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가족부는 지난해 외과와 흉부외과를 살리기 위해 수가를 각각 30%, 100% 인상했다. 이에 따라 임상교수들과 전공의들은 전공의 기피 문제가 해소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으며, 어려움 속에서도 환자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희생을 감내하고 있다. 그러나 수가 인상으로 인해 서울 대형병원과 지방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될 것이란 우려도 증폭되고 있다. 악조건 속에서도 미래를 개척해 가는 의사들의 삶과 수가 인상 보완책을 진단한다.[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상) 흉부외과 임상교수의 24시와 꿈
(중) 나홀로 전공의…그러나 미래는 밝다
(하) 더 큰 위기 내몰린 지방 대학병원들
희미하게 여명이 비춰오는 2009년 마지막 날 오전 6시가 조금 넘은 시각. 고대 구로병원 흉부외과 의국은 이미 불이 환하다.
최영호 과장을 필두로 강두영 교수, 최고 인턴, 전문간호사들까지 모두 모여 어제 밤 사이 환자들의 상태를 점검하는 중. 기자가 방문했는지도 모르게 정신없는 시간이 잠시 지난 후 7시가 되자 각자 자리에 앉기 시작한다.
환자 컨퍼런스가 시작되는 순간이다.
[오전 7:00] 인턴 최고 씨가 EMR을 통해 첫번째 환자의 차트를 올리며 환자 컨퍼런스가 시작된다.
어제 수술받은 환자에서부터 오늘 수술이 진행될 환자의 상태와 특이점을 속사포처럼 쏟아내자 강두영 교수와 최영호 과장도 쉴새없이 말이 바빠진다.
항생제를 더 투여할지 문제부터 특이한 체질은 없는지, 혹시 놓친 사항은 없는지 교차 확인을 하면서 14명의 환자의 차트를 모두 점검한 후에야 컨퍼런스가 끝이 난다.
[오전 8:00] 컨퍼런스가 끝나자 곧바로 모든 스텝들이 중환자실로 올라간다. 오전 회진이 시작된 것이다.
최영호 과장이 환자에게 여러가지 의증을 묻는 동안 강두영 교수는 드레싱을 진행한다. 소수 인원으로 빠르게 회진을 돌기 위해 몸에 밴 습관들이다.
그렇게 몇 명의 환자들을 살핀 후 곧바로 수술실로 내려간다. 오늘은 수술환자가 많아 서둘러야 한다.
[오전 8:30] 수술실에 들어가자 재빨리 옷을 갈아입는 강두영 교수. 이러다가는 말 한마디 못붙여 볼 것 같아 기자가 서둘러 질문을 해본다.
"아침부터 이렇게 빡빡하게 일정이 돌아가는데 힘들지 않나요" 그러자 오히려 반문이 돌아온다. "하루에 몇 개씩 기사 쓰시는 게 훨씬 힘들어 보이는데요?"
기자가 우물쭈물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망설이는 사이. 강 교수의 말이 이어진다.
"뭐든 일이 다 그렇잖아요. 처음이 힘들지 몸에 배이면 내 일이다 싶지 않나요?"
"이 일을 한지 20년이 다 되어 가니 이제는 알아서 몸이 움직여요. 힘들다는 생각이 들기 전에 말이죠. 후배 전공의들이 힘들어 하는 부분도 처음에 일을 적응하는 순간을 견디지 못해 그런 것 같아요. 그 순간만 버티면 아무 것도 아닌데 미리 겁을 먹어버리니 지원을 기피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 같아요"
[오전 09:00] 수술장에 들어가 함께 아침을 맞이한 여러 과의 스텝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환자의 상태를 점검한다.
곧바로 손을 씻으러 간 자리. 마침 몇 달만의 회식이 잡힌지라 최 과장과 강 교수의 얼굴이 밝다.
손을 씻는 내내 무얼 먹을까에 대한 논의로 웃음꽃이 핀다. 결론은 회가 좋겠다고 합의를 보고서는 수술복으로 갈아입기 시작한다.
