과 같은 지침 준수율이 상당히 낮은 것으로 나왔다"고 말했다.
이어 "따라서 신장내과가 개입해서 지침에 맞는 약제 투약의 확인 내지 점검을 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이번 협진의뢰 지침을 이해해 달라"며 "환자에 대한 최선의 치료 제공에는 다른 의사에게 검토를 한번 받는 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할 수 있다"고 밝혔다.
신장학회 관계자는 "알려진 것과 달리 신규 지침과 관련해 당뇨병학회와 한 차례 미팅을 진행했다"며 "다음 개정안은 당뇨병학회와는 협의해서 다양한 의견을 반영할 예정으로 결코 독단적으로 하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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