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과 때는 놀아~ 절대 공부하지 마~"
선배들을 만나면 흔히 들을 수 있는 조언이었다. 본과 때 정말 열심히 공부해야 하니, 예과 때 놀아놓으라는 말. 심지어 몇몇 교수님조차 열심히 놀아두라고 말씀하시고, 하물며 어떤 선배는 예과 때 유급당하는 건 하려고 노력해도 쉽지 않다며 우리의 일탈(?)을 장려했다.
나 또한 5번의 수능을 치른 후 심신이 지친 상태였기에, 그들의 조언은 정말 달콤했다. 한번 놀기 시작하니 그 맛을 알게 되었고, 당하려고 노력해도 당하기 어려운 유급은 나와는 거리가 먼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렇게 몸서리칠 정도로 추웠던 2023년 겨울 어느 날, '그 어려운걸' 내가 해내고 만다.
처음엔 믿기지 않았다. 그저 아프고 막막했다. 사실 의대 유급이라는 것은 경험한 사람이 거의 없다 보니 직접적으로 조언을 구하거나 위로해줄 사람조차 없었다. 또 남들 앞에서 아프다고 말을 꺼내는 것조차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모든 고통은 다 아픈 법이지만 아무도 공감해줄 수 없는 고통이 이렇게나 아프다는 것을 그때야 알았다.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웠다. 5수 후 의과대학 입학은 성공이요, 드라마였지만 유급은 그저 명백한 실패였다. 물론 내겐 군대라는 선택지도 있긴 했었다.
그리고 복학해서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학교를 다닐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키지 않았다. 그렇게 되면 그저 겁나서 도망가는 것 같다는 생각을 뇌리에 지울 수 없었다. 그래서 그냥, 다시 학교에 다니기로 했다. 후배들과 함께.
의과대학생이 유급을 당하면 그동안 쌓아왔던 2가지를 잃는다. 바로 자기 자신이 자부심을 느꼈던 것(공부)과 자신의 인간관계이다수많은 유급생이 으레 그렇듯, 이들 또한 의과대학에 입학했을 정도로 본래 우수한 학생들이다. 의과대학에 들어오기 전에는 공부를 잘한다고, 성실하다고, 우수한 성적으로 타인의 인정을 한 몸에 받던 학생들이었다.
또, 의대생활 특성상 학교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고 모두가 같은 강의를 듣기에 하루 종일 붙어 지내던 동기들과의 유대감은 절대적이다. 그렇기에 본인이 자부심을 느끼고 잘한다고 생각했던 공부, 그리고 나를 지탱해주던 인간관계라는 두 축이 꺾이게 되면 우리는 흔히 자신을 잃어버리고 무너지고 만다.
유급을 맞게 되면 정말 오롯이, 나 홀로 서게 된다. 그러면 필연적으로 고민하게 된다. 나는 도대체 뭘까? 내게서 '의대생', '21학번' 같은 잡다한 명찰들을 다 떼어내고, '공부 잘하는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을 전부 빼버리면 과연 나에게는 무엇이 남지? 그리고 주위 사람들은 그 명찰들을 잃어버린 나를 이전처럼 좋아해 줄까?
아니 그런데 그들이 나를 좋아해 주는 게 정말 중요한가?
처음에는 낮아진 학번에서 내 가치를 입증하려고 부던히 애를 썼다. 내 이마에 붙은 '유급'이라는 주홍글씨가 너무나 선명해 보였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부끄럽지만, 그저 겁먹은 어린아이와도 같았다. 120명 앞에서 당당히 조장으로 나서 발표하려 하고, 어떻게든 성적을 잘 받아 만회하려 했다. 사람들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며 아등바등했다.
하지만 그 치열한 과정 속에서 문득 든 생각은, 결국 '남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보다 '내가 나를 어떻게 인식하느냐'가 중요하다는 사실이었다. 저 사람들이 날 좋아하지 않아도, 그들의 호감을 잃어도 나는 홀로 살 수 있지 않을까. 유급 당했을 때처럼 무언가를 또 잃어도, 나는 지금처럼 또 꿋꿋이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또 잃어도,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다다르니 신기하게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때부터 타인이 아닌 진정한 '나'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학교 자습실에서 누가 몇 시까지 공부하더라, 누가 어디까지 진도를 나갔더라, 하는 말들에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다. 또, 예전처럼 남들 앞에서 오래 공부하는 모습을 보이려 굳이 학교 자습실에서 공부하지 않았다. 그냥 집에서 혼자 공부했다. 나는 내가 세운 계획대로 가고 있고, 충분히 지키면서 가고 있으니까.
