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번 외과 실습을 마치고 칼럼을 썼을 때, 나는 수술실의 긴장감과 환부를 도려낸 후 회복되어 가는 환자들의 모습에서 느낀 의사의 보람에 대해 이야기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6주간의 내과 실습은 내게 전혀 다른 차원의 질문을 던져주었다. 내과 실습은 드라마틱한 해결보다는, 질병을 안고 살아가는 환자의 삶 그 자체를 마주하는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외과와 내과의 가장 큰 차이점은 환자가 처한 상황과 치료의 지향점에 있었다. 외과 병동의 환자들은 대개 수술을 견딜 수 있는 전신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고, 수술이라는 변곡점을 지나면 회복의 그래프를 그리는 경우가 많았다.
반면 내과에서 만난 환자들은 수술이 불가능하거나, 수술보다는 약물과 생활 습관 조절을 통해 질병을 관리해야 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완치가 아닌 관리와 유지가 목표인 상황에서, 환자가 겪는 고통의 시간은 길었고 이를 지켜보는 의료진 또한 끈질긴 싸움이었다.
내과 의사가 짊어져야 할 무게를 처음 실감한 것은 소화기내과 실습 때였다. 나는 간경변증 환자 한 분을 배정받아 문진을 진행하게 되었다. 첫날 병실을 찾았을 때, 환자분은 복수가 차 있어 힘겨워 보이긴 했지만, 의사소통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내 눈을 맞추며 증상을 설명했고, 학생인 나에게 따뜻한 격려를 건네기도 했다.
나는 다음 날의 문진을 기약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병실을 나섰다. 하지만 병마는 예고 없이 환자를 덮쳤다. 이튿날 다시 찾은 병상에서 환자분은 의식이 저하되어 내 물음에 대답하지 못했다. 그리고 셋째 날, 환자분의 상태는 충격적이었다. 간성혼수로 인해 눈동자는 초점을 잃은 채 돌아가 있었고, 손발은 의지와 상관없이 꺾여 있었다.
불과 이틀 전까지 나와 대화를 나누던 사람이 급격히 생명력을 잃고 병상에 누운 위중한 환자로 변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일은 실습생인 내게 큰 정신적 충격이었다. 환자의 상태가 악화하는 상황을 실시간으로 목격하면서, 나는 내과 의사가 마주해야 할 상실감이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심장내과 실습에서는 생과 사가 갈리는 급박한 현장을 처음으로 목격했다.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실려 온 환자에게 의료진이 심폐소생술과 관상동맥 중재 시술을 동시에 시행하는 상황이었다. CPR이 실제 사람에게 행해지는 모습은 교과서나 실습실 모형과는 전혀 다른 압도감을 주었다. 좁은 시술실 안에서 땀을 비 오듯 흘리며 흉부 압박을 이어가는 인턴 선생님들의 모습을 보며, 묘한 기분이 들었다.
저 치열한 모습이 어쩌면 나의 머지않은 미래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 그리고 ‘과연 나도 저 상황에서 당황하지 않고 환자를 살려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과 책임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긴 시간 끝에 환자의 심장 리듬이 돌아왔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중환자실로 옮겨진 환자는 여전히 의식이 돌아오지 않은 상태였다.
나는 교수님의 회진을 따라다니며 그 이후의 과정을 지켜보았다. 심장은 다시 뛰지만 깨어나지 못하는 환자 앞에서, 교수님은 보호자를 위로하며 아주 세심하게 환자를 살폈다. 소변량, 혈압, 산소포화도 등 수많은 검사 수치를 하나하나 확인하고, 아주 미세한 약물 용량까지 조절하는 교수님의 판단 과정을 보며 단순히 심장이 다시 뛰게 만드는 것이 끝이 아니라, 그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데이터 분석과 고민이 필요한지 깨닫는 순간이었다.
신장내과에서는 만성질환이 환자의 일상을 어떻게 무너뜨리는지 목격했다. 신장내과 병동과 투석실에는 만성 신부전 환자들이 많았다. 환자들은 일주일에 3번, 한 번에 4시간씩 혈액투석을 받아야 했다. 투석 시간뿐만 아니라 이동 시간과 투석 후의 피로감까지 고려하면, 사실상 정상적인 사회생활이나 직업 활동을 유지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더욱 안타까운 점은 신장 질환이 단독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고혈압이나 당뇨병 같은 만성질환의 합병증으로 오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었다. 평생 약을 먹고 식단을 조절해 왔음에도 결국 투석을 피할 수 없게 된 환자들의 모습에서 만성질환의 무서움을 보았다. 내과 질환은 환자의 평생을 따라다니며 삶의 질을 좌우하는 무거운 족쇄였다.
외과 의사가 수술 여부와 방법을 결정하는 결단의 연속이라면, 내과 의사는 환자의 변화하는 상태를 끊임없이 관찰하고 조절하는 인내의 연속이었다. 외과 실습 때는 수술 후 환자가 좋아지는 모습에서 직관적인 보람을 느꼈고, 내과 실습을 하면서는 환자가 더 나빠지지 않도록 막아내고, 의식이 없는 환자의 곁에서 수치와 싸우는 의료진의 모습에서 경외심을 느꼈다.
6주간의 내과 실습을 통해 나는 의사의 역할에 대해 다시 정립하게 되었다. 환자를 살린다는 것은 수술을 성공적으로 끝내는 순간뿐만 아니라, 서서히 기능을 잃어가는 장기를 대신해 약물을 조절하고, 일상이 무너진 환자의 곁에서 최선의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는 긴 여정을 포함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앞으로 의사가 되어 마주할 수많은 환자 앞에서, 나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 술기를 익히는 것에 더하여 환자의 데이터를 집요하게 파고들고 마지막 순간까지 환자의 상태를 놓지 않는 환자와의 동행을 잊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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