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뤄진 상황에서도 의료계는 여전히 대화 조건으로 '2025학년도 의대증원 백지화'를 주장에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수시모집은 이미 절차가 마무리돼 수정이 어렵지만, 정시모집은 아직 시작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원을 조절할 수 있다는 입장. 이들은 정시모집 시작 전이 의료계 정상화를 위한 '마지막 기회'라고 강조하며, 의대증원 원점 재논의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 "특정 학번 의대생, 정치적 희생양 되지 않도록 선배들이 노력"
14일 진행된 202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은 전년도보다 1만8082명 많은 52만2670명이 지원했다.
재학생은 전년 대비 1만4131명 증가한 34만777명(65.2%), 졸업생은 16만1784명(31.0%)으로 2042명 늘었다. 검정고시 등 기타 지원자는 1909명 증가한 2만109명(3.8%)이었다.
윤석열 정부의 의대 증원이 반영된 첫 시험이기 때문에 의과대학에 도전하는 반수생과 재수생 등 'N수생'이 크게 늘어난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의료계는 수능이 종료된 것과 무관하게 계속해서 2025학년도 의대증원 재조정을 위해 힘쓰겠다고 입을 모았다.
오는 12월 31일부터 정시모집이 시작될 예정인 가운데, 정시 모집 인원 발표 이전 정부와 협상을 통해 의대증원분을 재조정하겠다는 방침이다.
대한민국의학한림원 한희철 부원장(고려의대 생리학교실 교수)은 "수시는 이미 선발 절차가 완료됐지만 정시는 아직 조율의 여지가 있다"며 "의료계는 원점 재논의까지는 어렵더라도 정시 인원 조절을 통해 정원을 최소로 줄이기 위해 계속해서 목소리를 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희철 부원장은 의학교육의 질 재고 방안이 마련되기 전에는 의료계 반발을 잠재울 수 없을 것이라 지적했다.
그는 "내년도 신입생 선발이 끝났다 해도 7500명을 어떻게 동시에 교육할 것인지 대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의료계는 납득할 수 없다"며 "정부가 단순히 의대증원 숫자놀이에 성공했다는 역사를 남기고 싶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현 상태로는 결코 정책이 성공했다고 말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정부는 오히려 의대증원으로 의학교육이 선진화됐다고 말하지만 의료전문가들은 누구도 동의하지 않는다"며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서울권 의대는 증원이 없고 기존 정원이 40명 정도인 미니의대 정원을 3~4배 늘렸기 때문에 부작용은 더더욱 심각할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의 상급종합병원 내과 교수 A씨 또한 "단순 정원을 몇 명 늘리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이 학생들을 어떻게 교육할 것인가가 문제인데 명확히 해결된 것이 아무것도 없다"며 "의대생과 전공의 역시 같은 생각이기 때문에 복귀를 거부하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A씨는 "정부는 예과 1학년 기간에는 교육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얘기하지만 7500명은 10년 동안 의과대학 및 전공의 수련이라는 같은 사이클 속에서 함께 교육받아야 한다"며 "2026학년도 증원분은 의료계와 논의 후에 재지정하겠다고 발표했음에도 당장 내년도 증원은 건드릴 수 없다는 입장을 이해할 수 없다. 전공의와 의대생 복귀 이전에 국민 건강을 위해서라도 내년도 증원은 취소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아무리 분반해 수업을 진행하고 교수 임용 기준을 낮춰 숫자를 확보한다 해도 2배 가까이 늘어난 정원을 수용할 수 없다"며 "특정 학번의 의과대학생들이 정치적 희생양이 되지 않게끔 지금이라도 바로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의료계에서도 합리적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해 전공의와 의사협회가 정부와 대화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부 나왔다.
수도권의 한 수련병원 관계자는 "정부는 의료계가 과학적 단일안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이유를 방패 삼아 2026학년도 정원마저 일방적으로 강행하지 않도록 의료계가 공격적으로 의견을 개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의료계는 약 1년 동안 강경한 입장을 내세우며 의대증원 반대 목소리를 냈지만 거둔 성과는 미미하다"며 "힘겹게 의정협의체가 성사된 만큼 불가능을 고집하며 또다시 사태 해결 기회를 놓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젊은 의사들은 여전히 정부와 대화를 거부하며 강경한 입장을 내세우고 있다.
대한전공의협의회 박단 비상대책위원장은 최근 본인의 SNS를 통해 "지금이라도 2025학년도 의대 모집을 정지하든, 전공의 7개 요구안 일체를 수용해야 다가올 혼란을 조금이라도 수습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를 무시한 정부와 여당이 모든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입시 전문가 "2025학년도 증원 조정 방법 있지만 실현 어렵다"
입시 전문가들은 수능까지 끝난 시점에서 내년도 정원을 재조정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종로학원 임성호 대표는 "가장 현실적으로 내년도 의대증원을 조절할 수 있는 방법은 각 대학이 수시와 정시 모든 전형에서 추가합격자를 선발하지 않거나 최소화하는 것"이라고 제안했다.
이어 "추가합격자 조정은 대학이 알아서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이라며 "예비번호를 많이 배부하지 않으면 분명 구멍이 나타나는 대학들이 나올 수 있어 정원 조절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작년 신입생 선발에 예비합격자를 40번까지 돌렸다면 올해는 규모를 절반으로 줄여 정원보다 적게 뽑을 수 있다는 얘기. 하지만 현실적으로 생각했을 때 이 또한 실현되기는 쉽지 않다.
임성호 대표는 "예비선발을 최소화하면 정원의 절반 이상을 뽑지 못하는 대학도 나올 것"이라며 "이는 수험생과 의과대학, 의료계 싸움이 아닌 대학 간 갈등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 39개 의과대학이 단결된 의지 표명을 해야 실현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결국 용기 있는 대학이 선도적으로 추가합격을 진행하지 않겠다고 발표해야 하는데 빗발치는 수험생 항의를 감내하며 어느 대학도 쉽게 나서지 못할 것"이라며 "오히려 과거 의대증원 규모를 2000명에서 1509명으로 감축했을 때처럼 정부가 주도적으로 나서 국립의대 위주로 예비선발을 진행하지 않으면 실현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지만 정부도 (의대증원)의지가 명확해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익명을 요구한 입시전문가 B씨 또한 "정시 모집 시작 전에 정부와 의료계가 합의한다면 정원을 조정할 수 있다"며 "하지만 이로 인한 혼란은 정부가 수습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어 "올해 수능은 반수생이 10만명에 육박하며 2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는데 가장 큰 영향은 의과대학 증원 때문일 것"이라며 "이들은 1509명 의대 증원을 믿고 시험에 응시한 것으로 또다시 숫자가 바뀐다면 대혼란이 찾아올 뿐 아니라 각종 법적 대응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주호 장관 또한 브리핑을 통해 각 대학이 사전 공표한 전형계획·모집요강과 달리 전형을 운영하면 학생·학부모에게 큰 피해 및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는 "정부의 의대증원 의지가 확고한 상황 속 내년도 증원 원점화 주장은 사실상 의미가 없어 보인다"며 "의료계 또한 불가능을 고집하며 시간을 버리지 말고 정부와 협상을 통해 합리적 타협안을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인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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