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혈우병 치료제 시장을 둘러싼 GC녹십자와 JW중외제약 간 경쟁이 점입가경이다.
녹십자가 혈우병 치료제 헴리브라(에미시주맙)의 혈전 이상사례 보고율를 공개적으로 저격하자 JW중외제약이 유감을 표명, 제약사 간 신경전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이를 두고 임상현장과 제약업계에서는 지난 5월 헴리브라 급여 확대를 계기로 치료제 시장 재편 움직임에 따른 현상으로 평가했다.
발단은 지난 21일 녹십자가 발표한 헴리브라의 혈전 이상사례 보고율 자료다.
녹십자는 헴리브라의 혈전 이상사례 보고율이 8인자제제보다 2.83배 높다는 연구결과 자료를 배포했다. 이는 녹십자가 미국식품의약국(FDA) 의약품 이상사례보고시스템(FAERS)을 직접 분석해 미국출혈장애학회에서 발표한 자료다.
해당 연구는 최봉규 녹십자 데이터사이언스팀장 주도로 성균관대학교 약학대학, 한국혈우재단 부설의원 등이 참여했다.
연구의 핵심은 지난 5년간(2018년~2022년) FAERS 데이타베이스를 분석한 결과 헴리브라 투여 후 발생한 이상 사례 총 2383건 중 혈전 이상 사례는 97건으로 전체 이상 사례의 4.07%를 차지한 반면, 8인자제제는 1.44%에 그쳤다는 점이다. 즉, 헴리브라와 8인자제제 투여군의 혈전 이상 사례를 비교하였을 때 헴리브라의 혈전 이상 사례 보고율이 8인자제제보다 2.83배 높게 나왔다는 결론이다.
이를 두고 한국혈우재단 유기영 원장은 "미국 FAERS에 보고된 리얼월드데이터(RWD)를 이용해 헴리브라와 8인자제제의 부작용 사례를 분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다양한 혈우병 신약 출시를 반기지만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혈전 이상 사례를 포함한 실제 의료현장에서 혈우병 신약의 안전성을 확립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JW중외제약은 이 같은 녹십자의 자료 배포에 공식적으로 유감을 표명하며 발표 자료를 조목조목 대응했다.
우선 녹십자의 발표내용에는 총 투여환자 수 없이 FDA에 보고된 이상사례만 있다는 점을 꼬집었다.
JW중외제약 측은 "포스터에 따르면, 헴리브라와 8인자제제의 전체 이상사례 수는 각각 2383건, 9324건으로 8인자제제의 이상사례가 3배 이상 많다"며 "혈전 이상반응 사례 역시 헴리브라 97건, 8인자제제 134건으로 8인자제제의 이상사례 보고가 많은 것을 알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같은 데이터에서 조사된 중대한 이상반응(SAE)은 헴리브라 2383건 중 1545건(64.8%), 8인자제제 9324건 중 7675건(82.3%)으로 8인자제제의 숫자와 비율 모두 8인자제제에서 높게 나타났다"며 "혈우병 환자들은 지혈제 투여시 혈전이상반응 외에도 출혈성 뇌혈관질환과 같은 중대한 이상반응이 다양하게 발생될 수 있다"고 밝혔다.
결과적으로 JW중외제약은 경쟁사 약을 직접 언급했다는 점에 대해 강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JW중외제약은 "각 제품의 출시 시점, 작용기전, 보고 기준 등이 다른 점을 고려하지 않고 경쟁사 약을 직접 언급하며 공식적으로 폄하하면서 환자들에게 불필요한 혼란을 주는 행위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신경전으로 커진 혈우병 치료제 경쟁
이 가운데 임상현장과 제약업계에서는 국내 혈우병 치료제 시장을 둘러싼 경쟁이 녹십자와 JW중외제약 간의 신경전으로 커졌다고 보고 있다.
참고로 헴리브라는 2020년 5월 중증 A형 혈우병 항체 환자에게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된 데 이어 올해 5월부터 비항체 환자에까지 급여가 확대됐다.
A형 혈우병 환자의 대부분이 '비항체 환자'인 점을 감안하면 제한적인 급여에서 전체 환자로 확대됐다고 봐도 무방하다. 2019년 혈우병 백서에 따르면, 국내 A형 혈우병 환자 1746명 중 비항체 환자가 1589명으로 90% 이상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국내 혈우병 치료제 시장은 그동안 줄곧 비항체 치료제로 녹십자가 주도해왔다는 점이다. 녹십자의 경우 국내 시장 1위로 평가받는 다케다 '애드베이트'를 공동판매 하는 동시에 자사 제품인 '그린진에프'와 '그린모노'를 판매하며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의약품 조사기관 아이큐비아에 따르면, 2022년 애드베이트는 195억원, 그린모노 66억원, 그린진에프 27억원을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다케다의 애디노베이트 68억원까지 합한다면 해당 시장 매출의 상당수를 녹십자가 관여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헴리브라가 비항체 환자에까지 급여가 확대되면서 올해 하반기부터 직접적인 경쟁이 벌어지면서 이 같은 신경전으로 이어졌다는 평가다.
더욱이 최근 국내 혈우병 치료 상당수를 책임지는 혈우재단 부설 의원 처방을 위한 산하 의약심의위원회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관심이 집중되는 양상이었다. 이와 관련해 산하 의약심의위원회에서 한 차례 헴리브라 취급을 논의한 바 있지만 JW중외제약에 추가자료 보완을 요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현재 혈우재단 부설 서울의원에서는 헴리브라 처방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대한소아혈액종양학회 임원을 지낸 A대학병원 교수는 "국내 혈우병 진료의 상당수가 혈우재단 산하 의원에서 이뤄지고 있다. 결국 치료제 시장 판도를 좌지우지 하는 것은 혈우재단 산하 의원에서의 처방 가능 여부"라며 "헴리브라 처방 가능 여부에 따라 제약사 간의 치료제 경쟁도 한층 치열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국내사 관계자는 "결과적으로 국내 혈우병 시장을 둘러싼 경쟁에서 시작된 것 같다. 다만, 이번 녹십자의 공동연구에 혈우재단이 참여한 것은 주목해야 한다"며 "국내 혈우병 치료 상당수가 혈우재단 산하 의원에서 이뤄지는 만큼 이번 이상사례 보고 연구가 향후 헴리브라 처방 확대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두고 볼 일"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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