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위해평가에 대한 개론에서 입증된 위해의 경우 적극적인 안전성 관리조치를 시행하지 않으면, 언젠가 반드시 환자에게 피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기술한 바 있다. 예를 들어 발사르탄이나 라니티딘을 장기 복용하고 암이 발생했다는 근거는 없다. 단지, 추정되는 잠재적 위험이다. 그런데도 얼마나 열심히 판매중지를 했는가? 그것이 잘못했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잠재적 위험에 대해서 그렇게 적극 조치를 취한 식약처가 확증된 위험인 인공유방 사태에 대해서 너무나도 부실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인공유방 관련 역형성림프종((Breast -Associated Lymphoma, BIA-ALCL)은 2019년 10월 기준 전세계에서 500예 이상이 보고 됐고, 이중 30예 이상에서 사망했다. 즉, 이는 완벽하게 확증된 위험인 것이다.
첫째, BIA-ALCL의 위험을 평가할 때 특히 고려해야 하는 부분이 이 수술을 받는 사람들이 일부 유방암으로 유방 절제술을 받은 환자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건강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건강한 사람들에게 투여 또는 시술되는 의약품/의료기기의 경우 유익/위해 평가상 유익이 환자들에 비해 적기 때문에 빈도가 매우 낮을지라도 상당히 엄격한 위해 평가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다이안느35정은 처음 허가 시 피임제로도 허가됐지만 독일에서 이 약의 장기 복용 후 간암 발생 사례가 1예 보고됐고, 유전독성상 과학적 개연성이 있었으므로 피임제 적응증은 삭제됐다. 즉, 건강한 여성이 피임제를 복용할 때 약 10년 후에 암이 발생할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복용할 필요는 없다고 상식적으로 판단한 것이다(포탈에서는 이 약이 여전히피임제로 검색된다). 그렇기 때문에 BIA-ALCL의 위해평가시에도 이 수술이 대부분 건강한 사람들이 받는 수술이라는 점을 주의해야한다.
전세계적으로 거친 표면 인공유방의 판매중지를 가장 먼저 시행한 프랑스의 규제기관인 ANSM은 수술을 받은 사람들이 느끼는 유익/위해를 평가하기 위해서 수술 받은 사람들을 불러서 공청회를 시행했으며, 이로 인해 적절한 평가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미국 FDA의 조치를 일부 그대로 복사해 증상이 있을 때 병원을 방문하고 예방차원의 제거는 권고되지 않는다고 반복하고 있다. 일부 보고된 BIA-ALCL은 무증상이었으며, 미국 FDA도 정기적인 검진을 권유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이는 얼마나 무책임한 것인가?
필자는 필자를 포함한 우리나라 여성들이 암에 대해 훨씬에민하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몸에 암이 발생할 수 있는 인공유방을 그대로 가지고 있기를 원하는 사람은 매우 적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식약처는 FDA의 조치를 그대로 따라할 것이 아니라 프랑스와 같이 공청회 등을 통해 우리나라 여성들이 느끼는 유익/위해에 대해 적절한 평가를 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둘째, BIA-ALCL의 위해성을 평가할 때 고려해야 할 점이 발병까지의 기간이다. 발표된 역학조사의 결과들에 따르면 인공유방을 이식하고 BIA-ALCL이 발생하기까지 약 8년 전후의 기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문제는 인공유방을 이식받은 사람들은 고혈압과 같은 만성질환이 아니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한 정기적으로 의료기관을 방문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즉, 이 새롭게 확인된 위험을 환자들에게 알리기가 어렵다.
선진규제기관들은 BIA-ALCL에 대한 우려가 시작됐던 2010년대 초부터 환자등록을 하기 시작했다. 이는 인공유방을 시술받은 환자들에 대한 정기적인 관찰을 시행하고, BIA-ALCL이 발생하면 이를 보고하는 시스템으로 운영됐다. 반면 식약처는 FDA 발표에 따라 2011년 BIA-ALCL에 대해 인지했으나, 안전성 서한만 뿌리고 FDA와 같은 환자등록연구는 전혀 시행하지 않았다. 또 인공유방은 의료기기법상 추적관리대상에 해당했으나 식약처는 추적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즉, 환자들을 환자등록연구든, 추적관리대상이든 등록을 해 정기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친 것이다. 이후에도 2013년 의료기기통합안전관리시스템을 만들겠다고 했으나 만들어지지 않았고, 추적관리대상 의료기기에 대한 관리 부실이 거의 해마다 국정감사에서 지적을 받았음에도 시정되지 않았으며, 2016년에는 실리콘 인공유방에 대한 안전성 재평가, 2017년에는 인공유방의 파열로 모유에 섞이는 사건이 발생해 인공유방에 대한 안전성 평가를 다시 하면서 역형성 림프종의 문제를 더욱 인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 위험성을 적극 환자들에게 알리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결국 식약처가 추적관리시스템을 들여다 본 것은 국내에서 BIA-ALCL 환자가 결국 발생한 뒤였다. 이때서야 부랴부랴 의료기관에 자료요청을 했으나 시술받은 환자들의 50%도 확인하지 못했으며, 실제 안전성 정보에 대한 환자 개별 통보는 이 중의 일부 환자들에게만 이뤄졌다. 뒤늦게 시작된 환자등록연구에는 12월 26일 현재까지 60여명의 환자만이 등록했다고 하니 한숨만 나올 뿐이다. 수없이 반복된 지적에도 불구하고 추적관리대상을 전혀 관리하지 않은 것은 식약처라는 조직의 완악함, 안전 불감증을 보여주며, 이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들이 떠안게 된 것이다.
세번째로 BIA-ALCL은 거의 대부분 텍스처드(textured) 인공유방에서 발생했다는 점이다. 텍스처드 제품에는 매크로텍스처드(macro-textured)와 마이크로텍스처드(micro-textured) 제품이 있는데, 식약처는 매크로텍스처드 제품에 대해서만 판매 중지가 아닌 사용 중지를 했다. 심지어 유일하게 자발적 회수 조치를 하고 있는 엘러간사 제품도 회수율이 5%에 못미치고 있으니 실로 어이상실이다.
물론 매크로텍스처드 제품이 상대적으로 위험도가 큰 것은 사실이나 마이크로텍스처드 제품도 위험도가 분명히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일부 국가는 모든 텍스처드 제품에 대해서, 일부 국가는 매크로텍스처드 제품에 대해서만 사용중지를 한 점이 있으나, 마이크로텍스처드 제품의 위험성에 대해서도 국내 전문가그룹과 논의해 분명한 조치가 필요하다.
또 식약처는 매크로텍스처드 제품에 사용 중지를 하면서 엘러간사 제품만 부각시킴으로써 환자들이 엘러간사 제품만 아니면 괜찮다는 잘못된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방치했다. 식약처는 지금이라도 모든 텍스처드 제품에 대해서 판매 중지와 같은 적극적인 조치를 해야하며, 모든 제품의 회사명과 제품명을 환자들에게 공개해야 한다. 확증된 위험임에도 불구하고 안전성 관리를 소홀히 한 인공유방사태는 지금이라도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제2의가습기살균제 사태가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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