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기관 한 해 살림살이를 결정짓는 수가협상 최종 결전의 날이 밝았다. 수가협상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수가 인상에 투입할 건강보험 재정 규모, 일명 '밴딩'. 밴딩이 결정되면 의원, 병원 등 6개의 유형은 서로의 인상률을 놓고 눈치 싸움을 시작한다.
건보공단은 31일 오후 2시 재정운영위원회 재정소위 3차 회의를 시작으로 각 공급자 단체 수가협상단과 릴레이 수가협상을 벌인다.
관전 포인트 1. 밴딩, 어디까지 올라갈까.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한 추가투입 재정(밴딩, banding) 규모는 공급자 단체의 가장 큰 관심사다. 투입 재정 규모가 커야 각 유형이 가져갈 수 있는 몫도 커지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 사이 밴딩은 1조원 내외에서 결정돼 왔다. 최근 5년 사이 1조원 이상 재정이 투입된 적은 2020년과 2022년, 그리고 올해까지 세 차례 뿐이다. 특히 올해는 자정을 넘어 날이 밝아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협상을 진행한 결과 가입자 심리적 장벽인 1조원을 넘어섰다. 단순히 숫자만 놓고 보면 인상률은 예년보다 낮았지만 밴딩은 1조848억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공급자 단체는 1조원을 넘어선 과감한 재정 투입을 주문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1조5000억원에서 2조원이라는 구체적인 숫자를 제시했고 대한약사회 또한 자체적으로 추산한 결과 2조819억원 수준의 재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펼쳤다.
특히 올해는 가입자 단체와 공급자 단체가 직접적으로 얼굴을 맞대고 '소통'하는 기회를 처음으로 가지기도 했지만 긍정적으로 해석되고 있지는 않은 상황이다. 재정운영위원회 소위원회와 5개 유형 공급자 단체 수가협상단장은 30일 오후 약 한 시간 반 동안 간담회를 가졌다. 각 공급자 단체는 가입자를 향해 수가인상의 이유를 호소했고, 가입자 단체도 현실적인 상황을 이야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단 지난해 진료비 증가율이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가고, 의료 이용률도 증가 추세로 바뀌고 있다는 게 통계로 확인되면서 가입자의 시선이 따갑다.
김봉천 의협 수가협상단장은 "가입자와 공급자가 서로의 입장을 설명하며 소통하는 기회는 처음이었다. 소통의 기회를 앞으로도 정례화할 가능성은 열려 있다"라며 소통의 의미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를 했지만 "간담회에서 양측의 간극이 크다는 것을 확인했고 이에 따라 협상은 어려울 것 같다"고 전망했다.
건보공단 수가협상단장인 이상일 급여상임이사도 "가입자와 공급자 사이 간극을 줄이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를 할 수 있었으면 하는 기대를 갖고 마련한 자리였다"라며 "지난해는 밴드 설정을 위해 소위원회 회의만 3차에 걸쳐서 했는데 올해는 1차 밴드가 일찍 나올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해 수가협상에서 1차 밴딩은 협상 마지막 날인 5월 31일 저녁에 7000억원대 수준에서 설정됐고 6월 1일 아침이 돼서야 밴딩이 1조원을 넘어섰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이사는 "협상이 불가능한 밴딩을 주는 것 자체는 시간만 끌고 의미가 없기 때문에 협상이 가능한 밴드를 제시해야 되지 않겠냐는 의견이 가입자 단체 사이에서 나왔다"라며 "협상이 가능한 밴드를 처음부터 제공해 밤샘 협상을 탈피해 보자는 분위기가 있다"고 말했다. 이는 결국 초기 설정된 밴딩 값의 변동폭이 크지 않을 것으로 추측되는 셈.
관전 포인트2. 한정된 파이 차지하기 눈치전쟁, 자정 넘기나
밴딩이 설정됐으면 공급자 단체 사이 치열한 눈치싸움이 시작된다. 31일 자정이 수가협상 시한이라면 공급자 단체는 서로 더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 날이 밝을 때까지 치열하게 수 계산을 벌인다.
지난해 진료비 증가율만 놓고 보면 의원과 약국 유형은 협상 길이 험난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분기 기준 총진료비 증가율을 보면 전년 같은 기간 보다 8.6% 증가했다. 이 가운데 의원과 약국은 각각 전체 평균을 넘어선 20.3%, 11.3% 늘었다. 반면, 병원 유형은 진료비가 3.3% 증가하는데 그쳤다.
약국 유형은 진료비 점유율이 20% 안팎으로 크지 않은 만큼 인상률이 전체 유형 중 가장 높다는 점을 내세워 왔는데 올해는 이마저도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의원 역시 지난해 오미크론 대유행 등의 특수한 상황이 반영되면서 진료비가 급증했다.
그런 만큼 의원과 약국 유형의 주장은 비슷하다. 진료비 증가율은 비급여의 급여화 정책에 따른 착시 현상이며 인건비와 카드 수수료 등 관리비 증가를 수가에 반영해야 한다는 것. 더불어 24조원에 달하는 건강보험 재정 흑자분을 투입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박영달 대한약사회 수가협상단장은 "국민은 우수한 의료 서비스를 받고 있다"며 "약국 입장에서 미국은 실제적으로 처방약이 급여화된 것이 2000개 정도 되는데 우리나라는 2만6000개 정도다. 성분 수로 따지게 되면 우리나라는 약 4400개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많은 국민이 양질의 의약품을 처방받고 있고, 70%는 국가가 재정을 부담하고 있으니 그런 면에 있어 양질의 서비스를 받고 있다"라며 "원가보상률이 떨어지다 보니 필수의료 쪽에서 자꾸 이탈이 생긴다. 보건의료 시스템을 건전하게 세우는 데는 재정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봉천 단장도 "코로나 때문에 어느 기업체나 공공기관 모두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경제 위기 상황에서도 유독 건보재정만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라며 "건보재정은 적립하는 게 원칙은 아니다. 당해 연도에 쓰는 게 원칙이고 그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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