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 본인확인 의무화 제도 시행 첫 날인 지난 20일, 일선 의료기관들은 분주한 하루를 보냈다. 특히 직원이 적고 고령층 신규환자가 많은 개원가에선 업무 혼선을 겪었다. 또한 향후 이 제도를 악용하는 파파라치가 생길 것이라는 우려가 잇따랐다.
보건복지부는 국민건강보험 본인확인 의무화를 시행했다. 이에 따라 환자는 주민등록증·여권·운전면허증·외국인등록증 등 신분증이나 모바일 건강보험증·공동인증서·금융인증서·간편인증 등이 없으면 진료를 받을 수 없다.
■병원들, 제도 안내 '분주' 전담 인력 투입
20일 메디칼타임즈가 개원가를 취재한 결과, 아직까진 현장에 이렇다 할 혼란이 관측되지는 않은 상황이다. 특히 오피스 상권 병·의원 경우 환자 대부분 신분증을 소지하고 있었다.
동네 상권 개원가의 경우 신분증을 미지참한 환자가 몇 있었고, 이중엔 의외로 청년층도 있었다. 다만 모두 스마트폰은 가지고 있어 모바일 건강보험증 등록을 안내받아 진료받는 모습이었다.
기자 본인이 직접 모바일 건강보험증으로 진료받기도 했다. 기존에 관련 앱을 사용하진 않았지만, 이미 모바일 공동인증서를 발급받은 상태여서 가입 및 사용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 접수 역시 앱을 켜 보여주는 절차가 추가된 것뿐이어서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이전엔 본인확인에 사용되는 모바일 건강보험증 QR코드가 30초가 지나도 갱신되지 않아 도용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나왔지만, 이날 기준 문제없이 갱신됐다.
또 한 병원 간호사를 취재한 결과, 요즘은 예약하고 내원하는 환자가 많아서 미리 신분증 지참을 안내할 수 있고 관련 업무를 원무팀에서 전담해 큰 부담이 없다고 설명했다.
다른 동네의원 개원의 역시 "아무 문제 없이 돌아가고 있다. 본원의 경우 대부분 동네 환자들이어서 구면이고 6개월 이내에 내원한 환자는 본인확인이 필요 없어 괜찮다"며 "간호사들 역시 프로그램을 쓰니 큰 어려움이 없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이어 "4~5년 전부터 신규환자들의 신분증을 확인해 왔는데 옛날엔 신분증을 확인하자고 하면 굉장히 기분 나빠 하는 분들이 꽤 있었는데 요즘엔 대부분 잘 응해준다"고 부연했다.
일선 병원들은 제도 시행을 적극 알리는 데 주력하는 모습이었다. 현대병원은 환자 본인확인 의무화 첫날을 맞아 고객지원행사를 진행했다. 신분증 미지참 환자에게 그 대신 모바일로 국민보험증을 발급받을 수 있도록 안내했다.
에이치플러스 양지병원도 환자 본인확인이 의무화 제도를 안내하는 동시에, 신분증 미지참 환자가 진료받을 수 있도록 돕는 안내 서비스를 제공했다.
■할만하다는 건 병원급 얘기…의원급은 '대혼란'
하지만 이렇게 별도의 본인확인에 인력이 필요하고, 이 인력을 고용·유지하는데 정부 지원 없이 의료기관의 부담이 커진다는 비판은 여전하다. 본인확인을 위한 인력을 별도로 고용·유지하기 어려운 영세한 의원은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이 같은 영세의원 중 소위 필수의료과가 많다는 것도 문제다.
특히 고령층 신규환자까지 많은 의원에선 곡소리가 나오는 모습이다. 이들 환자는 신분증 지참률이 낮고, 모바일 접근성도 떨어지기 때문이다. 지역 병·의원의 경우, 이 같은 문제가 더욱 심각해진다.
스마트폰에 공동인증서·금융인증서·간편인증이 등록되지 않은 환자도 있는데, 이 경우 본인확인까지 10~20분이 걸리는 실정이다. 물론 이를 위해선 직원 한 명이 붙어야 한다.
만약 접수처 직원이 한 명뿐인 의원이라면 계속해서 환자가 밀릴 수밖에 없는 셈이다. 그렇다고 신분증을 미지참한 환자를 돌려보낼 수도 없는데 이는 진료 거부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본인확인이 안 되는 환자는 건강보험 적용 없이 100% 본인 부담으로 진료를 볼 수 있지만, 이 역시 의료기관의 행정업무 부담을 키우기는 마찬가지다.
