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집단 사직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병의원에서의 방어진료 행태가 고착화되고 있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검사, 치료 과정에서 합병증이 발생할 경우 관리를 위해 추가적인 인력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이러한 우려가 있는 검사, 치료는 최대한 피하거나 다른 과에 의뢰하는 행위가 늘고 있는 셈이다.
특히 환자의 경과 관찰이 필요한 임상시험의 경우에도 인력 공백을 우려, 환자 등록을 포기하고 있어 전공의 집단 사직에 따른 영향이 환자에게 부정적인 효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1일 의학계에 따르면 올해 2월을 기점으로 시작된 전공의 집단 사직에 따른 여파가 현실화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A대학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전공의 사직 사태 이후로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환자가 아니라면 조직 검사를 시행하지 않는다"며 "본인의 경우 올해 한 건도 조직 검사를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주요 원인은 만일에 하나 발생할 수 있는 합병증 발생 가능성 때문"이라며 "조직 검사 이후 소소하게는 통증부터 폐 기흉이 발생할 수도 있고, 최악의 사태로는 사망 사례도 나올 수 있어 이런 발생 위험성을 원천봉쇄하는 쪽으로 방어진료를 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의 경험 상 보통 100명 당 한명 꼴로 합병증 발생한다. 합병증 발생으로 환자가 입원하는 경우 대응 인력을 추가해야 하기 때문에 전공의가 없는 현실상 이를 감당할 수 없다는 것.
A 교수는 "학회 활동, 병원 회의 등으로 저녁에도 일정이 꽉 차 있을 때가 많아 교수가 직접 대응하긴 어렵다"며 "어쩔 수 없이 소극적인 진료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인데 진단뿐 아니라 치료 영역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관찰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보통 항암 치료나 색전 치료가 필요한 환자도 인력 부족을 이유로 방사선 치료 쪽으로 의뢰한다"며 "방사선 치료는 외래에서 하기 때문에 예전 같으면 입원시켜 치료했을 환자들을 방사선 종양과로 보내고 있다"고 귀띔했다.
임상시험의 등록 건수 감소 우려도 나왔다.
B대학병원 내과 교수는 "환자 질병과 연관되는 임상시험이 진행되는 경우 이를 고지하고 임상시험 등록을 하게된다"며 "문제는 환자의 경과 관찰 및 검사를 통한 예후 변화의 기록, 추적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인력이 추가로 필요한 임상시험에는 환자 등록을 최대한 피한다"며 "각종 임상 데이터가 쌓이고 이를 분석해서 연구 논문도 나오는 것인데, 이같은 방어진료 행태가 고착화된다면 임상 영역뿐 아니라 연구 분야의 타격도 불가피하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최근 학술대회를 개최한 소아청소년과학회도 비슷한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임상 현장에서의 전공의 공백만 부각돼 있지만 학술을 중심으로 한 '연구 공백'도 상당하다는 것.
소청과학회 김지홍 이사장은 "남아 있는 전공의뿐만 아니라 전임의들이 당직 근무에 시달리면서 연구 활동에 할애할 시간이 부족해졌다"며 "재작년 대비 학술대회장에서 공개되는 구연 발표나 초록의 수가 30% 줄어들은 상황인데 전공의 공백 문제로 내년이 더 걱정이 된다"고 우려했다.
그는 "최근 수련 실태조사와 필수의료 현황 조사를 같이 시행한 결과 호흡기 중증 치료 가능 의료기관이 약 30% 줄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예를 들면 최고 난이도의 호흡기 치료나 중증 치료 역량을 할 수 있는 기관이 과거 100곳이었다면 지금은 70곳으로 줄어들은 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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