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대병원 교수 출신 곽현 원장, '객관적 치료' 실천 수치에 기반한 결과에 따라 향후 치료 반영
"환자 GBF는? POA는? EBER 계획은?"
이 병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몇가지 키워드를 암기해야 한다. "좋아졌습니다"와 같은 두루뭉술한 대화는 통하지 않는다. 환자 상태를 묻는 질문에 치료사들은 "보행평가 점수 4점이 6점으로 올라갔고 무릎 각도는 60도까지 회복했다"와 같이 답해야 한다. 끝이 아니다.
환자 상태에 대한 보편적이고 합리적인 진단이 있은 후에야 MMT, ROM/MT, STEPS, OT와 같은 암호문들이 따라 붙는다. 전직원을 대상으로 '시스템 치료'를 시행하고 있다는 부산 아주재활병원을 찾았다.
주먹구구식 치료 없다…시스템에 의한, 시스템을 위한, 시스템의 병원
아주재활병원은 부산 하단역 4번 출구 바로 앞에 위치하고 있다. 69병상에 1000평, 외래 40~50명, 입원 40~50명의 규모를 갖췄다. 근골격계 전문 재활병원을 표방하는 여타 병원들과 규모 면에선 별반 차이가 없지만 시스템만큼은 상급종합병원을 방불케한다.
아주재활병원의 진면목을 보기 위해선 겉보기보다 속사정을 살펴야 한다는 뜻. 바로 환자 상태에 대한 객관적 진단, 평가와 같은 시스템 기반 치료가 다른 의료기관과 차별점을 만들어내는 핵심이다. 동아대학교 교수 출신 곽현 원장은 객관성에 기반한 평가 및 치료를 철학으로 삼고 있다.
곽 원장은 "아주재활병원을 이해하는 핵심 키워드는 GBF와 POA로 요약된다"며 "GBF는 좋음(Good), 나쁨(Bad), 미래(Further)의 약자이고 POA는 치료 계획(Pland of Activity)의 약자"라고 설명했다.
그는 "예전에는 치료 잘하기로 입소문 난 병원들이 주로 의사 개개인의 전문적인 지식, 직관적인 경험, 판단에 의존하는 곳이 많았다"며 "디지털 기구, 기계들로 환자 상태를 수치화할 수 없었던 과거에는 이런 방식이 통용될 수 있을지 몰라도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는 "환자 상태를 정확히 알아야만 정확한 치료 과정이 병행되고, 환자들도 치료 프로세스에 공감할 수 있다"며 "따라서 치료의 핵심은 환자 객관화부터 시작돼야 한다"고 말했다.
쉽게 말해 GBF는 현재 환자 상태의 좋은 점과, 나쁜 점, 이를 기반으로 한 향후 치료 계획(POA)을 포괄하는 단어다. 환자 치료 과정에 직접 참여하는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 등은 GBF에 기반해 원장과 소통하고 향후 치료계획을 수립한다.
아주재활병원은 객관적 평가를 위해 기본 혈액검사뿐 아니라 ▲침 근전도 ▲표면 근전도 ▲뇌파 ▲감각유발전위 ▲운동 유발전위 ▲자세 반응검사 ▲자율신경검사 ▲적외선 체열진단까지 시행한다.
곽 원장은 "훌륭한 의사의 진단, 치료가 반드시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며 "이는 재활의 특성상 재활을 수행하는 주체가 환자 본인이 돼야 하기 때문에 무엇보다 환자들이 치료 과정에 공감하고 적극 참여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환자에게 제공하는 치료 과정은 반드시 근거가 있어야 한다"며 "다양한 증상에 따른 치료법을 패키지화 해 치료사뿐 아니라 환자들도 머리 속으로 치료 프로세스를 도식적으로 그려 생각할 수 있게 했다"고 덧붙였다.
곽현 원장의 표현을 빌리자면 병원은 '뷔페'같은 곳이다. 사람마다 식성과 취향은 다르지만 A부터 Z까지 표준화된 음식이 갖춰져 있다면 이를 조합해서 만족시킬 수 있다. 아주재활병원도 마찬가지다. 패키지화된 표준 치료법을 갖춰 고령환자에게는 A/C/D와 같은 처방을, 20대 여성 환자에게는 C/A/F와 같은 치료법을 조합해 제공할 수 있다.
치료 과정에서는 ▲만성 통증 PAK(Robotic ATT, scrambler) ▲수술 후 재활 PAK(Huber 360)/신경계 재활 PAK(Rocking chair) ▲호흡재활 PAK(Biofeedback) ▲인지재활 PAK(Cog-Trainer) ▲전정재활 PAK(Wii-Hab, PS Hab/암재활(PNT Tree) 등이 조합되는 식이다.
실제로 병원 내부를 둘러보면서 직원이 작성한 GBF/POA 관련 안내문을 볼 수 있었다. "PAK 이후 TUG/PI, MMSE & GCS & 언어가능 / ACR, Huber/PT, MT, STEPS / OT, MT"와 같이 치료 과정 전반이 두루뭉술한 표현 대신 명확한 지침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 흔한 매트 한장 없다…EBER 치료법
재활 과정에서 치료가 잘 되는지 여부는 전적으로 환자의 판단에 달린다. 환자가 호소하는 통증 정도에 따라 잘된 치료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식이다. '사람 손'에 의존한 치료는 실제 병의 호전 여부와 상관없이 주관적인 평가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곽현 원장은 "본원에서는 다른 재활병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매트가 없다"며 "사람의 손보다는 장비를 활용하는 치료를 선호하기 때문에 환자가 매트에 누워서 치료하는 방식은 찾아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오늘은 걷는 훈련을 하자고 지시하는 것 대신 로보틱 ATT 훈련 2단계 훈련으로 하라고 말한다"며 "기계를 활용하면 치료 상황에 따라 다음 치료 계획을 세우기 용이해진다"고 설명했다.
그는 "기계를 활용하면 단계마다 테스트 평가치를 보고 치료 계획을 세울 수 있다"며 "이를 두고 기구 중심의 재활 훈련 EBER(Equipment Based Exercise for rehabilitation)라고 부른다"고 덧붙였다.
이렇게까지 '객관화'에 치열한 이유는 뭘까. 의료선진국에서의 경험이 그의 진료 철학에 영향을 미쳤다.
곽현 원장은 "일본에서 공부한 적이 있는데 그런 경험을 통해 우리나라 의료 상황을 보다 현실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됐다"며 "한국의 경우 의사 개개인의 개인기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고 환자를 수동적인 존재로 그리지만 일본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의무기록을 제3자가 봐도 알 수 있어야 한다"며 "보편성, 합리성에 기반한 치료 방법이 전달되고, 환자가 치료의 주체로 참여하는 과정까지가 바로 바람직한 치료 과정의 완성"이라고 말했다.
흔히 게임기로만 생각하는 플레이스테이션이 치료실에 등장한 것도 그의 일환.
곽현 원장은 "환자가 즐겁게 즐길 수 있는 치료를 고민하면서 플레이스테이션의 VR 시뮬레이터를 활용하면 좋은 결과를 내놓을 수 있다는 판단이 들어 적극 활용하고 있다"며 "아무리 수 천만원 짜리 고가의 치료 장비를 사용한다고 해도 환자가 싫증을 내고 안하면 그만이다"고 지적했다.
그는 "기존의 인지 장비들이 하나같이 치료 기능에만 집중해 재미라는 중요한 요소를 놓쳤다"며 "펀치팩 등 스마트 터치 기능이 달려서 때릴 때마다 소리가 달라지는 등의 재미 요소를 치료에 활용하면서 환자들의 반응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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