환자가 다시 신분증을 들고 14일 이내 재방문한다면, 건강보험금이 적용된 만큼의 차액을 다시 돌려줘야 하기 때문이다. 본인부담률 100%로 진료를 본 환자는 14일이 지날 때까지 기다렸다 청구해야 하고, 이후 다시 차액을 계산해 돌려줘야 한다.
의료기관이 본인확인을 하지 않을 시 최대 100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되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이를 악용해 보상금을 타내려는 파파라치가 등장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의료기관 입장에선 업무 부담에 더해, 작정하고 신분증을 위조하거나 도용하는 환자들을 걸러내는 데에도 촉각을 곤두세워야 하는 것.
환자용 모바일 건강보험증 QR코드 미갱신 문제는 해결됐지만, 이를 스캔하는 의료기관용은 여전히 문제가 있다는 불만도 나온다. 의료기관용 앱의 로그인이 유지되지 않아, 매번 스캔할 때마다 다시 로그인해야 하는 불편이 있다는 것. 환자용 앱이야 그렇다 쳐도, 의료기관까지 매번 본인확인을 해야 할 필요가 무엇이냐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한 내과 원장은 "오늘 진료가 너무 힘들었다. 본인확인을 해야 한다고 하니 '원래 여기 다니던 사람인데 갑자기 왜 그러냐'고 당황하는 분들이 많았다"며 "의무적으로 바뀌었다고 안내해도 일단 신분증을 가진 분이 없는데 여기서 약간 트러블이 발생하고 앱을 다운해 가입까지 해드리는 과정이 15분 정도 걸린다"고 말했다.
이어 "금융인증서나 공동인증서가 어디 있는지 모르는 분들도 있는데 이 때문에 아예 진료를 포기하고 돌아가신 분도 몇 있었다"고 부연했다.
■대개협·의협 강력 반발 "정부 책임 왜 떠넘기나"
의사단체들은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이는 정부의 책임을 민간에 떠넘기는 일이라는 지적이다. 환자 본인확인 의무화에 대한 홍보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아 이를 의료기관이 대신하는 실정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이와 관련 대한개원의협의회 김동석 회장은 "회원들 반응이 상당히 격앙돼 있다. 현실적으로 맞지도 않고 아파서 온 국민을 신분증으로 진료하느니 마느니 하는 것은 장난질이나 다름없다"며 "도용으로 재정이 누수된다면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직접 구상권을 청구해 해결할 일이지 왜 의료기관에게 돈을 받겠다는 것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의료기관엔 이익도 없고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과태료가 웬 말이냐. 좋게 끝나는 때도 있겠지만, 누군가 악의를 가지고 끝까지 도용하려고 한다면 당할 수밖에 없다"며 "진료 거부도 안 되고, 2주 동안 청구도 못하고, 이는 고의적으로 소규모 병·의원을 죽이려는 것밖에 안 된다"고 비판했다.
대한내과의사회 이정용 회장은 "신분증 확인을 안 한 것에 의료기관에만 과태료를 부과하는 것은 부당하다. 이대로면 이를 악용하는 파파라치 같은 게 생길 수가 있다"며 "이 같은 문제를 예방하려면 적어도 리베이트 쌍벌죄와 같이 양쪽을 처벌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한의사협회 역시 이 같은 제도로 피해를 보는 것은 국민이라고 우려했다. 제도를 미리 시연해 문제점을 확인하는 조치 없이 무작정 법안만 통과시켰다는 비판이다. 또 협회 차원에서 꽌련 부작용을 개선할 수 있도록 대응하겠다는 방침이다.
이와 관련 의협 성혜영 대변인은 "이 제도의 문제점을 계속해서 알려왔지만, 정부가 일방적으로 시행했다"며 "제도를 도입하기 전 미리 시연하고 부작용을 해결해야지 무조건 법만 만들고 시행은 알아서 하라는 것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오히려 수가가 높지 않은 필수의료과가 직원을 많이 고용하지 못해 대책이 없는 상황이다"라며 "정부에 이 제도의 실효성에 대한 검토를 요청하는 한편, 그 허점을 파악해 문제점 대응할 수 있도록 시정을 요구해나갈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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