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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태로운 응급실

분당차병원 소아응급센터 박수현 교수
발행날짜: 2025-03-03 05:00:00

분당차병원 소아응급센터 박수현 교수

우리나라 정부는 응급실이 24시간 편의점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24시간 불만 켜져있다면 아무 불편감 없이 밤새도록 응급이든 비응급이든 의료가 제공될 터인데 무슨 문제냐고 지극히 안이하게 지켜보고 있다.

응급실 안을 들여다보면 위태위태하다. 24시간 응급실 안에는 판매할 물건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배후 진료과의 부재로 안 되는 시술과 수술이 증가하고 중환자 진료가 불가한 경우가 늘고 있다. 판매할 물건이 없는데, 손님을 받고 돌려보내면 진료 거부라고 처벌 받는다. 결국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응급실에서 일하는 의사들은 떠나고 응급실 유지는 어려워진다. 실제 응급실 축소 운영을 하는 병원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정부는 빨리 응급실 인력을 뽑아 24시간 정상 운영하라고 재촉한다.

최근 빅5라 불리는 대형 병원에서 생명과 직결되는 순환기 관련 진료 불가라는 충격적인 소식이 들려왔다. 응급실에서 일하는 입장에서 이는 정말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의정 사태 이전에는 병원에서 특정 과의 응급환자 진료 불가라는 공지는 굉장히 치명적인 일이었다. 어떻게든 대책을 마련해서 빨리 진료 불가라는 말을 없애야 하는 것이었고, 일시적 의료 자원 부재 시에는 공개적으로 공지하기보다는 내부에서 어떻게든 대안을 마련해서 조용히 넘어가야 하는 문제였다. 하지만 이제는 당연하게 '시술 불가, 수술 불가, 응급실 특정과 부재로 불가능'이 공지되고 있다. 통합응급의료정보 종합상황판에 들어가 보면 대다수의 병원에서 시술, 수술, 특정 배후 진료과의 진료 부재가 공지로 기록되어 있다. 이처럼 응급실 내의 배후 진료과가 점점 불가능한 상태에서 24시간 진료 유지 요구는 정부의 아전인수격인 셈이다.

현재 응급실 현장은 최악이다. 지난해 초부터 이보다 더 바닥은 없을 거 같았는데 점점 상황은 생각지 못할 정도로 악화되었다. 그러나 정부에서 아무 문제가 없다고 발표하는 탓에 환자와 보호자들은 응급실에서 ‘진료가 안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해주면 되는데, 될 것 같은데, 마치 안 해주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안 그래도 불안한 상황에서 불만은 폭주한다. 왜 안되는지, 이것이 진료 거부 아닌지에 대한 의구심은 의료진에게 폭력적인 투사로 이어진다. 기본적인 사회적 신뢰감이 깨졌음을 몸소 느낀다.

응급한 환자는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119를 통해 갈 곳이 없다고 하여 받았는데 누가 봐도 응급한 수술이 필요한 경우, 배후 진료가 안 되면 응급실 의료진은 눈앞에서 환자가 시시각각 나빠지는 상황을 보고 있어야 한다. 사십여 개 이상의 병원에 전원 문의를 하고 있으면 나머지 응급환자 진료는 마비가 된다. 그런 이유로 119를 받지 못하면 '응급실 뺑뺑이'에 대한 비난을 받는다. 응급환자나 중증 환자를 보는 것만으로도 힘든데 그보다 더 힘든 것은 환자를 받지 못함을 설명하고 왜 안 되는지를 설득해야 하는 상황이다.

지난해 4월 얼굴 열상 환자가 여러 응급실을 들렀다가 치료받지 못해 사망하는 사례가 있었다. 응급실 의료진이라면 만일 그 상황에서 봉합을 결정할 수 있었을 지를 되짚어볼 것이다. 쉽게 봉합을 결정하기는 어려웠을 것 같다. 이유 중 첫 번째는 단순 봉합이 필요한 얕은 열상이 아닌 깊은 열상의 경우 근육층부터 꼼꼼하게 봉합하지 않으면 나중에 얼굴의 움직임과 표정 그리고 인상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봉합 후 유착이 진행되고 나면 되돌리기는 어렵기 때문에 봉합 시에 신경 써야 할 부분이다. 추후 그 사람 인생에서 평생 가지고 타인을 마주하며 살아갈 중요한 얼굴이기 때문에 전문적인 성형외과 진료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인력 부재로 인해 오랜 시간을 봉합에 들일 수가 없는 것이다. 얼굴의 얕은 열상을 꼼꼼하게 단순 봉합하는데도 준비 과정부터 상처 세척, 소독, 봉합, 드레싱까지 하면 족히 한 시간은 걸린다.

현재 응급실은 전문의 1인 체계가 많고 많아야 2명이 근무를 하는데, 봉합 시술에 들어가 버리면 나머지 응급환자는 진료가 불가하다. 봉합 환자 한 명만 본다면 당연히 많은 시간을 들여서 세심하게 봉합해 볼 수도 있지만 많은 환자들이 이미 응급실에서 진료 중이며 추가로 응급한 환자들이 119를 통해 실려 오고 있는 상황에서 심혈관질환, 뇌혈관질환, 급성 외상 환자 보다 비교적 비응급에 해당하는 봉합 환자를 붙잡고 있을 수는 없다.

응급의료는 보건의 영역을 넘어서 복지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선진국일수록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국적이 달라도 응급한 상황에서 치료받을 수 있는 정책을 만든다. 오랜 시간에 걸쳐 다져온 응급 의료가 후퇴하고 있다. 놀랍게도 의료 선진국이었던 대한민국에 배후 진료과 제한이 없는 응급실은 거의 없다.

간신히 응급실만 유지하고 있는 병원에서도 해결책이 없는 상황이 지속되면서 응급실 의료진들은 하나둘 떠나고 있다. 급기야 밤에 문을 닫는 응급실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그리고 남아있는 이들은 더욱 제한적으로 환자를 받고, 방어적으로 진료할 수밖에 없다. 언론에 나오는 한두 사례가 그냥 누군가의 일이리라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는 한국 의료체계에 지속적으로 붉은 경고등이 켜지고 있는 것이다. 병원의 응급실이 24시간 돌아간다고 하여 안도 해선 안 된다. 곧 무너질 최전방의 방어선에 대한 대안과 대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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