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격진료 허용을 두고 의료계에서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다. 하지만 아직은 원격진료가 의료시스템에 끼치는 영향의 본질을 꿰뚫고 있지는 못하는 것 같다. 원격진료를 파헤치면 의료민영화의 본질이 드러나게 된다. 그것은 의료계에 재앙이나 다름없다.
이번 의료법 개정은 MB 정부들어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의료민영화 정책의 일부를 법제화하기 위한 것이다. 의료법인의 대형화와 체인화를 유도하는 인수합병을 허용하고 네트워크병의원과 의료법인이 MSO(병원경영지원회사)라는 지주회사를 통해 주식회사 병원이 될 수 있는 법적 토대를 마련해주기 위함이다. 또한 의료서비스 산업화의 한 축인 유헬스의 법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바로 원격진료를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마치 원격진료가 의료취약 지역 국민의 의료 접근성을 향상시키는 방안인양 선전한다. 그래서 의료민영화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한 의도를 숨기고 의료법 개정의 목적이 의료서비스 향상이듯이 원격진료 허용을 전면에 내세웠다. 그런데 의사들은 원격진료에 의심스런 눈총을 가지고 있다.
원격진료란 단지 대면진료에 더해 화상진료도 허용해주려는, 의사에게 좋은 법안이 아니다. 병원에 가기 어려운 의료취약 주민들을 위해 추진하려는, 국민을 위한 것도 아니다. 원격진료의 허용은 유헬스의 의료법 상륙작전에 불과하다. 유헬스에 대해서는 그동안 여러 정책보고서들이 발간되었다. 심층깊게 이해하고자 한다면 삼성경제연구소에서 발간한 [유헬스 시대의 도래]라는 20여 쪽의 보고서를 살펴보면 된다. 유헬스는 IT기술을 이용하면 “언제, 어디서나” 건강관리를 받을 수 있고 의료서비스도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을 내세운다. 또 유헬스를 도입하게 되면 만성병 환자의 의료비를 27%(약 1.5조원)를 절감할 수 있다는 점, 국내 유헬스시장규모도 2012년경엔 1조원을 상회할 것이라는 점을 주장한다.
병원에 가지 않고 언제 어디서든지 의료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고 건강관리를 받을 수 있다는 유헬스의 매력은 사실 굉장하다. 정보통신이라는 놀라운 과학기술의 발달은 우리의 삶에 지대한 변화를 가져왔다. 휴대폰으로 언제 어디서든지 즉시 연락을 취할 수 있고 컴퓨터 앞에만 앉아있으면 원하는 정보는 거의 모두 취할 수 있는 세상을 연 것이다. 이제는 병원에 가지 않아도 의사가 왕진을 오지 않아도 집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다는 상상이 현실화될 지도 모른다. 이런 과학기술의 발달은 인류의 삶의 풍요롭게 하고 편리를 가져다 줄 것이라 흔히 여겨진다. 그러나, 과학기술의 발달에 우리는 항상 낙관적이어야만 할까.
원격진료에 대한 의구심의 표출에 정부가 보인 태도는 별로 진실되지 못하다. 470만명의 의료취약지에서만 한정할 것이라거나, 보험재정절감의 효과는 고려하지 않다는 것이 그렇다. 애초 유헬스의 도입은 의료비 급증의 원인인 만성질환 관리에 단기 목표를 설정하고 있고, 장기적으로 모든 국민의 의료서비스 전단계인 예방서비스 혹은 건강관리서비스로까지 확대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의료서비스의 산업화를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는 정부로서는 유헬스란 정책적 지향과 딱 맞아 떨어진다. 거기에다가 만성질환자의 의료비도 절감할 수 있다니 호재인 셈이다. 사실 관련 인프라가 아직 미숙한 상황에서 유헬스를 전면 도입하기 어려운 여건에서 일단 명분이 좋은 취약계층부터 시작해 점차 확대해 갈 것이라는 속내를 숨기기는 쉽지 않다.
