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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멈춘 발걸음, 새로이 보인 세상

고려의대 2학년 강지민
발행날짜: 2025-03-10 05:00:00

고려대학교 의대 본과 2학년 강지민
투비닥터 편집팀

얼마 전, 지난해 다리 골절로 인해 삽입했던 철심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 병실에 누워 있는데, 작년 여름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몸속 이물질을 제거했다는 후련함보다도, 다리를 다쳤던 그 시간이 내게 남긴 흔적이 더 깊었다.

남들 누구나 한 번쯤은 겪는 골절이라지만, 그 골절이 내게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한순간에 찾아왔다. 격한 운동을 한 것도 아니었고, 주의를 다른 데 두고 있던 것도 아니었지만, 계단에서 살짝 삐끗한 대가로 갑작스러운 중족골 골절과 전치 6주 판정을 받았다. 그렇게 6월의 첫날, 여행을 비롯한 모든 일정을 취소한 채 태어나서 처음으로 입원을 하고 수술을 받게 되었다.

한 달 반 간의 요양은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옷을 입고, 씻고, 물을 따라 마시는 것과 같이 이전까지는 너무 당연하게 느껴졌던 일상생활이 수 배의 노력이 필요한 일이 되었다. 집 안에서도 이동이 자유롭지 않았는데, 집 밖은 단순한 불편함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고난의 연속이었다. 목발을 짚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은 '정상인'을 기준으로 설계되어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버스를 탄 날을 잊을 수 없다. 슬슬 밖으로 나가도 된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에 신나서 목발을 들고 현관문 밖으로 나갔다. 낑낑거리며 신발을 신고, 경비실 앞 계단을 내려오니 벌써부터 팔이 저리고 목발을 지지하는 겨드랑이가 아파왔다. 일부러 저상버스가 오는 시간에 맞추어 정류장으로 나갔지만, 그 배차간격이 길고 또 불규칙적이라 타기가 어려웠다.

그렇다고 일반 버스를 타자니, 계단이 가팔라 승하차가 두려웠다. 지하철도 마찬가지였다. 평소 '빠른 환승' 칸을 알려주어 애용하던 지도 어플에는 엘리베이터 위치가 제대로 표시되지 않았고, 대합실로 올라와도 외부로 나가려면 또다시 엘리베이터를 찾아 헤매야 했다. 심지어 서울역에서는 택시 승강장까지 내려가는 길의 에스컬레이터가 멈춰 있어 계단을 붙잡고 한 발 한 발 내려온 적도 있다.

그러나 가장 힘들었던 것은 물리적 불편함이 아니라, 사람들의 태도였다. 목발을 짚고 있으면 당연히 자리를 양보받을 거라 생각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나는 여태껏 대중교통에서 단 한 번도 노약자석에 앉아본 적이 없었고, 앉아서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버스에서 아무도 노약자석에서 일어나지 않아 결국 임산부석에 앉았던 날, 큰 충격을 받았다.

그 자리마저 한 아주머니가 양보해준 것이었다. 물론 외적으로 판단할 수 없는 개개인의 사정이 있겠거니 하면서도 '내 깁스와 목발이 보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끊임없이 들었다. 일부러 짧은 하의를 입어 깁스를 드러냈음에도 좌석을 빠르게 채어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3~40분을 서서 지하철을 탄 날도 있었다.

그때 깨달았다. 지금껏 수도 없이 대중교통을 탔는데도, 왜 나는 목발을 짚거나 휠체어를 탄 사람을 거의 보지 못했는지를 말이다. 물론 지금 당장 본인의 힘듦이 더 크게 느껴지기 때문이겠지만, 그 기저에는 사람들의 무관심이 있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정상인'일 거라 생각하기 때문에, 교통약자를 위한 배려가 왜 필요한지 피부로 느끼지 못한다.

그리고 사실, 나 역시도 다리를 다치기 전까지는 이러한 문제를 전혀 실감하지 못했다. 그렇게 나 역시 '정상인'의 입장에서만 세상을 바라보며 살아왔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깨달은 것은 단순한 불편함이 아니었다. 내 어려움이 단순히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교통약자를 얼마나 배려하지 않는가, 하는 문제라는 점이었다. 지나치게 짧은 횡단보도의 초록불 시간, 보행 보조 기구를 이용하는 사람들을 고려하지 않은 도로 설계, 그리고 이전에는 무심히 지나쳤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시위까지—이제는 그것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깐의 경험이었지만, 나 역시 교통약자의 입장이 되어 보니 그들의 어려움이 얼마나 절실한 문제인지 비로소 보였다. 이전의 내가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했던, 타인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아도 내가 원하는 곳으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뼈저리게 느꼈다.

우리는 누구나, 언젠가는, 약자가 될 수 있다. 어린이, 노인, 임산부, 그리고 다리를 다친 누군가. 하지만 지금의 사회는 '정상적인' 사람들만을 기준으로 만들어져 있고, 그 구조는 쉬이 바뀌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가장 중요한 것은, 기본적인 우리의 인식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누구나 교통약자가 될 수 있으며, 그 불편함을 줄이기 위한 배려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것이다. 상투적인 말일 수 있지만, 작은 관심들이 모이면 이동 약자에 대한 배려가 당연하다는 사회적 풍조가 형성될 것이고, 이는 결국 기존의 정상인을 기준으로 설계된 사회 시스템이 자연스럽게 개선되는 변화로 이어질 것이다.

이동의 자유는 단순한 편의가 아닌 인간의 기본적 권리다. 그리고 그 권리가 모두에게 보장될 때, 비로소 사회는 성숙해진다. 비록 속도는 다르더라도, 모두가 불편함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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