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정부의 준비 안 된 의약분업 실시에 맞서 의료가 펼친 총파업을 주도하였다는 협의로 기소되었던 의사협회 및 의권쟁취투쟁위원회(이하 의쟁투라 표기) 관련인 9명이 29일 대법원에서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관한 법률과 의료법 위반 및 업무방해 혐의로 최종판결을 받았다. 유죄가 확정된 6명은 징역형이나 벌금형의 전과자가 되었고, 나머지는 파기환송으로 하급심인 지방법원에서 다시 재판을 받아야하니 결론적으로 기소된 의사협회 및 의쟁투 지도자 9명이 모두 유죄판결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와 같은 민주주의 국가는 법치주의(法治主義)에 의하여 관리되는 곳이니 법원은 사회정서나 이념 등을 평가하는 기관이 아니라, 법적 문제에 대해 최종 판결을 내리는 곳으로. 판사는 양심적인 법률해석으로 판결해야 한다. 그러나 나는 이번 판결 결과를 보면서 과연 공정한 판결이었는지 의심하고 있다.
2000년 의사파업 당시 의료계는 비상 응급 진료에 임하는 의사만 남겨두고 거의 대부분 파업에 동참하였고 또한 업무복귀명령에 응하지 않았었다. 이런 점에서 대부분의 의사들은 이번 사건에 기소된 9인과 혐의가 다르지 않았다. 대부분의 다른 의사들도 같은 혐의로 경찰소환 조사를 받았지만 9인 외에 다른 의사들은 기소조차 되지 않았는데 9인은 무거운 처벌을 확정 받거나 혹은 일부 유죄로 확정 받고 다시 재판을 받아야한다. 법에서 가장 중요한 형평성을 완전히 상실한 재판이었다. 기소내용도 단순하게 업무복귀명령 위반이라는 가벼운 사안이 아니라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및 업무방해 등의 죄목으로 억지에 가까운 죄목으로 기소하여 재판을 진행하였다.
법원이 외부의 압력에 의하지 않고 독립적이고 양심적인 법률 판단만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의사파업을 집단이기주의로 매도한 당시의 정부와 시민단체들의 주장을 재판에 그대로 수용한 감정적이고 정치적인 재판으로 보인다. 또한 차후에 다시 일어날지도 모를 의료대란을 우려하여 보다 무거운 벌을 내린다는 평가도 있어 만약 그런 추측이 사실이라면 양형(量刑)의 원칙도 저버린 것이다. 법치주의의 원칙이 정의, 공평, 인권, 평등을 정확하게 집행하는 것인데, 이번 판결은 향후 법치주의의 원칙을 무시한 나쁜 판례로 남을 가능성이 많은 것 같다.
사실 기소된 동료의사들이 받은 최종판결에서 형이 무겁다 아니다 라는 양형의 문제가 가장 중요한 문제는 아닐 것이다. 이번 대법원 최종판결에서 실질적인 문제는 양형의 과다나 형평성의 문제 이전에 2000년의 의사파업을 집단적인 범죄 행위로 낙인을 찍어버렸다는 것이 더 큰 본질적적인 문제이다. 국민 건강을 볼모로 집단이기주의 행동을 하였다는 당시 정부와 일부 시민단체의 주장을 법원은 재판이라는 형식을 통해 법률적으로 인정해버렸다는 것이 가장 커다란 오류라는 것이다.
