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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법에 대한 단상

여한솔 속초의료원 응급의학과장
발행날짜: 2023-05-08 05:00:00

속초의료원 여한솔 응급의학과장

여야 합의 없이, 그리고 범의료계 내의 여러 단체들과의 협의 없이 국회 다수당인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간호법이 본회의에서 통과 되었다. 간호협회에서는 간호사의 처우개선을 위한 진일보 법안 통과라고 자축하고 있다. 한의사협회, 보건의료노조(민주노총, 한국노총)를 빼곤 모든 보건의료 단체에서 이 법안제정을 반대 하고 파업까지 불사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왜 이토록 첨예하게 대립하는 것일까. 아니 간호사 처우개선에 필요한 법안이면 모두가 대의를 위해 찬성해야 하는 것 아닐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 벌어지는 많은 일들을 복기해 볼 때, 이익이 상충하는 양측의 토론과 양 당의 협치 없이 법안을 통과 시키고 폐지하고자 하는 때에는 반드시 유념해야 할 것이 있다. 이 간호법 통과과정을 볼 때에 특정단체 혹은 개인에게 사회적 통념을 벗어나는 이익구조가 생기는 것이고 이것이 국민정서상, 그리고 대한민국 의료시스템상 수용할 수 있는, 납득 가능한 것인지를 고려해야 했지만, 우리나라 입법기관은 그들의 가장 중요한 활동인 '입법'에 큰 실수를 저질렀다.

간호협회가 주장하는 간호법 제정의 목적은 '간호사 처우개선'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어느 직역에도 특례법이 존재하지 않는 만큼, '의료법' 하위에 간호사 처우개선에 필요한 부분을 삽입하여서 개정하면 된다. 하지만 간호법 통과를 밀어붙이기 이틀 전 정부와 여당이 의료법 개정안에 대한 중재안을 제시하였으나 간호협회는 이를 수용할 수 없다며 회의장을 박차고 나가버렸다고 한다. 중재안의 핵심은 '간호법의 명칭을 간호사 처우 등에 관한 법으로 바꾸는 것', '간호사 업무 관련 내용은 기존 의료법에 두고 처우개선을 보강하는 개정안을 마련하는 것', 의사협회에서 주장하는 '지역사회'에 의료행위를 할 수 있는 문구 삭제였다. 간호협회 회장은 이 중재안을 모두 거절하고 회의장을 뛰쳐나와 버렸다.

이상하다. 본인들이 애초에 요구했던 부분을 법률에 명시하여 개정해 주겠다고 하는데도 이를 거부한다. 이것은 상식적이지 못한, 순수한 간호사의 처우개선과는 다른 법안의 뒤에 다른 속내가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법안 자체에 단독개원의 내용은 포함되어 있지 않으니 '가정'은 일단 논외로 하겠다. 이번 글에는 논란이 되는 다른 부분을 다 제쳐두고 '지역사회'와 '간호조무사'와의 관계에만 집중하자.

간호법에 명시된 '지역사회', 이 4글자가 도대체 어떤 의미를 갖길래 이 4글자를 삭제하자는 중재안 요구에 절대 불가를 외치며 회의장을 빠져나간 간호협회의 속내는 무엇일까. 너무 뻔한 수작이다. 지역사회 문구가 들어감으로써 인해 간호사에게는 의료기관이 아닌 의료기관 밖인 지역사회에서 방문간호 센터, 보살핌 코디네이터센터 등을 개설할 수 있어 독립적 업무수행이 가능해진다.

또한 법안의 내용 중 간호조무사에 대한 인력을 명시하여 장기 요양기관에서 일하고 있는 간호조무사를 간호사의 보조 인력으로 만들어 간호사 없이는 이들이 이 업무를 수행할 수 없도록 법 해석을 적용토록 하고 있다. 한마디로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간의 수직관계를 형성토록 하는 것이다. 현행법상 장기 요양기관은 촉탁의(의사) 지도하에 간호조무사가 단독으로 근무할 수 있지만, 이번에 통과된 간호 법상 간호사 없이는 간호조무사는 근무할 수 없게 되어 있다.

조금 수상하다. 보건의료노조가 속한 민노총과 크게 연관 없는 한노총은 범의료계 간 법안설립에 대한 싸움에 끼어들어 대체 왜 일방적인 한쪽편을 들고 있는 것일까.