헌데 이상하다. 강 교수와 최 과장의 수술복 색깔이 틀리다. "과장이라 다른 수술복을 입으시는 거예요?" 뜬금없는 질문을 해본다.
하지만 멋쩍은 듯 웃으며 최 과장이 대답한다. 알러지 때문이라고. 최 과장은 수술장갑에 알러지가 있단다. 해서 손을 보니 시뻘겋게 알러지가 나 있다.
"외과 의사 중에는 수술장갑 알러지가 있는 사람이 많아요. 하지만 어쩔 수 있나요. 하루 온 종일 평생 껴야 하는 장갑인데...어떻게든 버텨보는거죠"
[오전 10:30] 폐암환자 수술이 끝났다. 요즘에는 복강경 수술이 대세라 개흉수술보다는 수술시간이 짧다고 한다.
"하루에 수술을 몇건이나 하냐고 물어보니 적게는 3건에서 많게는 5건까지 진행한다고 한다.
확인해보니 구로병원 흉부외과의 한달 평균 수술건수는 60건이 조금 넘는 정도.
현재 흉부외과 스텝이 총 3명이니 사실상 교수 전원이 모든 수술에 참여한다고 봐야 한다. 전공의들이 지원을 기피하는 것이 이러한 로딩 때문이 아닐까 조심스레 물어본다.
"흉부외과는 특성상 환자를 주의깊게 즉, 오래 봐야 하는데 병원의 인적 구성이 이를 못받쳐 주는 것이 현실이긴 해요. 수가 자체가 비정상적인데다가 100% 가산도 결국 한시적인 상황이잖아요. 병원이 적자를 보면서 환자를 봐야 한다는 논리가 설득력이 있나요? 환자를 보는 만큼 충분한 보상이 이뤄지고 이를 통해 충분한 의사가 적정수 만큼 배치돼야 질 높은 의료가 가능해지겠죠"
[오후 1:40] 몇건의 수술이 더 끝났지만 환자는 많고 시간은 없다. 옆에서 기다리는 기자에게 미안했는지 아주 잠깐만 더 기다리라고 말한지 몇차례.
다음 수술 환자가 내려오는 시간동안 점심을 먹자며 구내식당으로 이끈다.
식사를 시작한지 4분여 만에 식판을 비웠다. "군대같지 않나요?" 우스개 소리를 던지더니 커피라도 한잔 사야 마음이 편하겠다며 테이크아웃 커피점으로 기자를 이끈다.
하지만 커피를 한모금 마시기도 전에 콜이 온다. 환자가 내려왔다고. 서둘러 이동을 하며 몇마디 더 물어본다. 인턴들이 왜 흉부외과를 기피하는 것 같냐고.
"후배들과 술자리를 하면서 얘기해보면 언론에서 말하는 것처럼 많은 돈은 아닌것 같습니다. 그저 안정된 생활을 원하는거죠"
그러더니 조심스레 말을 잇는다 "결국 월급을 올려주는 것만으로는 지원을 이끌어 내기 힘들 것 같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흉부외과를 오지 않는 이유를 물으면 이구동성으로 미래가 불안하다고 답하더라고요. 일자리 창출이 더 우선과제라고 봅니다"
[오후 4:30] 이제서야 모든 수술이 끝났다. 수술이 끝나고 밀린 병실 환자 일들을 처리하고 저녁회진을 시작한다. 이제 좀 친분이 붙어 이것저것 묻기 시작한다. 왜 흉부외과를 지원했냐고. 그러자 즉각적으로 답이 돌아온다.
"학생때부터 흉부외과를 가고 싶다고 생각했고 단 한번도 그 생각이 변한 적이 없어요. 그냥 막연히 좋았고, 지금도 좋아요. 사람을 좋아할때 '그 사람은 이런저런 부분이 좋아'라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저도 그냥 막연히 흉부외과가 좋아요"
슬쩍 곤란한 질문도 섞어 본다. "흉부외과 교수로서 힘든 부분은 없습니까?" 그러자 잠시 생각하더니 민감함 부분은 편집해 달라며 말을 꺼내놓는다.
