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들이 노동력 착취 받는다고 하는데 전임의는 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죠. 병원에서 최고의 '봉'이 전임의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서울 모 대학병원 외과 전임의 A씨의 말이다.
그는 지난 2009년 교수의 꿈을 안고 전임의에 지원했다. 의사 국가시험 성적도 인턴, 전공의 수련 평가도 나쁘지 않아 기대감이 컸다.
하지만 전임의 4년차에 접어든 지금 그는 자신의 선택을 되돌아보고 있다. 열악한 처우와 불투명한 미래로 인해 그를 거의 매일 잠을 설치고 있다.
열악한 처우, 불확실한 미래 "돌아올 수 없는 강 건넜다"
A전임의는 8일 "4년차에 접어들면서 과연 내가 전임의를 선택한 것이 옳았는지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면서 "무엇을 위해 3년을 참았는지 되돌아 보게 된다"고 털어놨다.
전임의들은 교수직을 바라보며 열악한 처우를 견디고 있었다[사진=하얀거탑 중 한장면]
그렇다면 무엇이 A씨를 이렇게 고통스럽게 하는 것일까.
그는 우선 처우 문제를 꼽았다. 전공의보다 못한 대우를 받고 있는 것이 상대적인 상실감을 가져온다는 설명이다.
A씨는 "마흔이 가까운 전문의가 한달에 집에 가져가는 돈이 월 300만원이 안된다면 믿겠느냐"면서 "이제는 아내와 자식들 보기가 민망하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어 "일부 병원을 보니 전공의 연봉도 5천만원이 넘더라"며 "전문의를 따고서 전공의보다 연봉이 적으니 상실감이 없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그렇다고 복리후생이 좋은 것도 아니다. 휴가는 물론 월차를 사용하는 것도 눈치가 보인다.
전임의 2년차 B씨는 "병원에 들어온 뒤 여름휴가 3일 갔던 것이 전부"라며 "휴가는 커녕 오후 10시 전에 퇴근만 해도 소원이 없겠다"고 전했다.
최근 실시된 응당법(응급실 전문의 당직 의무화)도 전임의들에게 큰 부담이다.
B씨는 "가뜩이나 당직이 많았는데 이제는 365일 붙박이로 이름이 붙어있다"면서 "마치 총알받이로 전쟁터에 나가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가장 큰 고통은 이러한 처우 문제가 아니다. 목표가 흔들린다는 게 그들을 힘들게 만들고 있다.
교수 채용이 보장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불안감과 부담감이 커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A씨는 "아무리 육제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들어도 무엇인가 보장된다면 견딜 수 있다"면서 "전공의 때야 전문의 따면 해방이라는 생각으로 버텼는데 지금은 내가 무얼 하고 있는 것인지 자꾸 돌아보게 된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어 "마흔이 다 된 나이인데다 이미 4년이나 병원에 있었으니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넌 셈"이라며 "돌아갈 길이 막혔으니 앞으로 갈 수 밖에 없지만 석사가 계약직을 하고 있냐는 비아냥을 들을 때는 죽고싶은 심정"이라고 전했다.
"전임의가 수련제도 기형 유발…트랙 마련 시급"
이로 인해 이들은 전임의 제도를 바로잡지 않고서는 올바른 수련제도, 나아가 의학교육제도를 만들 수 없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전임의가 레지던트 일을 도맡아 하고, 레지던트는 인턴 일을 하게 되는 이러한 구조의 시발점인 전임의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B씨는 "따지고 보면 전임의 제도가 파행적으로 흘러가면서 수련제도 전체가 뒤틀리고 있는 것"이라며 "전임의 제도를 바로잡지 않고서는 수련제도 개선은 헛손질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전임의 제도의 도입 취지에 맞게 정예 인원을 선발해 전문의에 걸맞는 근로환경을 제공하고 체계화된 수련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의 전임의는 교수의 책임과 전공의의 의무를 지닌 값싼 노동자일 뿐"이라며 "그러니 이들이 교수가 되면 다시 전임의를 쥐어짜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전임의 정원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선발시험을 강화해 정예 인력을 채용하도록 하는 제도적 테두리가 필요하다"면서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내는 전문의 인력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국가적으로도 이익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수련 전문가들도 같은 의견을 내고 있다. 수련을 개원 트랙과 교수 트랙, 연구 트랙 등으로 나눠 최적화된 프로그램을 제공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대한의학회 김성훈 부회장은 "현재 우리나라는 의사 인력 대다수가 전문의를 따고 또 그 대다수가 전임의를 밟는 소모적인 수련제도가 운영되고 있다"면서 "1차 진료를 세부 전문의, 의학 박사가 맡을 필요는 없다"고 환기 시켰다.
그는 이어 "개원을 원하는 사람과 교수를 하고 싶은 의사의 수련과정은 분명 달라야 한다"며 "의학회도 이같은 문제를 지속적으로 고민하며 수련제도 개선을 논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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