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기획=위기의 요양병원, 위협받는 노인 건강권]
7월 1일부터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시행되면서 요양병원계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요양병원이 급증하면서 과당경쟁이 빚어지고 있는데다 수가체계 개편에 이어 노인환자들이 요양시설로 옮겨갈 조짐까지 보이고 있지만 옥석이 가져지지 않으면서 공멸설까지 나온다. 요양병원의 운영실태와 문제점, 대안을 심층 취재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1편)요양원만도 못한 요양병원…노인만 피해
(2편)생존 경쟁 내몰린 요양시설과 요양병원
(3편)전봇대 없는 요양병원, 불구경하는 복지부
(4편)옥석 가리고, 전달체계 바로잡아야 윈-윈
"장기요양보험이 시행되면 노인환자들의 혼란이 불가피할 것이다"
1일 노인장기요양보험시대가 막을 열었지만 아직도 요양병원과 시설의 역할이 모호해 혼란이 예상된다.
특히 요양병원과 요양시설간 환자군이 겹치면서 환자 확보를 위한 출혈경쟁이 일고 있다는 지적이다.
요양시설로 발길 돌리는 노인들
노인병원협회 등 요양병원계에 따르면 장기요양보험 시행시 요양병원 입원환자의 15~20% 정도가 요양시설로 이탈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요양병원 증가추이(단위:개소)
하지만 제도가 본격화되면 그 수치는 훨씬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효자병원 한일우 원장은 "이미 5월 중순부터 하루 2~3명의 환자들이 병원을 나가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들 중 상당수는 요양시설로 옮겨가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보바스기념병원 손성곤 원장도 "환자들이 요양시설로 이탈해 나가면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요양병원으로서는 올해가 가장 힘든 해가 되지 않을까 싶다"고 하소연했다.
이처럼 노인환자들이 시설로 발걸음을 옮기는 것은 역시 경제적 이유가 가장 크다.
요양병원에 입원할 경우 간병비 전액을 본인이 부담해야 하지만 요양시설은 20%만 충당하면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전국 요양병원의 평균 본인부담금은 간병비 52만원을 포함, 98만원선에 달한다. 반면 요양시설로 전원하면 50만원 정도만 부담하면 된다.
특히 수도권 요양병원들은 본인부담금이 135만원에 이르고 있어 시설로 옮길 경우 비용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는 상황이다.
노인병원협회 박인수 회장은 "환자들이 시설로 전원하는 것은 결국 장기간에 걸친 진료비와 간병비에 대한 부담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가격차가 부르는 출혈경쟁 "공멸 자초할 뿐"
이렇듯 환자 이탈현상이 가시화되면서 요양병원계는 비상이 걸렸다. 현재 국내 의료환경에서는 비용을 줄이고자 병원을 떠나는 환자를 잡을 방법이 요원하기 때문이다.
선우덕 등 '고령화사회 노인보건의료체계 구축방안' 모식도 수정
그렇다면 무엇이 요양병원을 이렇게 낭떠러지로 밀어 넣고 있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각기 다른 기능과 역할을 수행해야 할 요양병원과 시설이 동일환 환자군을 놓고 경쟁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박인수 회장은 "자체 조사 결과 요양시설로 전원을 신청한 환자 중 그나마 신체를 움직일 수 있는 신체기능저하군은 3.2%에 불과한 실정"이라며 "나머지는 의료서비스가 필요하며, 집중적인 의료서비스가 필요한 환자만도 85%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결국 의료고도 이상의 환자를 놓고 병원과 시설이 무한경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을 위해 병원에 입원중인 환자에 대해서도 간병비를 지원해야 한다는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도봉구에 거주하는 강 모씨는 "노인장기요양보험이 시행된다고 해서 중풍과 치매를 앓고 있는 시어머니를 요양원으로 모셨다"며 "물론 비용은 다소 절감되기를 기대하고 있지만 불안한 것이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이어 그는 "노인환자들을 위한 보험이라면 1등급을 받은 환자들을 위해 요양병원에서도 간병비를 보조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며 "요양시설에만 간병비를 주는 이유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꼬집었다.
이러한 요구는 비단 강씨의 것만이 아니다. 공단 노인장기요양보험 홈페이지에도 요양병원에 간병비를 지원하라는 요구가 쏟아지고 있다.
요양병원과 요양시설만 경쟁이 붙은 것이 아니다.
몇년 사이 요양병원들이 급증하면서 병원간의 경쟁도 치열하다.
