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도네페질 약제의 혈관성 치매 적응증 삭제와 관련해 무분별한 '비용-효과성' 위주의 접근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완치 개념의 치매 치료제가 없다는 상황을 감안하면 부분적으로 효과를 입증한 약이라해도 사용하지 않을 때보다 처방 시 편익이 앞설 수 있다는 뜻. 대안이 없다는 점에서 비급여 사용 증가 등 사회적 비용 증대 부작용도 예상된다.
10일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임상재평가에 따라 도네페질의 혈관성 치매 적응증을, 아세틸엘카르니틴 성분의 일차적 퇴행성 질환 적응증을 삭제키로 했다.
적용되는 도네페질 품목은 대웅제약 아리셉트정, 동아에스티 아리도네정, 명인제약 실버셉트정, 삼진제약 뉴토인정, 환인제약 환인도네페질정, 명문제약 셉트페질정, 고려제약 뉴로셉트정을 포함 총 49개다.
혈관성 치매는 뇌혈관 질환으로 인해 뇌조직의 손상으로 나타나는 치매다. 보통 뇌혈관 질환이 반복해서 발생함으로써 혈관성 치매가 생기는 경우가 많다.
혈관성 치매의 발생이 주로 고혈압, 고지혈증 등 대사성 질환에서 기인하는 까닭에 치료방법도 뇌혈관 질환의 재발이나 악화를 방지하기 위한 항응고제, 혈류순환개선제 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도네페질도 신경세포 사멸 억제나 재생 대신 증상 개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적응증 삭제와 관련해 일선 현장의 혼란은 제한적이라는 게 의료진의 평가다.
대한치매학회 최호진 홍보이사는 "혈관성 치매에 대해 완치 개념으로 접근하는 약물은 아직까지 없기 때문에 적응증 삭제로 큰 혼란이 발생할 것 같지는 않다"며 "다만 최근 중추신경용약제와 관련해 엄격한 비용-효과성의 잣대를 들이대는 분위기가 바람직한 것인지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임상적 효과는 임상시험 설계 방법, 기간 등에 따라서 다르게 나올 수 있어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며 "도네페질은 기전뿐 아니라 본인의 임상 경험에 비춰보면 분명 효용이 있는 약제"라고 강조했다.
이어 "특히 완치 개념의 치매 치료제가 없는 현 상황을 고려하면 정부가 나서 쓸 수 있는 약물을 자꾸 줄여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기계적으로 적응증을 삭제하기보다는 부분적인 효과라도 입증됐다면 임상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보고 결정하는 편이 낫다"고 조언했다.
아세틸엘카르니틴 역시 일차적 퇴행성 질환 적응증이 삭제됐지만 딱히 대안이 있는 것이 아니다. 콜린알포세레이트 성분이 퇴행성 뇌기질성 정신증후군 적응증을 가지고 있지만 해당 성분도 증상 억제 및 완화 개념으로 접근하기 때문이다.
최호진 이사는 "증상 완치, 치료와 같은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면 결국 부분적인 효과가 입증된 약제는 쓰지 못하는 상황이 된다"며 "환자의 치매 증상 진행에도 불구하고 의료진이 그대로 손 놓고 보고만 있어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고 덧붙였다.
치매 시장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적응증 삭제가 오프라벨 사용을 부추길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허가받지 않은 적응증에 의약품을 처방하는 것을 오프라벨(Off-Label-Use)이라고 한다. 허가사항외 사용은 의료진의 판단에 따른다.
고대의대 정신건강의학과 윤현철 교수는 "MMSE 검사 때마다 인지 능력 저하가 확인되는 경우 약물 처방없이 수수방관하기는 쉽지 않다"며 "가장 큰 문제는 지금까지 수 년간 약을 먹던 환자들이 적응증 삭제로 처방이 끊겼을 때 반발이 심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 정부가 리보트릴 약제의 우울증, 불면 적응증에 대한 처방을 금지하면서 환자들의 불만이 터져나온 적이 있다"며 "장기간 약을 처방받은 환자들은 이런 저간 사정을 모르기 때문에 주로 의료진만 성토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딱히 확실한 치매 치료제가 없는 상황을 고려하면 적응증 삭제로 인해 처방 코드 변경이나 비급여 처방이 빈번해 질 것으로 예상한다"며 "대안이 없는데도 무작정 비용-효과성만 따지는 기조가 결국 (비급여 증가로 인한) 사회적 비용 증대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모 제약사 관계자는 "치매와 관련 치매 치료제 이상으로 콜린알포세레이트 처방이 늘어난 것은 한번 시작되면 되돌릴 수 없다는 치매의 비가역적 성질과 그에 따른 불안감에서 기인한다"며 "비급여라고 해도 환자들이 먼저 콜린알포세레이트를 요구하는 것도 그 이유"라고 설명했다.
그는 "엘카르니틴 처방에서 퇴행성 질환 적응증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60% 정도가 된다"며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에 콜린알포세레이트의 빈번한 비급여 처방처럼 삭제된 적응증에 대한 비급여 처방이 늘어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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