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책을 읽고는 한다. 최근에 읽은 소설은 김승옥 작가님의 무진기행이다.
무진기행은 여로형 소설이다. 화자인 나, 윤희중이 무진으로 향하며 시작되고, 떠나며 끝난다. 그는 제약회사의 전무이사로 승진하기 직전, 아내의 권유를 계기로 재충전의 차원으로 무진으로 향한다. 무진이란, 일상에서 벗어난 탈일상의 공간이며,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되는 몽환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에게 무진은 이상향적인 공간은 아니다. 그가 무진으로 향하는 순간은, 그가 전쟁, 실직, 질병 등 인생의 중요한 고비를 맞이한 때이기 때문이다. 무진에 간다고 상황을 타개할 뾰족한 수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무진으로 줄곧 가고는 하였다. 무진에서의 그의 생활은 그야말로 탕아라고 할 수 있다. 골방에 처박힌 채 누우런 얼굴과 더러운 옷차림으로 공상과 불안, 초조함을 쫓고자 독한 담배를 피우고, 또한 하염없이 우편배달부를 기다리고는 하였다.
작품 속 시점의 그는, 일견 전도유망해 보이는 청년으로서 무진의 구석구석들을 다시 둘러본다. 신문을 신청하고, 옛 친구의 초대로 세무서를 방문하며, 어머니의 산소를 들르고, 해변가를 산책한다. 또한, 자신의 젊은 날의 초상과 같은 한 인물을 만나 현재 시대 기준으로 분명한, 일탈을 벌인다. 작품 속 문장들은 일상과 탈일상의 충돌, 세속과 순수의 충돌, 인물의 방황 등을 내밀하게 표현한다.
삶에는 원래 굴곡이 있다고 한다. 작품을 읽으며 든 생각은, 우리도 언젠가는 무진에 갈 일이 있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어쩌면 누군가는 이미 머무르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무진에 있다고 꼭 골방에 머물러야 할지는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이다. 방 밖에는 숲과 해변, 골목과 운동장, 신문지소와 사무소들이 있다. 시간을 내어 숲과 해변을 거닐고, 골목을 누비며, 운동장에서 뛰어놀 수도 있을 것이다. 혹은 신문지소와 사무소들 등에서 새로운 종류의 일들을 해볼 수도 있다.
실제, 주변의 휴학한 사람들의 삶을 들어보면 다들 다양한 경험들을 쌓고 있다. 몇몇은 우직하게 운동과 의학 공부에 정진하는 친구들도 있고 몇몇은 USMLE가 무엇인지 알아가고 국내외 의료 환경에 대한 시야를 넓히는 친구들도 있다. 몇몇은 학원과 과외 파트타임 일을 하며 노동의 가치를 느끼고, 카페, 공연 조연출, 배민 라이더 등 새로운 일에 종사하며 낯선 환경에 적응하고 임기응변하는 능력을 키우기도 하고 있다 또한, 몇몇은 봉사 활동에 매진하며 어린아이들, 어르신들, 외국인들과 교감하고, 사회의 소외된 집단에 대한 이해를 넓혀가고 있다.
작품은 갑작스러운 전보와 그에 대한 화자의 선택으로 화자가 무진을 떠나며 마무리된다. 화자는 무진에 머무르는 것과 바로 떠나는 것,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다. 탈일상은 그것을 새로운 일상으로 받아들이거나, 혹은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오며 끝나게 될 것이다.
현재 사람들은 각자의 자리에 자리를 잡고 각자의 일들을 하고 있다. 가시적으로 그들의 삶이 바로 눈 앞에 보이지는 않지만, 무진에 머무르는 사람들, 그리고 삶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모두 건강하기를, 행복하기를, 보람을 얻을 수 있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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