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조용하던 때도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고요가 오히려 태풍을 예고하는 듯 불안하다. 원격의료 시범사업을 앞둔 현재 의료계 분위기가 꼭 그렇다.
최근 복지부가 9월 원격의료 시범사업 강행을 누차 공표했음에도 불구하고 의료계의 대응은 생각찮게 '심심'하다.
비상대책위원회는 투쟁 로드맵 도출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주문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기존에 나왔던 선언들의 중탕 수준에 불과했다.
의협 집행부도 별다른 액션이 없다. 지난 3월 의사-환자간 원격의료 허용이 의료계를 파국으로 몰고 갈 수 있다며 집단 휴진을 결의하던 당시의 모습과는 너무도 다르다.
조용한 분위기에 회원들조차 '원격의료' 이슈가 이미 끝난 것 아니냐는 반응이 많다. 시범사업 대응에 대한 설문 투표를 진행한 것에도 무관심하거나 아예 내용을 몰라 참여하지 않는 회원들도 부지기수였다.
상황이 이렇자 일각에서는 집행부나 비대위나 책임질 일에 선뜻 나서길 꺼려한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정부 주도의 시범사업을 강행이 기정사실화 된 이상 이를 막을 수 있는 카드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의사들이 참여하지 않는 시범사업의 경우에는 해당 시범사업을 진행하는 보건소에 항의방문하거나 복지부 항의방문 정도의 액션 밖에는 기대할 게 없다.
시군구의사회 별로 인원을 할당해 해당 지역 국회의원을 방문, 설득 작업을 벌인다는 것조차 그럴싸한 대책으로 들리진 않는다.
정부 주도의 시범사업이 진행되면 결국 정부 입맛에 맞는 결과물이 도출될 게 뻔하다.
이런 상황이 될 줄 정녕 몰랐던 걸까. 이렇게 될 바에야 차라리 집행부가 의료계 주도의 시범사업을 하자고 할 때 비대위가 무조건적인 반대만을 외칠 것이 아니었다.
집행부 역시 의사들이 참여하는 시범사업을 실시해 의료계가 검증하는 결과물을 내놓자고 강력하게 주장하지 못했다. 시범사업에 동조했다는 비난과 역풍이 부담됐기 때문이다.
결국 서로 책임질 일에는 눈치를 보며 미루는 사이 벼랑 끝까지 밀려왔다.
"투쟁 실패시 모든 책임을 지고 전원 사퇴하겠다"와 같은 책임지는 모습은 아직도 나오지 않고 있다.
투쟁과 협상의 전권이 있다는 비대위도, 원격의료 시범사업은 처음부터 재논의할 것을 공약으로 내걸었던 추무진 회장도 너무 조용하다.
태풍이 몰려오고 있는 듯한 불길한 느낌이 기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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