자, 다시 정부가 절감할 수 있다는 1.5조원은 어디로 흘러 갈까? 사실 1.5조원이라는 돈은 국민 의료비가 아니라 보험재정 절감분에 불과하다. 1.5조원의 보험재정을 절감하기 위해 우리 만성질환자들은 모두 수백만원에 해당하는 원격진료장비를 갖추어야 한다. 일년에 평균 20여회 방문하는 진찰료를 절약하기 위해 수백만원짜리 장비를 구입해야 하는 것이 과연 얼마나 효율적일까? 설령 장비를 임대한다손 치더라도 만성질환자의 입장에서 그리 편익이 크지는 않아 보인다. 만일 장비에 대해 보험재정이 지원하지 않는다면 1.5조원은 고스란이 절약한 셈이다. 결과적으로 누가 이득을 보았는가. 보험재정은 절약했다고 치자(그 절약분은 고스란히 국민에게 전가되었다). 국민들은 새롭게 장비 구매에 추가 지출을 하였으니, 편익이 적다. 오히려 의료비 상승만을 가져올 공산이 크다. 대신에 장비업자들은 대박을 터트렸다. 2012년에 시장규모가 1조원을 넘을 거라고 하니 이처럼 빨리 성장하는 산업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우리 의사들은? 무슨 이득을 챙길 수 있을까.
사실, 정부의 말대로 원격진료로 인해 보험재정이 절감되기는 어렵다. 절감될 수 있다는 거야 관련산업을 촉진하기 위한 명분으로 연구자들이 흔히 써먹는 수법에 불과하다. 원격진료 비용을 전액 국민에게 전가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보험재정이야 국민에게 부담을 넘겨버린다면 얼마든지 절약할 수 있다. 본인부담금만 올려도 보험재정은 아낄 수 있다. 그러나, 전체 국민의료비 수준에서 보면 유헬스 산업은 의료비 급증을 초래한다. 보건의료 시장의 파이가 커지는 것이다. 문제는 그 확대된 파이를 누가 챙겨가는가이다. 의사들이? 아니다. 바로 통신업자나 장비업자들일 것이다. 이들이 의료서비스 영역에서 수익을 창출할 기회를 제공해주는 것이 바로 의료민영화요, 의료법 개정이다.
다른 한편, 유헬스 산업의 활성화는 의료공급체계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전망된다. 미시적으로 보면 원격진료를 통해서 의료기관이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수단은 못된다. 그러나, 원격진료는 몇몇 의료기관에게는 떠오르는 블루오션이다. 바로 대형병원과 영리추구 성향이 강한 병의원들이다. 이들에게 원격진료는 환자를 창출하는 수단이다. 그간 대형병원과 네트워크 병의원들은 암센터설립, 특수 전문센터 설립, 규모 확대 등을 통해 환자들을 대거 빨아들였다. 그 결과 동네의원과 중소병원의 경영란은 더욱 가중되었다. 원격진료는 대형병원들이 더욱 환자를 싹쓸이하는 수단으로 작용할 것이다. 원격진료로 대형병원들은 외래환자와 퇴원환자를 일차의료기관에 돌려보내지 않고 지속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이제 대형병원들과 몇몇 영리추구형 병의원들은 의료전달체계상의 일차, 이차, 삼차기능을 모두 수행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되고, 더 나아가 명품종합건강검진 환자의 사후 건강관리마저 가능케 하는 수단이 될 것이다. 이것이 대형 병원들이 유헬스산업이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 있는 이유이다.
이렇듯 유헬스는 결국 완전히 의료전달체계를 붕괴시키고, 동네의원과 중소병원을 고사시키는데 일조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확대된 파이는 의료공급자가 아닌 새롭게 의료시장에 참여하는 관련 기업들, 투자자들이 고스란히 챙겨가게 된다. 이것이 작은 의료민영화(원격진료)가 가져올 미래의 귀결이라 하면 과장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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