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평원 떠나 어디로 갔나…퇴직 임원 병원·제약사·로펌행
[메디칼타임즈=김민건 기자] 건강보험 진료비를 심사하고 의료기관과 의약품의 급여 적정성을 평가하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 이 기관의 고위직들은 퇴직 후 어디로 향했을까.최근 3년간 재취업한 전직 임원들의 행선지를 살펴보면 병원과 의료법인은 물론 제약사, 법무법인까지 등장한다. 심평원에서 수행했던 업무와 직간접적으로 맞닿아 있는 분야들이다.더불어민주당 허종식 의원(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이 심평원과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퇴직 임원 재취업 현황'에 따르면, 2024년부터 2026년 8월까지 재취업한 전직 임원은 의료기관과 의료법인, 제약사, 법무법인으로 향했다. 16일 더불어민주당 허종식 의원(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이 심평원과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퇴직 임원 재취업 현황'에 따르면, 2024년부터 2026년 8월까지 재취업한 전직 임원은 모두 5명이다.이들이 새로 자리를 잡은 곳은 경기 남양주 현대병원, 의료법인 건명의료재단, 수원윌스기념병원, 법무법인 화우, 제일약품이다. 의료기관 및 의료법인 3곳, 제약사와 법무법인이 각각 1곳이다.병원으로 돌아간 임원들...제약사 자문부터 법무법인 고문까지가장 최근 재취업 사례는 강중구 전 심평원장이다.강 전 원장은 2026년 4월 12일 퇴직한 뒤 85일 만인 7월 6일 경기 남양주 현대병원 임상진료 교수로 취업했다.허 의원실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현대병원은 2022년부터 2026년 8월까지 심평원에서 총 3336억8200만원의 진료비를 심사받았으며, 이 가운데 16억1900만원이 조정됐다.2021년부터 2025년까지 중환자실, 급성기뇌졸중, 항생제 처방률, 환자경험 등 각종 적정성 평가도 받았다.강 전 원장의 재취업은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의 '취업승인'을 거쳐 이뤄졌다. 업무 관련성이 없는 것으로 판단하는 '취업가능' 결정과 달리, 취업승인은 업무 관련성이 인정되더라도 법령상 특별한 사유에 따라 예외적으로 취업을 허용하는 절차다.심평원 퇴직 임원 5명의 재취업 행선지다른 퇴직 임원들의 행선지도 의료기관과 이어졌다.2023년 2월 퇴직한 개발상임이사 A씨는 2025년 4월 의료법인 건명의료재단 이사로 취업했다. 이 재단은 중앙제일병원을 운영하는 법인이다. A씨는 2026년 4월부터 같은 재단의 본부장도 겸하고 있다.A씨는 공직자윤리위원회로부터 '취업가능' 판정을 받았다. 허 의원실이 심평원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심평원이 2019~2023년 건명의료재단에 심사 결정한 진료비는 943억원이다.2020년 12월 퇴직한 상임이사 B씨는 2025년 1월 수원윌스기념병원 고문으로 자리를 옮겼다. 해당 병원 역시 B씨 퇴직 전 5년간인 2016~2020년 심평원에서 1013억원의 진료비를 심사받고 102억원을 조정받은 것으로 나타났다.눈여겨볼 부분은 퇴직 임원들의 재취업처가 의료기관에만 한정되지 않았다는 점이다.2016년 심평원을 퇴직한 상임이사 D씨는 2024년 6월 제일약품 자문으로 재취업했다.심평원은 의약품의 건강보험 급여 적정성을 평가하는 기관이다. 제약사 입장에서는 신약의 급여 등재와 약제의 보험 적용 기준 등이 사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만큼 심평원과 업무상 이해관계가 존재한다.다만 해당 퇴직 임원이 제일약품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자문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법률 분야로 이동한 사례도 있다.2021년 1월 퇴직한 상임이사 C씨는 2024년 12월 법무법인 화우 고문으로 취업했다. 다만 심평원은 허 의원실에 화우가 2021년 이후 심평원을 상대로 한 소송을 대리한 실적은 없다고 밝혔다.보건의료 정책·심사기관 출신자들의 재취업을 둘러싼 문제 제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22년 국정감사에서 국민의힘 강기윤 의원은 2019년부터 2022년 8월까지 보건복지부 퇴직자 재취업 현황에 포함된 24명 중 17명이 병원으로, 3명이 법무법인으로 이동했다고 공개했다. 당시에도 보건의료 정책을 담당했던 공직자들의 퇴직 후 업무 관련성과 영향력 행사 가능성이 쟁점으로 제기됐다.2025년 국정감사에서도 조국혁신당 김선민 의원이 복지부·식품의약품안전처·심평원·국민건강보험공단 등에서 대형 법무법인으로 이직한 인력 27명의 현황을 공개했다. 2020년부터 2025년 9월까지의 이직자 중 당시 재직 중인 인원을 집계한 것으로, 심평원 출신은 9명이었다. 법 위반은 없지만 업무 관련성과 이해충돌허 의원실이 밝힌 전직 임원 5명 모두 공직자윤리위원회 승인 또는 취업가능 판정을 받았거나 관련 신고 절차를 마쳤다. 현재까지 확인된 재취업 절차상 법 위반 사항은 없다다만 재취업 시점에 따라 취업심사 절차가 달랐다는 점은 살펴볼 대목이다.현행 공직자윤리법은 취업심사 대상자가 퇴직한 뒤 3년 동안 업무 관련성이 있는 취업심사 대상기관에 취업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제한한다. 업무 관련성이 없다는 확인을 받거나 예외적으로 취업승인을 받으면 가능하다.반면 퇴직 후 3년이 지나면 해당 취업제한 규정에 따른 사전 심사 대상에서 벗어난다. 이번에 제일약품과 법무법인 화우, 수원윌스기념병원으로 이동한 전직 상임이사 3명도 이러한 이유로 사전 취업심사 없이 신고 절차를 거쳤다.물론 3년이 지났다고 모든 이해충돌 방지 의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재직 중 직접 처리한 특정 업무의 취급 제한 등은 별도로 적용된다.심평원은 의료기관 진료비 심사와 적정성 평가뿐 아니라 의약품과 치료재료의 급여 적정성을 평가하는 기관이다. 그만큼 의료기관과 제약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허종식 의원은 "의사 출신 원장이 진료 현장으로 돌아가는 것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진료비 심사를 총괄하던 기관의 수장이 퇴직 석 달도 안 돼 매년 수억 원씩 진료비를 조정받던 병원으로 가는 것을 국민이 어떻게 받아들이겠느냐"고 밝혔다.이어 심평원 퇴직 임원의 취업 제한 기준을 더욱 엄격하게 정립하고,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취업승인 사유 공개와 퇴직 후 업무취급 제한 준수 여부에 대한 점검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