대한민국은 급격한 고령화사회를 경험하고 있다. 고령화가 심화할수록 '지역사회', '노인', ‘돌봄’ 등의 문구가 들어간 복지예산은 폭증할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 인구 구조상 이제껏 의료산업의 소비자는 환자, 즉 국민이었지만 이제는 막대한 예산이 투입될 수밖에 없는 '정부' 즉 정부가 돈을 지불하는 구조가 되는 것이다. 지역사회를 포장으로 한 가정방문과 돌봄 등은 이 법안을 추진하는 간호 직역에서는 '블루오션'이다. 몇 십분만 차를 타고 나가면 전문의 진료가 가능한 땅 좁은 대한민국에서도 '의사가 부족하다'는 프레임으로 사회적 약자를 전면에 내세우며 그들이 간호 활동을 할 수 있게 해달라 한다.

결론만 말하면 일단 이들의 주장은 설득력이 전혀 없다. 어차피 환자 상태가 안 좋아지면 진료가 필요하고 처치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결국은 환자는 의원 혹은 병원으로 와야 한다. 혈압을 재어 주고 당수치를 확인하고 고지혈증 여부를 체크하기 위해 노인들에게 찾아가는 서비스는 한정된 의료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대한민국 고령화 사회를 돌아볼 때 그다지 큰 효용성을 지니지 않는다. 아프면 병원에 가야지 왜 집에 누군가 찾아오길 바라는가. 심리적인 기대효과는 있겠지만, 안 그래도 허덕이는 자원의 낭비만 초래할 뿐이다. 이런 곳에 줄줄 새는 건강보험 체제가 아닌, 정말로 급성기의 중증 환자들에게 의료자원이 집중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간호협회는 이 맹점의 부분을 교묘하게 파고들었다. 정부에서 지원하는 예산에 대한 부분, 혹은 진료하고 처방하는 의사 주도하에 돌아가는 현재대로 둘 수 없기에 그렇게 간호법 제정에 혈안이 되어 있던 것이다. 그 시장을 민노총과 한노총에게는 좋은 먹거리가 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에 범 의료단체들이 언급하는 직역 간 불균형 따위에는 관심이 없는 것이다.

간호법안을 처음부터 끝까지 여러 번 읽어보았으나, 앞서 언급한 몇몇 문제 말고는 대부분의 간호법에 명시된 조항은 의료법에 있는 내용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결국 간호법 자체는 이 몇몇 문제들을 위한 껍데기에 불과하고 핵심은 중간중간에 '애매한 문구'들이 의사, 간호조무사, 응급구조사, 임상병리사 모두와 충돌할 소지를 남겨둔 것이다. 어떻게 입법기관인 일부 국회의원이 의료법에서 적당히 뼈대를 가져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하고, 누군가의 먹음직스러운 부분들만 교묘하게 집어넣어 사회를 이토록 교란하고 분열시킬 수 있는지, 수준이 참 저질스럽다.

결론적으로 간호법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지역사회, 돌봄을 빙자한 예산 수혜의 주체가 되기 위함'과 보건의료인 사이에서의 '지배구조 우위에 서기 위함'이다.

한쪽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여서 어쨌든 국회 내에서 법안 통과가 되긴 했지만, 예상보다 더 격렬한 나머지 의료단체의 반응에 대통령이 재의요구권을 발동할지 지켜보고 있다. 문제지적과 개선요구에도 근본적 개선의 여지는 보이지 않는 작금의 대한민국 의료 상황을 볼 때 중증 환자를 돌보는 의료시스템은 필연적으로 망하게 되어있다. 어쩌면 이러한 미래가 가까운 시일 내에 그려지기에 간호법이든 무엇이든 젊은 의사들이 근본적인 회의감으로 일관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간호법 통과로 사실 개개인이 이 문제를 가지고 서로 얼굴 붉히며 다툴 이유가 없다. 이 법안에 혜택 보는 간호사는 간호협회를 끌고 가는 극소수와 재력을 가진 일부 간호사들, 그리고 예산이 넘쳐날 시장으로 빠져나갈 일부 간호사들이다. 일선에서 일하는 간호사들의 처우개선이 이 법안으로 나아질 것 같나? 절대 아니다. 왜냐하면 간호법의 본질은 처우개선이 아니기 때문이다. 간호협회가 일을 잘 해 왔고 이번 법안도 수십만 간호사들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면, 간호사들이 처한 현실이 지금과 같을까.

간호사를 위한 진정한 처우개선은 가진 자들의 이런 꼼수 농후한 법안을 통과시키려 거리에 간호사 , 학생들을 강제로 동원하여 나오는 것이 아니다. 실제 현장에서 행해지나 한 푼도 받지 못하는 간호행위에 대한 간호 수가를 제정해달라고 요구하거나, 혹은 병동과 중환자실에서 선배 간호사가 신입 간호사에게 인신공격하며 갑질하는 태움의 악습을 근절하도록 처벌을 강화하는 것, 이것들이 현장에서 일하며 헌신하고 있는 간호사들을 위한 진짜 처우 개선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칼럼은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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