또 예전이라면 주위 열심히 공부하는 동기들을 보면서 불안에 떨며 공부만 했을텐데, 지금은 딱히 개의치 않는다. 책상 앞에만 앉아있기보다 몸을 움직이고 싶어 평일에 공부를 미리 끝내놓고 동네 형들과 풋살을 찼다.
월요일 시험이 없는 주간엔 교회 찬양팀에 참여해 토요일 연습을 도왔다. 글 쓰는 것을 좋아하던 예전의 나를 되찾아, 내 글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에 투비닥터 매거진과 메디컬타임즈 칼럼진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나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많아질수록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 커지고 나 자신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러고 나서 주위를 둘러보니 마냥 잃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방학에는 기존 21학번 동기들과 여행을 함께 가기도 하고, 경조사 때도 그들은 함께 와주었으며, 지금도 자취방 이웃으로 지내고 있다. 오히려 학교생활을 도와줄 든든한 선배가 120명이나 생긴 셈이었다. 잔뜩 긴장해서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제가 질문이 있는데요"라고 묻는 것에 비해, "야야, 너 이거 답 아냐?"라고 물어볼 수 있는 것은 엄청난 메리트였다.
그리고 복도에서 마주치는 21학번 친구들을 보면 "안녕하세요 선배님~" 하고 너스레를 떨며 웃으며 인사하고 그들은 웃으면서 받아준다. 물론 거저 얻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혼자 꿍해서 움츠러들어 있다면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 누구도 먼저 찾아와서 챙겨주지는 않으니까. 그래서 내가 먼저 털고 일어나기로 했다. 유급을 당했어도, '나'라는 사람은 여전히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스스로 믿기 때문이다.
그저 평범히 살아가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면 할 말은 없지만, 이는 과거의 나와 비교하면 정말 대단한 변화다. 지금은 유급을 맞기 전보다 훨씬 단단하고 성숙해졌다는 느낌을 스스로 받는다. 더 이상 내게 어떤 특장점들이 사라지게 되어도, 혼자 꿋꿋이 잘 살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믿음 말이다.
사실 이러한 생각들을 공개적인 지면에 실기엔 다소 조심스럽다. 나조차도 많은 고민을 하고 글을 몇 번이고 다듬었다.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고 철학이기 때문이다. 무조건 맞다고, 혹은 틀렸다고도 할 수 없는. 심지어 시간이 지나면서 나조차도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생각들. 어쩌면 1년 뒤에 내 글을 보고 부끄러워 이불을 뻥뻥 차고 있을 수도 있겠지.
다만 혹시나 뜻하지 않은 유급에 방황하고 있을 사람들을 위해서, 나는 지금 이렇게 생각하고 이렇게 버텨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나도 아팠고, 힘들었고, 그렇지만 지금은 괜찮다고 말이다.
여담이지만 요즘 넷플릭스 시리즈 '흑백요리사2'의 열풍이 뜨겁다. 그 중에서도 지금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를 몰고 있는 셰프는 '임성근 셰프'와 '최강록 셰프'일 것이다. 그들을 보면 공통점이 있다. 바로 눈치 보지 않고 자신만의 생각을 밀고 나간다는 점이다. 누가 뭐라 하든 그들은 개의치 않는다. 그저 자신이 맞다고 생각하는 것을 우직하게 밀고 나간다.
자기 자신만을 믿고 말이다. 수없이 많은 사람이 눈치를 보며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만, 눈치 보지 않고 자신의 소신을 지키며 홀로 설 수 있는 단단한 사람. 그렇기에 그 매력이 지금의 인기몰이를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아닐까. 그리고 그 이면에는 그들처럼 눈치 보지 않고 홀로 단단히 살아가고픈 사람들의 소망이 담겨있지는 않을까.
나도, 아니 우리도 이러한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을 위해서. 왜? 내 인생은 한 번뿐이니까. 비단 유급이 아닌 다른 그 어떠한 형태의 어려움이더라도, 그 어려움에 흔들리기엔 내 인생은 한 번뿐인 너무나 소중한 인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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