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부산에서 개원을 하면서 본격적인 의업에 들어섰다. 그때 이후 전신마취 외과 수술을 한 것은 단 한 차례뿐이었다. 심한 장 유착이 있는 환자를 수술로 해결해 달라는 후배의 부탁을 받고 전신마취를 하고 수술을 해 주었다. 그게 유일한 경험이다. 지금은 피부나 근육 등에 발생한 표피낭, 종기나 양성 종양을 국소 마취를 하고 제거하면서 외과 의사로서의 생계를 이어나간다.
1990년대 전공의 시절 때는 주당 120시간 이상 일해야 했다. 그러나 고생하면서 지낸 4년 동안의 전공의 시절에 배운 갖가지 전신마취 수술을 이제는 하지 않는다. 이런 방식으로 외과 전문의가 '육성되고 유통되는 것'은 소모적이며 바람직하지도 않다. 외과 의사의 절반 이상이 전공의 시절 배운 외과 수술을 하면서 살고 있지 않다. 그리고 비급여가 아니면 기피과 의사들은 생존이 불가능하다. 왜곡의 연속이다. 그래서 현재의 의료제도나 전문의 제도에 대한 회의가 든다.
지난 2020년 정부가 공공의대 신설을 하려 하자 젊은 의사들이 거리로 나섰다. 당시 400명의 공공의대(정확히는 의전원이다) 신설에 대해 젊은 의사들이 집단으로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같은 해 코로나가 중국에서 시작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이 감염되고 사망하였다. 의대 정원 증원과 관련된 대정부 투쟁은 코로나19에 대한 대응을 위해 잠정적으로 중지되었다.
중단되었던 의대 정원 증원 논의는 24년 2월 초 재개됐다. 윤석열 정부가 필수의료정책패키지라는 이름으로 의대 정원 증원 정책을 다시 펴기로 한 것이다. 이에 반발한 전공의들은 자발적 사직으로 대정부 불만을 표현했고, ‘현재 진행형’이다. 정부의 대응은 의대 정원 증원은 과학적 근거를 가진 것이고 정책적 판단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반면 젊은 의사들은 원점 재검토를 주장하고 있다.
지난 6월 26일, 의료계 비상 상황 관련 국회 청문회를 통해 나온 정부 측의 발표를 통해 그간의 과정을 알 수 있었다. 내용을 들어보면 사전에 의료 정책에 대한 문제 의식은 있으나 해결 방법은 전혀 구체적이지 않았다. 게다가 전공의 사직에 대한 대비책이 없었다. 정부가 의대 정원과 필수의료정책패키지를 발표하면 의사들의 저항이 있다가 3~4주 정도 지나면 중지될 것으로 판단하고 일을 강행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사태 초기에 전공의들의 복귀 시한을 정했다가 다시 연장했고, 행정 처벌을 하겠다는 엄포를 하였다가 연기했으며, 업무복귀 기한을 정했다가 번복하는 등의 '갈팡질팡 행정'만을 반복하고 있다.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에 소위 기피과 문제를 해결할 적극적인 방안이 있었다면 현재와 같은 상황, 즉 90%가 넘는 전공의가 의료현장에 복귀하지 않는 현상이 생기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국내 의료 정책 문제를 국민들에게 설득하기는 너무 어렵다. 의사들에게 올바른 의료정책을 제안하는 것 역시 너무 어렵다. 강제적인 건강보험법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건강보험은 국민들에게는 혜택을 주었으나 기피과 의사들에게는 짐이 된 채 수십 년을 이어왔기 때문이다.
기피과 문제를 쉽게 이해하기 위해 직장의 임금과 수당 체계를 살펴보자. 임금은 정상적인 연봉 외에 연장 근무나 야간 업무, 휴일 근무에 따른 수당, 위험 수당 등으로 구성된다. 즉 노동의 강도와 위험이 강해질수록 경제적인 보상을 더 하는 방식이다. 업무의 경험과 중요도에 따라 직급이 달라지고 급여가 달라진다. 승진에 따라 수당이나 인센티브를 더 받기도 한다. 국민은 이런 임금과 수당체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가치부여를 적절히 해야만 자신뿐 아니라 직장도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 모두 잘 안다. 또 이런 보상이 뒤따라야 힘들고 어려운 일을 기꺼이 할 수 있다.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를 추구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의료 특히 외과, 흉부외과, 산부인과 같은 기피과에는 이런 합리적인 보상방식이 없다. 강제지정제와 상대가치 점수 제도 그리고 복잡하게 얽힌 이해관계가 문제 해결을 어렵게 한다.
