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상 공급을 규제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는 데 정부·의료계 뜻이 모였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대학병원 분원이 몰리면서 지역 ·필수의료 붕괴가 예상된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현재로선 이를 허가하는 지자체에 대한 중앙 통제력이 떨어져 정부 의지가 중요한 상황이다.
3일 대한의사협회·대한병원협회가 국민의힘 이종성 의원과 '병상자원의 적정한 관리방안 마련 및 수도권 대학병원 분원 설립 문제 대응'을 주제로 국회토론회를 열었다. 대학병원들의 수도권 분원 러시로 생길 지역필수의료 붕괴 및 의료비 부담을 지적하기 위함이다.
의협 의료정책연구원 우봉식 원장은 주제발표를 통해 대한민국과 일본의 병상 수를 비교하며, 우리나라 병상수급정책은 지속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노인 인구에 비해 의료비가 급증하는 상황을 조명하며 그 원인으로 병상 수를 지목했다. 우리나라 노인 인구 비중이 20%가 채 안 되는 상황에서, 30%를 넘긴 일본보다 병상수가 많다는 설명이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 GDP 대비 의료비는 2021년 9%를 넘겼으며 이 같은 추세를 보면 지난해엔 10%를 넘겼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반면 일본의 GDP 대비 의료비는 6%대로 유지되고 있다. 우리나라 노인 인구는 일본의 3분의 2 수준이지만 GDP 대비 의료비는 두 배 가까이 높다는 뜻이다.
의료비가 상급종합병원에 쏠린 상황도 지적했다. 2011~2019년 종별 요양급여비용을 보면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이 누적 비용이 10%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마저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를 병상 수로 나누면 1년 동안 상급종합병원에서 한 병상으로 벌어들이는 비용은 3억7500만 원이 된다.
그는 이 같은 상황에서 대학병원의 분원 러시로 수도권에 6600병상이 공급된다면 1년에 2조4810억 원의 진료비가 추가로 유발 된다고 우려했다. 또 늘어난 병상수를 감당하기 위해선 2만8000여 명의 의사와 8만6000여 명의 간호가 필요하다. 관련 인력을 지방에서 빨아들이면서 지역필수의료 붕괴와 엄청난 의료비 부담을 초래한다는 지적이다.
이어진 패널토의에서 대한전공의협의회 강민구 회장은 상급종합병원의 무분별한 병상 확충을 막기 위해 병상 당 의사 인력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공의 입장에서 현 상황의 근본적인 원인은 병원에 전문의가 부족하다는 것인데, 이는 의료인력 정책과 병상정책 간의 연계가 부족해 생긴 문제라는 설명이다.
강 회장은 필수의료 과목 전문의 통계를 공개하며 우리나라 전체 외과·신경외과·소아청소년과·산부인과 전문의 수는 다른 OECD국가와 비교했을 때 적지는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선 관련 인력이 부족한데 이는 늘어나는 병상 수를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는 주장이다.
그는 병상은 무분별하게 증가하는 반면 의사는 제대로 채용할 수 없는 현 상황을 지적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병상 당 인력기준을 명시하고 이를 이행하도록 지원 및 수가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단순히 병상 수가 늘어나니 의사 수를 늘려야 한다는 접근은 순서가 잘못 됐다는 것.
또 지역 필수의료 보강을 위한 대책으로 입원전담전문의 제도에서 평가 기준을 강화하고 이를 통해 수가를 차등적으로 지급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전공의가 담당할 수 있는 환자 수를 전문의의 절반으로 제한하는 것도, 전문의 고용을 늘릴 수 있는 방안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강 회장은 "최근 국민의힘 이종성 의원이 전담전문의 채용을 촉진하는 법안을 발의했는데 최대한 빠르게 통과됐으면 한다"며 "다만 이 법안은 국립의료원을 중심으로 마련돼 향후 상급종합병원으로 확대해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무엇보다 무조건 병상을 확보하기보다는 가지고 있는 병상의 인력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를 더 고민해 줬으면 한다"며 "외래 진료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상급종합병원의 기능을 전환하고, 그에 따른 제도나 지불구조를 개편해 무분별한 병상 확장을 억제해야 한다. 이런 부분들은 보건복지부에서 별도로 심사해 규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대한병원협회 권정택 정책부위원장 역시 상급종합병원들이 병상 확장은 결국 필수·지역의료 붕괴를 유발한다고 동의했다.
현재도 수도권에 상급종합병원이 몰려 지역 간 사망률에 차이가 생기는 등 쏠림 현상이 심각하다는 우려다. 이런 상황에선 병상 확충이 아닌 재배치에 집중해야 하며, 이를 담당한 인력 수급 대책을 함께 마련해야 한다는 것.
이 같은 문제를 상급종합병원만의 문제로 보긴 어렵다는 입장도 내놨다. 상급종합병원 유치 등의 공약이 지자체장 선거 등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한 중앙의 통제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또 경영이 악화해도 파산 직전까진 의료법인을 운영해야 하는 현 의료법도 문제로 지목했다. 의료법인이 스스로 퇴출할 수 있는 방법이나 인수합병이 가능하도록 개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코로나19 여파 등으로 병원 공사비가 2배 가까이 증가하고 환자 감소로 경영난에 처한 병원이 늘어난 상황을 조명하기도 했다. 이렇게 남은 병상을 상급종합병원이 활용하도록 하는 방안도 유효하다는 것.
이와 관련 "병상 재배치와 지역 균형 발전이 중요한데 지자체장 선거에서 대형병원 유치를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 정부에서 통제해야 하는데 검증이 부족하다고 본다"며 "일본과 비교해 봐도 과연 우리나라에 이정도의 병상이 필요한지 의문이다. 상급종합병원이 회복기 환자까지 담당하겠다고 나서는 것보다 의료전달체계에 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 의료자원정책과 오상윤 과장 역시 우리나라 병상이 과잉 공급된 것을 인지하고 있으며 이를 규제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
복지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추계하기론 오는 2027년까지 우리나라에서 약 10만5000여 개의 병상이 과잉 공급될 것으로 예상된다는 이유에서다. 반면 병상가동률은 72.8%에 불과한데 이상적인 가동률로 여겨지는 85%를 넘기는 병원은 500병상 이상의 종합병원 정도라는 것.
하지만 병원설립에 있어 지자체 권한이 강해진 반면, 이를 규제할 수 있는 정책이 미비한 점을 난점으로 꼽았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지역별 총량제나 사전 승인제 등 규제책이 있었는데 2000년대부터 의료 인프라 확충을 이유로 사라지면서 현 상황을 마주하게 됐다는 지적이다.
다만 복지부는 2019년 8월 병상 관리를 위한 의료법 개정을 주도하는 등 규제책 강화를 위해 노력해왔으며, 향후에도 관련 노력을 지속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오 과장은 "복지부 역시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으며 병상 관리 정책을 체계적으로 강력하게 시행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며 "특히 행정적인 측면에서 볼 때 개설 허가권에서 많은 권한이 시군구로 위임되면서 분권화가 굉장히 많이 진행됐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는 중앙 차원에서 통제를 강화하고 싶어도 쉽지 않은 정책 환경이 됐다는 우려가 있다. 다만 2020년 2월부터 병상 관리 시책을 중앙정부에서 수립을 하도록 하는 의료법 조항이 시행이 됐다"며 "그동안 코로나19 여파로 병상 관리에 적극적이지 못했는데, 이제 어느 정도 종식이 된 만큼 다시 한 번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추진을 하고자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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