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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가 사소해지도록 도전하는 법

성균관의대 2학년 윤지호
발행날짜: 2026-02-19 05:00:00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예과 2학년 윤지호

2025년을 마무리하던 몇 주 전, 매년 습관처럼 해오던 연말정산 대신 조금 특별한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름하여 '실패 일기'.

벌써 1학년만 2년 차인 내가 휴학 후 정말 다양한 일들을 해봤는데, 도대체 몇 번이나 실패했는지 한 번쯤은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 때문이었다.

하나씩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2월쯤 제출했던 공모전 서류 탈락, 우주의학 대회 낙방, 밴드 공연에서의 코드 실수... 그런데 이상했다. 분명 이것보다 훨씬 많은 실패가 있었던 것 같은데, 막상 적어보려니 구체적인 장면들이 잘 떠오르지 않았다.

당시에는 세상이 무너질 듯 아쉬웠던 일들도 시간이 흐르니 점차 흐릿해진 것이었다. 결국 내게 더 선명한 인상으로 남은 것은 무엇을 실패했느냐가 아니라, 작년에 새롭게 시작한 일들과 그 과정에서 마주친 사람들이었다.

작은 실수 하나가 곧 큰 책임으로 이어지는 의대 사회에서 '틀림'은 늘 피하고 싶은 대상이었던 내가, 어떻게 1년 만에 실패의 목록조차 가물가물할 정도로 무뎌질 수 있었을까.

불안이 빚어낸 도전의 관성

사실 나는 실패에 꽤 예민한 아이였다. 초등학생 시절, "What page is it?"을 "Page what?"이라고 거꾸로 말했다가 들려오던 수군거림은 오랫동안 트라우마로 남았다. 처음 나간 MUN에서는 결의안을 쓸 때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오히려 남들에게 도움이 되겠다'는 무력감을 느꼈고, 중학교 학생회 면접에서는 서너 번을 연달아 떨어지기도 했다.

사람들은 10개가 넘는 동아리와 프로젝트를 병행하는 나를 보며 열정이 대단하다고 말하지만, 사실 그 시작은 어쩌면 불안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신입생으로 입학하자마자 의도치 않은 긴 멈춤을 겪으며 마음이 복잡했다.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성적이 좋으면 그해를 열심히 살았다고 인정받을 수 있는 명확한 기준이 있었는데, 이제는 내가 잘 살고 있는지 판단할 기준이 사라져 버린 기분이었다.

기저에 깔린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나는 매번 새로운 도전으로 답을 내려 했고, 고등학교 시절부터 습관이 된 '열심히 살기'라는 관성은 무엇이 정답인지 알 수 없는 휴학기 속에서 나를 버티게 해준 나만의 방식이 되었다.

실패의 모수를 늘리는 일

이 불안을 돌파하는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실패에 무뎌진 내 장점은 강철 같은 멘탈이 아니라, 단순히 실패의 모수를 늘린 데서 왔다. 여러 일을 동시에 벌이다 보면 필연적으로 내가 전혀 못 하는 분야와 마주하게 된다. 10번 도전해 1번 성공하는 사람과 100번 도전해 10번 성공하는 사람의 성공 확률은 10%로 같다. 하지만 후자는 90번의 실패를 겪으며 실패를 '일상적인 데이터'로 받아들이는 법을 배운다.

이제 나에게 실패는 당연한 것이 되었다. 100번 하다 보면 10번 정도는 안 될 수도 있고, 때로는 50번 넘게 안 될 수도 있다는 걸 안다. 어제 겪은 실패를 곱씹을 틈도 없이 오늘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다 보니, 개별 실패의 무게는 자연스레 가벼워졌다. 더 많이 실패할수록, 나는 오히려 실패로부터 자유로워진 것이다.

나의 자아를 여러 곳에 나누어 담는 이유

이런 다채로운 활동들은 일종의 '정신적 안전장치'이기도 했다. 의대생의 자아는 보통 '학업'이라는 단일 종목에 올인되어 있다. 그래서 시험을 망치면 인생 전체가 무너지는 기분을 느끼기 쉽다. 하지만 나는 내 자아를 우주의학, AI, 밴드, 공연 동아리, 인턴십 등 여러 바구니에 나누어 담았다.

우주의학 연구가 뜻대로 풀리지 않아도, 저녁에 있을 밴드 연습이나 학회 세미나가 나를 지탱해 주었다. 하나가 흔들려도 나를 지켜줄 또 다른 내가 있다는 믿음. 그것이 내가 번아웃에 빠지지 않고 계속 나아갈 수 있는 비결이었다. 성공하기 위해서라기보다, 어떤 상황에서도 나 자신을 계속 믿어주기 위해 나는 여러 개의 문을 동시에 두드렸다.

우리, 조금만 더 뻔뻔해지자

밥약에서 만난 후배들은 종종 묻는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싶은데 무엇부터 해야 할지, 실패하면 어떡할지 두렵다고. 그럴 때면 나는 완벽한 정답률보다 오답을 써내고도 다시 펜을 들 수 있는 '뻔뻔함'에 대해 이야기한다.

의료 현장에서의 실수는 치명적일 수 있기에 우리는 늘 완벽을 훈련받는다. 하지만 '의대생'이라는 타이틀을 잠시 내려놓은 '청년'으로서의 삶은 조금 더 헐거워도 괜찮지 않을까. 실패가 사소해질 만큼 더 많이 시도하고 기꺼이 무너져 본다면,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단단해질 수 있을 것이다. 2026년의 연말정산에서도 여전히 무엇을 실패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을 만큼, 즐거운 시도들이 가득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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