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시그널'은 과거로부터 수신된 무전으로부터 시작된다. 과거의 형사가 미래의 형사와 교신하며 미제 사건을 해결해 나간다는 설정은 현실적인 작법을 거부한 시그널만의 힘, 한마디로 판타지였다.
시청자들은 수사물의 형식에 '왜' 무전이 시작됐는지, '어떻게' 과거와 미래의 교신이 가능하냐는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비록' 상상력이라는 필터를 통해서라도 사회적 정의의 이상적 도달과 구현을 보고자 했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좀처럼 이같은 결론을 보기 힘들다는 점에서 드라마 속 대사는 가슴 한편을 뜨끔하게 한다. "거긴 어때요? 그래도 뭐라도 달라졌겠죠. 20년이나 지났는데."
최근 제68차 대한의사협회 대의원회 정기총회를 보고 있노라면 묘한 기시감을 느끼는 분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이번 정기총회에서 이슈 메이커, 혹은 트러블 메이커는 단연 김세헌 감사. 대의원회가 간선제 대의원을 선출한 것은 정관 위반이라고 주장했다가 성난 대의원들로부터 감사보고서 채택 거부와 불신임 발의라는 뭇매를 맞았다. 게다가 새 특별감사단 구성이 의결되면서 확인사살까지 당했다. 사실상 의협 감사라는 직무 수행에 있어 손발이 묶인 셈이다.
문제는 감사가 같은 집안 식구인 대의원회에 칼을 겨눴다는 논리가 작용하면서 정작 논란의 원인인 감사의 감사 범위와 권한의 한계라는 본질적 논의는 실종되고 말았다는 점이다.
2009년에도 비슷한 일이 반복됐다. 이원보 감사는 대법원에서 업무상 횡령 등의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장동익 전 회장의 윤리위 징계 여부를 두고 중앙윤리위원회와 갈등을 빚었다.
당시에도 감사의 권한이 발단이었다. 이원보 감사는 윤리위에 대한 감사가 적법하다고 봤지만 윤리위는 비공개 회의록을 넘겨줄 수 없다며 감사를 거부했다.
이 감사가 윤리위 회의록을 압수, 봉인 조치하자 이번엔 윤리위가 이 감사에게 회원자격정지 2년의 중징계 처분으로 응수했다. 이에 반발한 이원보 감사는 감사직무수행방해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하며 법정 다툼을 시작했다. 법원이 판단을 내려주기 전까지 의협 내부의 분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김세헌 감사의 불신임이 현재 진행형이라는 점에서 아직 끝난 스토리는 아니지만 어떤 방향으로 이야기가 전개될지는 대충 윤곽이 잡힌다. 이원보 감사와 중앙윤리위원회의 이름 대신 김세헌 감사와 대의원회의 이름을 넣으면 지리멸렬한 법정 다툼이라는 뻔한 줄거리가 얼추 예상되기 때문이다.
사실상 감사 권한과 범위에 대한 이견 다툼이 아니라 감정 싸움의 성격이라는 게 의료계의 중론. '어르신'을 자처하는 대의원들은 정기총회장에서 감사를 성토하기에 바빴지, 누구도 애매한 감사의 권한과 범위를 논해보자고 나서지는 않았다. 감사단이든 대의원회든 이번 싸움에서 지면 사실상 존재의 당위성이 흔들린다는 점에서 서로의 존재를 부정해야 하는 벼랑끝 전술로 맞부딪치고 있다는 소리다.
이런 감정 싸움은 양재수 경기도의사회 의장의 제명 건이나 한부현-현병기 후보간의 부적격 시비 등에서 수 차례 확인한 바다. 의료계에서 발생한 수 차례의 법정 공방을 보면서 기승전-소송이라는 선택지는 별로 변한게 없어 보인다. 의협에서 만큼은 과거의 선택지들이 미래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결론이다.
미래에는 과연 드라마틱한 변화를 보여줄 수 있을까. 2036년, 과거로부터 수신된 무전이 의협을 뜨끔하게 할 지는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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