특히 최근에는 장기요양보험을 등에업은 요양시설이 경쟁자로 대두되면서 환자 유치를 위한 출혈경쟁이 시작되는 모습이다.
실례로 경북의 K요양병원은 한 달 본인부담금이 간병비를 포함해 50만원에 불과하다.
심지어 본인부담금을 한 푼도 받지 않는 요양병원까지 생겨나고 있다는 게 병원계의 전언이다.
의료기관이 간병비와 같은 비급여를 제외한 본인부담금을 받지 않는 것은 당연히 의료법 위반이다.
출혈경쟁이 또다른 출혈경쟁으로 이어지면서 불법까지 자행되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부산의 A요양병원도 최근 환자의 상태에 따라 본인부담금을 차등해 깎아주는 방침을 세웠다.
이 병원 관계자는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 시행으로 요양병원들도 점차적으로 입원비를 낮추고 있는 분위기”라며 "포괄수가제 등으로 경영이 어렵지만 공실로 놔두는 것 보다는 공단 부담금만이라도 받는 게 낫지 않겠냐"고 토로했다.
하지만 이러한 출혈경쟁은 결국 요양병원은 물론, 노인의료의 질적 하락을 초래할 뿐이라는 우려가 높다.
현재도 의사 혼자 진료와 당직을 도맡아 하는 등 비상식적으로 운영되는 병원이 많은데, 출혈경쟁까지 벌어진다면 제대로된 노인의료가 이뤄질 수 있겠냐는 것이다.
"결국 최대 피해자는 노인들"
이렇듯 비용이 요양병원과 요양시설을 선택하는 잣대로 작용하는 것에 대해 병원계는 크게 우려하고 있다.
앞서 박인수 회장이 언급했다시피 현재 요양시설로 전원하려는 환자의 대부분이 치료가 반드시 필요한 의료최고도 노인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 벌어진 것은 정부의 일관성 없는 정책 때문이기도 하다. 현재 요양시설에서 간병비를 보조받을 수 있는 노인들은 요양등급 1, 2 등급 노인들로 의료최고도 및 의료고도환자가 70%에 육박한다.
이에 따라 요양병원계는 이러한 환자들이 병원에서 시설로 옮겨가면 큰 문제를 가져올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한일우 원장은 "치료가 끝나고 요양이 필요한 환자들이 시설로 옮겨가는 것은 오히려 환영할만한 일"이라며 "하지만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이 재정적 이유로 시설에 가는 것은 분명 문제가 심각하다"고 못 박았다.
한강성심병원 윤종률(가정의학과) 교수는 "요양시설에 가야할 사람들이 병원에 남아있는 것도 큰 문제"라며 "이러한 환자들은 즉각 요양시설로 넘겨야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에게 전념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파이싸움은 그만···질 향상으로 신뢰 구축해야"
요양병원과 시설이 공존하지 못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불신이 팽배한 것이다.
손성곤 원장은 "요양시설은 응급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며 "응급환자가 시설에서 적정진료를 받지 못하면 어떻게 될런지는 뻔하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이 시행되면서 그나마 시설이 많이 늘었지만 안심하고 환자를 보낼 요양시설을 찾기 힘들다는 것이다.
하지만 의사 혼자서 진료와 당직, 조제까지 하는 요양병원이 태반이라는 점에서 적정진료가 의심되기는 요양병원도 마찬가지다.
최소한의 시설과 인력을 갖추지 못한 요양병원, 의료진이 상근하지 않는 요양시설의 한계가 상호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이런 상황에서 노인의료전달체계 정상화를 운운하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의견이 많다.
한일우 원장은 "문제는 병원에서 시설로 노인들을 보내면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 되더라도 다시 병원으로 보내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아마 대다수 시설들도 병원에 이러한 불신이 있지 않겠냐"고 밝혔다.
이에 따라 결국 상생을 위해서는 각자의 인프라를 한단계 업그레이드 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각자의 역할에 맡는 환경을 갖추고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박인수 회장은 "요양병원과 요양시설의 기능과 역할에 대한 정립이 시급하다"며 "의료욕구가 높은 환자들은 요양병원에서 집중적으로 관리하고 안정기에 들어서면 요양시설로 전원시키는 전달체계를 구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를 위해서는 요양병원은 물론, 요양시설에 대한 질 평가가 필수적인 부분"이라며 "이에 대한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윤종률 교수는 "시설에서 요양병원으로 환자를 보내주길 바란다면 우선 병원의 시설과 인력을 강화해야 한다"며 "제대로된 환경을 갖춰놓고 상생의 방안을 찾아가야 하는 것 아니겠냐"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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