의약분업을 시행하고 5년이 지난 지금 의약분업으로 인해 받는 국민들의 고통은 실로 막대하다. 우선 의약분업을 시행하는 목적이 국민들의 의료비 지출을 줄이고 의약품의 오남용을 막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다하던 당시 정부의 선전들은 새빨간 거짓말로 판명되고 말았다. 실질적인 의료보험료 부담은 의약분업 전보다 엄청나게 증가하였고 의료이용 시 환자 본인이 부담하는 본인부담금은 외래진료의 경우 거의 2배 가까이 올라서 국민들은 질병이 심해질 때까지 의료이용을 자제하는 한심한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반면에 의약품 오남용을 막을 수 있다하던 정부의 선전이 무색하게 항생제 소비는 전혀 줄지 않고 오히려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의약분업을 시작하려 할 때 의료계가 내놓은 우려들이 의약분업을 시행한 지 5년이 지난 지금 확연하게 사실로 드러나고 있고, 그로 인해 국민들은 경제적인 그리고 육체적인 고통을 엄청나게 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원은 구태의연하게 5년 전의 정서로 돌아가 의료계의 주장을 무조건 일축하던 어리석은 행동을 되풀이 하고 있다. 당시 정확하게 정부의 정책에 심각한 오류가 있다는 것을 지적하였던 의사지도자들을 처벌하는 모습을 보면 과연 법원에 사회정의를 실현하려는 의지가 있는지 의심이 든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 1969년 자민당이 제출한 “국민의료대책대강”을 시작으로 정치권이 의약분업 시행을 강행하려하자 일본의사회는 파업이라는 초강력 대응으로 저항하였다. 일본의사회의 반발은 상상보다 훨씬 강력하였고, 그 결과 무려 200명에 가까운 환자들이 치료를 받지 못해 생명을 잃는 참담한 상황이 벌어졌다. 그러나 이런 일본의사회의 파업 투쟁에 대해 당시 일본사회는 집단이기주의라느니 범죄행위라느니 하는 식으로 의사회를 매도하지는 않았다. 당시 의사 파업을 주도한 일본의사회 타께미 회장을 재판하여 징역형에 처하는 일은 물론 없었고 오히려 의사파업 이후에 의료정책 결정에 의사회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이번 사건 재판에 관여한 판사나 검사들은 아마 의약분업이나 의료정책에 대해서 아는 것이 거의 없을 것이다. 의료정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니 일반 사회범죄처럼 죄인으로 취급하고 죄목을 씌우며 판결하였을 것이다. 만약 200년 당시 정부가 의료 전문가인 의사들의 충고를 받아드려 정책을 수정 보완하였더라면 국민들에게 지워진 엄청난 부담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고 또한 의료이용이 불편하지도 않았을 것으로 5년이 지난 지금 밝혀지고 있는데 이렇게 개인적인 욕심이 아닌 정책의 올바른 시정을 요구한 의사들이 저지른 범죄행위가 과연 무엇이었을까? 재판에 관여한 검사나 판사 본인들과 그들의 사랑하는 가족들이 의료소비에서 받지 않아도 될 불편과 고통을 겪는다는 생각을 해보면, 그리고 이 땅의 모든 국민들이 그런 상황에 처해진다는데 이의 시정을 요구했던 의사들에게 처벌로 범죄자로 만든다면 어느 전문 집단인들 정부의 어리석은 정책을 나무라고 바로 잡으려 할 것인가?
한편 창립된 지 100년이 다 되어가는 의사집단이 정상적인 의견 표출이 가능했으면 왜 파업이라는 극한 수단을 사용하였을 것인가? 파업을 함으로 인해 비로소 의약분업에 대해 사회적인 관심이 생겼다는 현실을 생각할 때 의사들이 파업이라는 극한투쟁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행정제도나 사회적인 제도마련에도 문제가 많았다는 생각이다.
범죄행위로 사회질서를 위협하는 행동은 법적인 처벌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정부의 부당한 정책에 항의하여 올바른 정책을 펼치도록 주장하는 행동은 그 목적과 동기로 볼 때 범죄행위로 다루는 것은 백해무익하다. 의사파업의 경우 의사들이 올바른 정책제안을 함에 있어 사회적으로 의사들의 의견에 얼마나 귀를 기울였는지 판단해 봐야한다. 진정으로 훌륭한 법관이라면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져서 사회공익을 위해 긍정적인 방향으로 법을 집행하는 주도적인 모범을 보여야한다. 한 사람의 범죄자를 벌하는 것보다 국민들의 공익과 안전을 위해 정당한 요구들을 보호하는 판결을 내려야한다. 국민의 한사람으로 내가 법을 존중하고 법을 잘 지키려 노력하는 것 만큼 법도 국민들의 안녕을 위해 노력을 해야 한다.
이 사회의 그늘진 곳을 밝히기 위해 평생을 바쳐온 의사가 정부의 잘못된 정책 추진에 대해 앞장서서 반대하였다고 전과자로 만들고 의사면허를 박탈하고 하는 결정을 쉽게 내려버리는 법은 한마디로 악법이다. 수많은 식자들이 악법으로 희생되어 대량의 전과자로 매도되어 갈 때 마다 우리사회는 영원히 뒷걸음 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행정부나 사법부는 지난 2000년 의사파업에 대해 내용은 보지 않고 공권력에 도전이라는 외형만 보고 의사들을 매도하고 있다. 의사파업 사건의 핵심은 공권력에 대한 도전이 아니라 바로 엄청나게 잘못된 의료정책이 핵심이었다.
