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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도 나와서 현지조사 받아라" 요구는 재량권 남용

발행날짜: 2019-07-23 06:00:58

서울행정법원, 조사 거부로 업무정지 명령한 처분 취소
현두륜 변호사 "강압적 현지조사 방식에 경종 울린 사건"

질병으로 휴가를 낸 원장에게 현지조사를 받으라며 출석을 요구하고 이에 응하지 않자 영업정지 처분을 한 것은 명백한 재량권 남용이라는 판결이 나왔다.

이에 대해 법률 전문가들은 그간의 강압적 현지 조사 방식에 대해 경종을 울린 사건이라고 평가하며 앞으로 현지 조사 진행에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서울행정법원은 최근 질병으로 휴가 중에 현지 조사에 응하지 않았다며 영업정지 처분을 받은 A원장이 이에 불복해 제기한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장의 손을 들어줬다.

22일 판결문에 따르면 이번 사건은 지난 2017년 2월 보건복지부가 A원장이 운영하는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현지 조사에 착수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A원장은 질병으로 의료기관에 출근하지 않은 상태였고 이에 현지조사단은 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약제비 청구가 과도한 것을 해명하라며 당장 출근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자 A원장은 도저히 몸을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아픈 상태로 호소하며 조사를 거부할 의사는 없는 만큼 전화나 카카오톡으로 조사 목적을 설명하고 명령서를 보내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현지조사단은 재차 전화해 원장이 나오지 않으면 현지조사를 진행할 수 없으며 이는 조사 거부에 해당해 업무정지 등 형사처분을 받을 수 있다고 촉구했다.

이에 대해 원장은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으니 내일 방문하거나, 직원들에게 당부해 뒀으니 필요한 서류를 가져가라고 문자 메시지를 보냈지만 조사단은 지금 출근하지 않으면 조사 거부로 보고 현지조사를 종료하겠다는 답장을 보낸 뒤 한달간의 업무 정지 처분을 내렸다.

그러자 A원장이 조사를 거부한 것이 아니라 연기를 원했을 뿐이라며 서울행정법원에 처분을 취소해 달라고 소송을 제기한 것.

이에 대해 재판부는 "A원장에 제출한 진단서를 보면 안면마비부터 엉덩이 근육 및 힘줄의 손상, 요통을 병명으로 158일간 통원진료를 받은 것이 인정된다"며 "이러한 사실에 비춰보면 복지부가 주장하는 증거들로 원장이 정당한 이유없이 현지조사를 거부했다고 보기는 힘들다"고 꼬집었다.

A원장이 조사명령서를 카카오톡 메시지로 보내달라고 요청했고 며칠 후라도 현지조사에 응하겠다고 답변한 만큼 기본적으로 현지조사를 거부할 마음이 없었다고 보여진다는 것.

또한 현지조사 지침을 담은 행정조사기본법에도 조사명령서를 제시할 상대방을 '요양기관 대표자 등'으로 규정하고 있고 대표자가 질병이나 장기출장으로 현지조사가 곤란하다고 판단될 때 조사 연기가 가능하다고 규정하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결국 당시 현지조사단이 A원장을 대면하지 못했어도 카카오톡 메시지로 조사명령서를 보낼 수 있었던데다 지침에도 '대표자 등'이라고 명시돼 있는 만큼 직원에게 이를 제시하고 현지조사를 실시할 수 있었는데도 원장이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조건 조사 거부로 몰아갔다는 비판.

재판부는 "결국 현지조사단은 A원장이 질병으로 현지조사 연기를 요청했는데도 이러한 요청이 연기 사유가 되는지 확인도 하지 않은 채 조사에 응할 것을 반복적으로 요구했고, 이로 인해 A원장이 현지 조사를 거부한다고 섣불리 단정해 과도한 처분을 내린 것이 인정된다"며 업무정지 처분을 취소하라고 판시했다.

이러한 판결에 대해 법률 전문가들은 그동안 지속적으로 논란이 됐던 강압적 현지 조사 방식에 경종을 울린 사건으로 보고 있다.

의료기관 대표자, 즉 원장이 질병이나 출장 등으로 조사를 연기할 수 있다는 규정이 명백하게 존재하고 직원에게 조사 명령서를 전달하는 것만으로도 조사를 실시할 수 있는데도 강압적으로 원장 등 대표자를 대상으로 현지 대면 조사를 강행하던 관행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것이다.

법무법인 세승 현두륜 변호사는 "오래전부터 복지부의 강압적 현지조사는 지속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며 "특히 강압적인 현지조사로 인해 의료기관 대표자의 절차적 기본권이 늘 무시돼 왔다"고 지적했다.

이어 "현지 조사 과정에서 의료기관 대표자에 대한 대면 조사와 사실확인서 작성은 필수적인 것이 아닌데도 실제 현지 조사시에 대표자에게 사실 확인서를 강요하고 직접 조사를 받을 것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번 판결은 이러한 강압적인 대면 조사와 직접 조사 관행에 경종을 울린 사건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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