"사실 일부 다른 과도 그렇겠지만 인력 문제가 가장 힘들죠. 연차가 올라가면서 맡은 일이 늘어가는데 이전에 해왔던 일도 계속해서 제가 맡고 있으니까요"
그러면서 슬쩍 뒤의 게시판을 가리킨다. 뭔가 싶어 봤더니 차트 정리율과 퇴원일지 정리율을 발표한 게시물이다.
30여개 과목 중 가장 밑에 흉부외과가 있다. 왜 그런지는 묻기 민망했다. 전공의가 없다는 사실도 알고, 더욱이 오늘 하루 이렇게 같이 지내며 일과를 살펴보고서 왜 차트정리를 하지 않았냐고 물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오후 8:00] 이제서야 약간의 개인시간이 남게 됐다. 물론 밀려있던 각종 업무를 처리하고 나니 10시가 훌쩍 넘어가긴 했지만 말이다.
다소 여유가 생긴 것 같아 수가인상에 대해 물어본다. 그랬더니 의전원에 대한 부분을 얘기하기 시작한다.
"사실 의전원은 흉부외과와 외과를 더욱 힘들게 한 것이 사실입니다. 우선 의전원에 입학한다고 하면 최소 8년을 공부하고 군대 갔다 오고 전공의 밟고 하면 10년에서 15년 이상이 걸리거든요. 거기다 억대가 넘어가는 학자금을 들여 30대 중반에 전문의를 땄는데 과연 흉부외과, 외과를 지원할 사람이 있을까요? 해결책이 어려운 문제입니다"
분위기가 어두워지는 것 같아 화제를 돌려봤다. 흉부외과 의사로서의 삶은 그에게 어떤 의미일까. 그는 흔쾌히 대답한다. "너무나 잘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폐기능이 너무 나빠 누워만 있어도 숨을 헐떨거리는 환자들을 보면 너무나 고통스러워 보입니다. 그러던 중 폐이식을 받고 편하게 숨을 쉬는 것을 보면 정말 뿌듯하죠. 정말 새로운 삶을 주었다는 느낌이랄까요. 그런 보람은 흉부외과 의사가 아니면 가질 수 없는 기쁨이죠"
[밤 11:00] 이미 밖은 어두워졌지만 강 교수가 퇴근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보기에도 복잡한 전문서적들만 뒤적이고 있을 뿐. 바로 on-call 당직의 위력이다.
흉부외과 전공의가 한명도 없다보니 사실상 교수들이 1년 내내 당직을 서야 하는 상황이다.
퇴근을 해도 응급실, 중환자실 환자들의 문제들을 인턴 선생으로부터 계속해서 보고받고 필요한 경우 병원으로 나와야 하니 병원에서 늦게 나가는 것이 속 편하단다.
"콜이 오면 최대 30분내 도착이 암묵적이죠. 이것도 군대 같지 않나요? 군대에서도 위수지역 이탈이라고 해서 외박나가면 몇 km내에 있어야 하잖아요. 하하하"
정말로 웃음이 나오는 걸까 혼란이 일기 시작했다. 거기다가 오늘은 연말연시 아니던가. 느닷없는 질문을 던져봤다. 정말로 흉부외과 교수로 지내는 것이 행복하냐고.
"사람의 행복이라는 것이 결국 상대적이잖아요. 후배들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같은 의대를 나왔는데 '저 친구는 편하게 돈을 많이 번다' 이런 생각이 들고 이런 말들이 전해지니 수급정책이 꼬이는 거겠죠."
"저는 마땅히 비교 대상이 없어서 그런지 지금 생활이 너무 행복해요. 제가 하고 싶은 일을 열심히 할 수 있고 그에 대한 보상으로 가족들이 잘 살고 있으니까요. 그러면 행복한 것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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