의사파업에 대해 의사단체 지도부를 처벌하기 이전에 준비 안 된 의약분업 추진으로 국민들에게 심대한 피해를 입힌 정부가 먼저 심판을 받아야한다, 정부는 의료대란에 이르기까지 과연 의약분업을 얼마나 제대로 준비하여 시행하려 하였는지 반성하여야 한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코리어 리서치센터가 서울 등 5대도시에 거주하는 시민들을 상대로 한 전화조사결과 국민의 74%가 의료대란의 가장 큰 원인이 정부의 준비부족 및 정책혼선 때문이라고 하였고, 의사들의 권리주장 때문이라고 응답한 것은 25% 에 불과했다. 여론은 의료대란이 주로 정부의 책임이라고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줄곧 의료대란의 주범이 자신임을 모르고 의료계에만 그 책임을 뒤집어 씌어 집단이기주의로 매도하였다.
의료정책 결정에서부터 건강보험재정, 의료수가결정, 의료심사평가 및 심사삭감, 행정규제, 약사들의 불법조제, 불법의료행위 기승 등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법치주의를 외면하는 정부가 의사파업에서 만큼은 철저하게 법치주의를 대입하는 모습을 보면 정부야 말로 독점적인 우월권을 악용하여 의료계를 상대로 끊임없이 범죄행위를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판결의 의미도 행정부로부터 독립하지 못한 사법부의 비정상적인 행보가 내포되어있다는 의구심이다.
보건복지부는 의약분업 추진으로부터 지금까지 의‧정 간의 합리적으로 해결을 시도하기 보다는 일방적으로 의사들을 압박하여 감정적 해법으로 일관하여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고 말았다. 의사파업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아직 의료분업은 준비가 안 된 상태이고 의료수가도 원가에 미치지 못한다고 시인하였다. 그러면서도 의약분업은 반드시 시행해야 하는 개혁정책이므로 선 시행 후 보완으로 우선 강행해야 한다고 하였다. 정부를 대표하는 장관의 이 한마디 결정으로 인해 이 땅의 국민들은 엄청난 돈과 불편을 감수해야만 하였다.
정부가 의료계에 행한 지도부 구속, 표적세무사찰, 무더기 행정처분 및 사법처리 등은 거의 범죄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범사회적인 매도에 대해 의료계 는 강하게 단결하였다. 의사들은 총파업을 하면서도 응급실과 중환자실은 그대로 진료하였으며 파업 사흘째 되는 날부터는 응급진료단을 운영하며 환자들의 생명을 지켜나갔다. 암, 당뇨 등 시급히 약이 필요한 환자들에게 처방전을 발급하여 생명을 위협받는 환자들의 불편을 최소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정부는 대통령으로부터 복지부 말단 공무원까지 숱하게 의료계와의 약속을 저버리고 의사들을 탄압하였고, 사회적으로는 집단적으로 따돌림을 당했지만 그래도 환자를 외면하지는 않았었다.
이런 과정을 지켜보며 누가 사회정의를 위해 노력하였고 누가 범죄 행위에 가까운 압력을 행사하였는지 확연히 알 수 있는 이번 사건에서 법원은 무조건 정부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 순간 사회정의는 후퇴하고 말았다. 앞으로 정부가 아무리 한심한 정책을 펼쳐 나간다 해도 관련 전문가들은 아무도 정부에 개선을 요구할 수 없게 만드는 선례를 남겼다. 이번 사건은 의료전문가들의 입을 철저히 막아 놓고 의료정책을 처음부터 잘못된 판단으로 추진하였던 결과이고, 의사들의 요구를 무시한 결과 국민들이 엄청난 고통을 지금도 받고 있는데도 정부와 법원은 정책 실패에 대한 화풀이를 의사에게 해버린 주객전도(主客顚倒)된 사건이었다. 오랜 시간 뒤에 언젠가는 정의를 배척하고 잘못을 보호한 척정위사(斥正衛邪)한 판결에 대한 잘못을 평가 받을 날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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