기피과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필수의료정책 패키지에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것은 상대가치 점수 제도의 개혁이다. 업무 강도와 경험, 중요도 등에 따라 보상을 적절히 이루어지도록 하는 제도개선이 시급하다. 이것을 먼저 조정해서 합의를 이끌어 내고 이렇게 했음에도 해결되지 않으면 다른 제도를 강행하는 것이 정부 당국의 적정한 역할일 것이다. 지난 2월에 정부가 제시한 필수의료정책패키지와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강행이 능사가 아니라는 의미다. 상대가치점수제도의 강제 조정과 재원을 투입하는 방식이 먼저 제시됐어야 했다.
나 자신과 내 가족이 건강에 문제가 생겼을 때 안전하게 수술을 받고 응급치료를 적절히 받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이것을 위해, 의사 중에서도 '힘들고 어렵지만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는 분야의 상대가치 점수를 높이는 것에 동의한다. 필요하다면 건강보험료 인상도 받아들여야 한다. 반면 경증질환으로 외래를 찾고 심지어 응급실을 찾는 것에는 반대한다. 의료 과소비가 큰 문제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각자의 입장에 따라 건강보험에 대한 생각과 요구가 달라지는 것이 문제다. 국민은 돈은 내기 싫고 건강보험의 혜택은 더 많이 받고 싶은가? 정부는 의대 정원을 늘리고 의료인들의 통제만 강화하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하는가? 의사들은 의대 정원 증원은 절대 안 된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24년 파리 올림픽을 통해, 비인기 올림픽 종목에 대한 기업의 적극적인 후원과 이를 바탕으로 한 메달 획득이 기사화되고 있다. 의대 정원 증원 문제로 의정갈등이 깊어지는 이때, 기피과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재정지원이 필요함을 알려준다.
지난 20년 코로나19가 국내에 상륙하였다. 당시 코로나19를 극복하기 위해 정부가 의료진들에게 사용했던 방법들을 상기하자. 코로나19 위기에 대한 당시 정부의 대응방법에 대해 의사로서 ‘방법론적 측면’에서는 이견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코로나19가 확산되자 정부는 공공의대 신설과 의대 정원 증원 논의를 중단하였다. 또 이 때 코로나19 치료에 참여하지 않으려던 의료진들의 참여를 위해 파격적인 대우를 하였다. 코로나19 사망률이 전 세계에서 최저라는 결과가 나온 것은 그런 배경에서였다. 치료 성적이 올림픽 메달과 다름이 없을 정도로 좋았다.
경증 질환을 포함한 모든 질병을 건강보험 급여를 하려는 건강보험 급여 규정에 대한 재고가 필요하다. 중증질환을 치료하는 기피과 의사들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책이 필요하다. 모든 국민이 건강보험 가입대상이 되고, 모든 의료기관이 강제적으로 건강보험 당연지정제에 해당하고, 의사의 경력은 의료비에 반영할 수 없는 강제적인 의료제도가 문제의 핵심이다. 심지어 의과, 치과, 한방 보험에 선택하여 가입할 수도 없다. 사회보험이라는 이유로 개인, 특히 의사들의 자유를 극도로 제한하면서 기피과를 탄생하게 한 것이 의대정원 증원보다 먼저 해결해야 할 제도이다.
싸고 좋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라고 정부가 민간에게 법률로 강제하는 것이 한계에 도달했다. 국민도 의사도 자유의사에 의한 선택을 할 수 없는 제도를 유지한 채 의대정원 증원을 강행한 것이 젊은 의사들의 전공의 수련을 중단하게 하고 의대생들을 휴학하게 하고 대학병원들을 부도위기에 몰아넣었다. 정부, 의사, 국민 그리고 정치인 모두 의료와 의료정책에 대한 생각을 바꾸어야 문제가 해결된다.
의사들도 수술을 받을 일이 있을 때 내 몸을 맡길 외과의사가 미래에는 없어지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건강보험은 국민과 의사 모두에게 다양한 장점을 선사한 것에 동의한다. 그러나 의대정원 증원 사태를 계기로 건강보험이 수십년 동안 추구했던 저수가, 저보장, 저보험료 그리고 선택의 자유가 없는 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싸고 좋은 것은 없다.
젊은 의사들이 기피하는 진료과는 수술이나 중증질환을 치료하는 기피과이고 이런 문제를 만들어 낸 것은 잘못 설계된 건강보험법과 급여규정이다. 따라서 수술이나 중증 질환을 치료하는 의사들과 의료기관에 대한 합리적 대우를 하지 못하게 한 제도의 개혁이 의대정원 증원보다 우선이다. 이 제도의 혁신적 개편이 선제적이고 구체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게 되어야 기피과에 전공의가 지원하게 되고, 전문의로서 역할을 충실하게 할 수 있게 되고, 젊은 의사와 의대생들이 학교와 병원으로 돌아올 것이다. 의대정원 증원 사태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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