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검하수 등 얼굴근육의 이상이 나타나 뇌심부자극술을 받았지만 부작용으로 뇌출혈이 나타나 환자가 사망에 이른 사건과 관련해, 병원 측에 4억5000만원 상당의 손해배상책임이 있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해당 환자는 종교적 이유로 수혈을 거부했는데, 병원 측은 이로 인해 환자 상태가 악화돼 사망했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5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방법원 제15민사부는 뇌심부자극술 후 사망한 환자의 유가족 등이 병원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환자 A씨는 지난 2019년 6월 19일 눈꺼풀이 처지고, 오후에 심해지는 증상 등이 석 달 동안 지속되자 인근병원 신경과에 내원했다. 담당의는 안검하수를 진단하고 리보트릴 등 약품을 처방했다.
하지만 증상이 호전되지 않자 같은 해 8월 12일 다른병원에 내원해 과거 4~5년 전 졸피뎀을 0.3알 장기간 복용한 과거력을 밝히며 6개월 전부터 눈 뜨기 어렵고 대화나 운전 시 악화된다고 호소했다.
의사는 과거 병원에서 진료 내용을 확인하고 뇌 MRI 검사 등 신경학적 검사를 진행한 후 '메이그 증후군'을 진단하며 보톡스 30유닛을 주입하는 치료를 진행했다.
메이그 증후군은 주로 뇌 신경의 지배를 받는 눈 주변 근육과 얼굴 아래쪽과 입 주위 근육에 비정상적인 근긴장이상이 발생하는 질환이다.
이후 A씨는 1년 이상 해당 병원에서 약을 처방받고 보톡스 치료를 이어갔다. 하지만 2020년 8월 5일 치료를 지속하던 병원은 보톡스 40유닛 시술에도 A씨의 치료효과가 떨어지자 진료의뢰서를 작성해 인근 B병원으로 전원했다.
B병원 의료진은 각종 기능검사 및 뇌관류 단일광자 단층촬영(SPECT) 등을 진행한 결과, A씨를 '특발성 구강안면근긴장이상'으로 진단하고 뇌심부자극술(DBS, Deep Brain Stimulation)을 권유했으나 환자 측 반대로 진행하지 않았다.
A씨는 보톡스 치료를 지속했지만 100유닛 시술에도 효과가 크지 않자, 2021년 3월 18일 뇌심부자극술을 다시 받기로 했다.
그는 수술 전 B병원 재활의학과에 내원해 우울감으로 정신과 약을 복용하면서 2~3달 전부터 기억력 악화 등을 호소했으며, 의료진은 여러 검사를 진행한 결과 집중력, 언어능력, 시공간기능 등은 정상수행 능력을 보이나 기억력이 정상 이하라고 판단했다.
A씨는 3월 14일 수술을 위해 입원 후 뇌 3D CT 등 각종 검사를 진행한 결과 특별한 이상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3월 17일 수술에 대한 설명 동의서를 받았으며, A씨는 종교상의 이유로 수혈을 거부한다고 기재했다.
의료진은 3월 18일 A씨를 전신마취하고 두개골을 천공해 신경자극기 전극을 뇌에 삽입한 후 쇄골 아래 삽입한 자극발생기와 전기자극기 연결선으로 연결하는 뇌심부자극술을 시행했다.
전기자극기 연결선을 삽입하는 동안 추정 출혈량은 거의 없었고, 급성 합병증은 발생하지 않았으며, 추정 출혈량은 120이었다.
수술 직후 A씨는 의식이 명료하고 활력징후도 안정적으로 나타나 일반병실로 입실했다.
하지만 수술 다음 날 구역질을 호소하며 속이 울렁거린다고 호소해 진토제 등을 투여했으며, 질문에 느리게 반응하고 동공 확장 등이 나타나자 뇌 CT 검사를 진행 후 급성 뇌내출혈과 급성 뇌실내출혈이 발생했음을 알아냈다.
■ "수술 자체 위험성있지만 의료진 책임 인정 불가피…'수혈'은 직접 사인 아냐"
3월 19일 오전 9시 35분부터 의료진은 A씨의 두개골에 작은 구멍을 만들어 카테터를 삽입하고 약 총 30㏄의 혈종을 제거하는 혈종제거술을 진행했다. 중환자실에서 경과를 관찰하던 중 다시 상태가 악화돼 3월 22일 두개절제술을 통해 다량의 흑적색 혈종을 제거했다.
A씨는 여전히 수혈을 거부하는 상태였기 때문에 의료진은 빈혈 등에 효과가 있는 에포카인주를 투약했다.
여러 약물적 치료에도 A씨는 상태가 악화돼 폐혈전색전증이 나타났고, 의료진은 헤모글로빈 수치가 낮아 치료를 위해 수혈이 필요함을 설명했지만 환자 측은 여전히 이를 거부했다.
의료진은 에포카인을 사용하면 헤모글로빈 수치 상승이 더디고 혈전이 더 많이 생기는 위험이 있음을 설명 후 에포카인을 투여했다.
A씨는 결국 4월 21일 '직접사인 연수마비, 원인 뇌경색 및 파종성 혈관내응고'를 이유로 사망했다.
이에 A씨의 유가족 등은 병원을 상대로 약 25억원에 달하는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진행했다.
이들은 "뇌심부자극술을 진행할 때는 뇌출혈 등 합병증 발생을 방지하기 위해 전반적인 과정에서 혈관의 자극 및 손상을 최소화해야 하지만 의료진이 주의의무를 다하지 못해 뇌출혈이 발생했다"며 "또한 뇌심부 출혈 및 혈종을 적절히 제거하지 못하고 무리하게 혈전용해제를 사용하여 뇌출혈을 악화시켰다"고 주장했다.
이어 "수술 전 환자의 정확한 신체상태와 수술 필요성 및 위험성, 종교적인 이유로 발생 가능한 수술의 위험성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의료진은 "환자의 뇌출혈이 급격히 악화된 후 종교적 이유로 수혈을 거부해 광범위한 뇌경색 및 폐색전증 등으로 전신이 악화되고 사망했다"며 "뇌출혈과 사망은 인과관계가 없다"고 항변했다.
재판부는 환자 측 손을 들어줬다. 이들은 "뇌출혈 증상이 수술 4시간 후에 나타났으며 전극이 삽입된 부위와 뇌출혈 부위가 일치한다는 점과 A씨에게 뇌출혈이 나타날 만한 기저질환이 없었던 점 등을 고려하면 의료진 과실로 뇌출혈이 발생하고 환자가 사망했다고 추정된다"고 판단했다.
이어 "해당 수술은 부작용으로 뇌출혈이 나타날 수 있지만 수술 자체 위험성으로 뇌출혈이 발생했더라도 의료진에게 책임이 있다고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환자의 수혈 거부와 관련해서는 "치료에 영향을 미친 사실은 인정되지만 뇌출혈이 발생하면 사망위험이 높기 때문에 표준적 치료를 했다더라도 반드시 생존했을 것이라 보기 어렵다"며 "또한 환자의 수혈 거부를 의료진이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위험을 감수하고 치료에 임했다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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