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을 통해 심심찮게 보도되는 의료현장에서의 폭력 사건은 그리 관심을 끌만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곳에서 생명을 해치는 폭력이 난무하다는 것은 지극히 비정상적이다. 게다가 일부 환자나 외부인에 의한 폭력만이 아닌 의료인간의 폭력도 빈번하다는 고백은 더욱 충격적이다. 의료계를 관통하는 폭력이 가지는 함의와 대안을 2회로 나눠 짚어본다.
-------------<<글싣는 순서>>-----------
|제1부|매 맞는 의사, 병원은 '폭력과의 전쟁중'
|제2부|의료계 내부폭력, 이제는 '정면돌파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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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한나라당 모 국회의원이 서울대병원 전공의를 폭행해 의료계의 공분을 일으킨 사건이 일어났다. 전공의협의회를 비롯한 여러 단체들은 격렬한 성토를 쏟아냈고 결국 실명까지 공개하는 데 이를만큼 의료계의 반응은 뜨거웠다.
하지만 폭행 당사자측은 ‘사실무근이다’며 초지일관 부인했고 의료계의 대응과는 무관한 이유로 총선에 불출마함으로써 이 사건은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이 사건이 사회 이슈화된 것은 국회의원이라는 독특한 신분이 가해자라는 점에서이다. 반명 의료계의 분노를 끌어낸 것은 의사 사회의 독특한 전공의 제도의 모순, 그동안 의사라면 환자 또는 보호자에게 욕설과 폭언 심지어 물리적 폭력까지도 그냥 묻어둬야 했던 과거의 경험 탓일 것이다.
응급실은 폭력의 종합전시장
그만큼 의료현장에서의 폭력은 일상화·만성화되어 있다. 대한전공의협의회가 지난해 조사한 자료에서는 전공의의 74.5%가 진료에 관련해 환자나 보호자에게 폭언, 폭행, 소송의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 같은 의료현장에서의 폭력을 축약해 보여주는 곳이 응급실이다.
최근 경기도 여주군의 모병원 응급실에서는 환자 보호자가 의료인을 폭행한 사건이 발생했다. 박 모씨(32)는 탈장증세로 실려온 자신의 3살바기 아들을 빨리 치료해 주지 않는다며 병원장 42살 김 모씨 등 2명을 주먹으로 때리는 등 난동을 부렸다.
또 지난해에는 응급실 의사를 협박하거나 폭행해 향정신성의약품을 주기적으로 투약한 전 권투 챔피언이 구속된 사건도 있었다. 경찰은 2001년, 빈번한 응급실 폭력을 예방하기 위해 일제단속에 들어가기도 했다.
이같은 응급실의 폭력은 단순히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경향성까지 띄고 있다. 특히 술자리로 붐비는 연말에는 음주로 난동을 부리는 환자들로 인해 응급실은 몸살을 겪는다.
인천의 한 병원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K씨는 “응급실에서의 폭력사건은 빈번한 일”이라며 “가끔은 기물을 파손하는 등 위험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대전지역 한 병원 관계자는 “심근경색이 있는 응급환자가 실려오면 안정이 중요한 부분인데 일부환자들이 소리 지르고 난동부리며 심지어는 의료진과 물리적으로 충돌하는 경우도 있어 환자들에게도 위험요소가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같이 응급실은 난동, 기물파손, 음주 등 갖가지 폭력의 총집합소로 변질 된지 오래이다.
처벌은 있고, 예방은 없다?
이처럼 빈번하게 폭력이 만연하는 것은 예방책이 마땅치 않다는 것도 하나의 요인이다.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에는 응급의료를 방해하거나 의료용 시설 등을 파괴·손상 또는 점거한 자에 한해서 5년 이하의 징역이나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규정이 있다.
하지만 예방조치는 미흡해서 권역·전문 응급의료센터는 청원경찰을 배치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그마저도 병원실정에 맞게 조정할 수 있도록 단서조항을 두고 있다.
더욱이 다수를 차지하는 지역응급의료센터나 응급의료기관의 경우에는 그러한 규정마저 없어 자체적으로 청원경찰을 배치한 병원도 있지만 CCTV에만 의존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의료진들은 의술뿐 아니라 폭력의 중재자 역할까지 떠맡는 고충을 안고 있었다.
서울의 한 종합병원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의사 C씨는 “응급실에서는 괜히 와서 행패부리고, 말도 안 되는 요구나 폭력을 가하는 사람이 있다”며 “경찰이 출동해도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고 방관하는 경향이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이어 "경찰에 신고하는 것은 공격 대상이 될 수 있어 위험하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에 대해 복지부 관계자는 “법 조항이 병원 내 폭력을 예방하는 데 미흡한 측면이 있다”며 ”응급실 폭력으로 인해 민원이 자주 제기되고 있어 내부에서 논의한 바도 있다“고 밝혔다.
대한응급의학회 양혁준 간사는 “응급실에서 근무하다 보면 섬뜩할만한 위험스런 상황을 겪을 때가 있다”며 “이 때문에 응급실 근무를 꺼리는 의료진도 있는 걸로 안다”고 말했다.
양 간사는 이어 “외국의 경우 응급실 출입이 철저히 통제되는 반면 우리는 전혀 제한이 없기에 위험하다”며 “정부에 안전요원 배치를 의무화하는 요구를 꾸준히 해왔고 학회 자체적으로도 위험상황의 대처방안을 교육하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기관은 경찰과 ‘핫라인’이 개설돼 있지만 병원 응급실에는 없다. ‘돈’의 안전이 ‘생명’의 안전보다는 앞서는 아이러니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의료체계의 정비와 예방조치 병행돼야”
이유 없는 엽기적인 사건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의료현장의 폭력에 대해 가중처벌과 예방조치만으로 이야기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 ‘이유 없는 폭력은 없다’는 대전제가 빠져있기 때문이다.
의료인력의 부족으로 인한 진료 지연에 따른 항의와 갈등, 의료사고의 명확한 시스템 미정비로 인한 양측의 다툼 등 상당부분의 갈등요소는 현 의료체계의 문제로 연관되는 측면을 무시할 수 없다.
프랑스에서는 한 알콜 중독자가 허리에 폭탄을 매단채로 자살을 기도하다 응급실에 실려온 사건이 있었다. 그가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 여전히 폭탄은 허리에 매여 있었고 응급실은 사람으로 가득한 위험천만한 상황이었다.
이같은 일을 겪은 프랑스 보건부는 2001년 응급실에서 일어나는 범죄를 방치할 수 없다며 1억 프랑을 재정 지원해 응급실 범죄 대처 방안 공모에 들어가는 등 적극적인 대책 세우기에 나섰다.
응급의학회 양혁준 간사는 “안전요원을 배치하기 어려운 것도 수익성의 부문과 연계될 수밖에 없다”며 “수가를 비롯한 의료체계를 다듬는 것이 폭력을 예방하는 것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경상대학교의과대학 오지원 교수는 “병원에서의 폭력은 시스템의 문제와 관련이 있다”며 “병원 시스템이 운영되는 방식에 따라 폭력사건의 빈도가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오 교수는 또 “의료사고나 진료지연 등 폭력의 원인을 예방하기위한 의료체계의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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