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4년 전인 2011년, 대구 J외과의원 A원장은 자동차 보험회사의 황당한 삭감 때문에 2년간 법정 다툼을 벌여야만 했다.
보험사가 "다친 후 15일 안에 환자에게 신경차단술을 하면 부당한 시술에 해당한다"며 치료비 지급을 거부한 것이다. 자동차 보험회사는 자체적으로 만든 심사 기준을 적용했다.
A원장은 교통사고 환자에 대한 신경차단술의 의학적 근거를 모아 '나 홀로 소송'을 진행했고 2013년 11월 승소 판결을 이끌어 냈다.
그사이 자동차보험 환자에 대한 심사 권한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 넘어갔다. 2013년 7월이었다.
민간 보험사를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거친 그였기에 심평원에 대한 기대는 컸다. 그러나 막상 심평원의 심사도 '도긴개긴' 같았다.
"심평원이라면 공정한 심사를 할 줄 알았습니다. 건강보험 기준을 준용한다고는 하지만 실제 심사 결과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비급여 진료에 대한 급여기준은 없기 때문이죠. 결국 자동차 보험회사에서 정한 기준을 갖고 심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연히 삭감이 많을 수밖에 없겠죠." A원장의 하소연이다.
심평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교통사고 환자 진료비를 위탁 심사한 초기 3개월 삭감률은 약 4%까지 올라갔다. 2013년 7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1년사이 심사조정률도 의원은 2.6%, 종합병원은 3.4%, 병원은 4.4%에 달했다.
건강보험 심사조정률이 지난해 0.6%인 것을 감안하면 상대적으로 높은 수치다.
여기다가 진료비 지급 시기도 심평원 심사 위탁 후 길어졌다.
"자보사에 직접 진료비를 청구하면 진료비 지급까지 걸리는 시간은 최대 일주일이었습니다. 심평원이 위탁 심사한 후에는 평균 40~50일이 걸립니다. 그 사이 이자도 없습니다."
적정 심사를 기대했던 A원장은 보험사의 횡포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아예 접었다고 했다. 그리고 삭감을 피하기 위해 소극적 진료를 하고 있다고 한다.
"신경차단술은 급성 외상환자가 오면 즉시 시술합니다. 하지만 교통사고 환자가 오면 언제 다쳤는지를 먼저 물어봅니다. 15일이라는 기준이 어디서 온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안에 시술을 하면 100% 삭감 당하기 때문입니다. 15일 사이 환자의 통증은 만성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결국 같은 시술을 하고도 건강보험과 자동차보험에 대해 급여기준을 달리해 청구를 하고 있는 셈이다.
"자보 심사 심평원 이관 후 쏟아진 부작용 반복될 것"
이처럼 민간보험사의 심사를 심평원이 위탁함으로써 생긴 혼란을 의료계는 심사 지연, 과도한 삭감이라는 부작용을 통해 경험했다.
한 중소병원장은 "자동차보험 심사가 심평원으로 이관된 후 병원들 불만이 쏟아졌다. 미국처럼 진료하기 전에 보험사 통보를 받아야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서울 S정형외과 원장은 "환자와 보험회사가 이야기해야 할 문제를 병의원이 심평원에 직접 청구하니까 심평원과의 의사의 불필요한 대립이 생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선험 때문에 금융위원회가 최근 실손의료보험 진료비 심사를 심평원에 위탁하려는 움직임에 의료계의 우려는 깊어지고 있다.
교통사고라는 특정 환자에 국한된 게 아니라 전체 질환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데다 비급여에 대한 급여기준도 없는 상황에서 부작용 발생은 불 보듯 뻔하다는 것이다.
경기도 R병원 원장은 "심사를 한다는 의미는 병원이 청구한 금액에서 덜 준다는 것이다. 치료를 잘 했다고 돈을 더 주지는 않는다. 의사가 최선의 진료를 할 수 있는 여지가 줄어든다"고 하소연했다.
대한의사협회 관계자도 "MRI 가격이 천차만별인데 비급여에 대해 적정 가격을 매길 수 있을지 모르겠다. 민간보험사와 환자의 계약관계에 심평원과 의료기관이 끼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실손보험을 심평원이 심사하면 실손보험사의 보험 가격이 다 같아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혹시나 심사 결과를 놓고 분쟁이 생겼을 때는 보험사가 아닌 심평원에다가 소송을 제기해야 하는 불편함이 생긴다는 지적도 나왔다.
대구 J외과 원장은 "전에는 진료비 분쟁 상대가 보험회사였는데 이젠 공공기관인 심평원을 상대로 소송을 해야 한다. 지방에 있는 병원장은 분쟁이 있을 때 서울행정법원까지 가야 하는 상황이 생기게 되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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