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 등 정부, 국산 기기 신뢰도 향상 목표 도입 검토 일선 기업들은 3중 규제 우려 팽배…의료계는 일부 기대
보건복지부 등 정부가 국산 의료기기 신뢰도 향상을 목표로 공신력 있는 의료단체를 통한 의료기기 민간 인증제 도입 방안을 제시하자 산업계가 크게 요동치며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 규제기관을 통해 이미 압박을 받고 있는 상황에 또 다른 인증제까지 만든다면 옥상옥 개념으로 3중고를 겪게 된다는 것이 상당수 기업들의 항변. 하지만 의료계에서는 국산 의료기기의 공신력 확보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의료기기 민간 인증제 가시화…국산 기기 신뢰도 향상 목적
24일 의료산업계에 따르면 의료기기 민간 인증제는 지난 1월 보건복지부와 기획재정부 등이 참여한 관게 부처 합동 회의에서 논의가 시작됐다.
제2차 혁신 성장 빅3 추진회의에서 의료기기 활용 및 지원체계 구축방안의 일환으로 의료기기 민간 인증제도 도입이 제시된 것.
4차 산업 혁명을 타고 의료기기 분야가 신 성장 동력으로 각광받고 있지만 국산 의료기기가 수입 제품에 밀려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민간 인증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취지다.
실제 사용자 즉 의사들이 국산 의료기기에 대한 신뢰도를 낮게 평가하고 있는 만큼 공신력 있는 사용자 단체, 즉 의학회나 대한병원협회를 통해 민간 인증을 추진한다면 국산 기기에 대한 관심과 신뢰를 동시에 확보할 수 있지 않겠냐는 의도인 셈이다.
이에 따라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이에 대한 도입 방안 연구를 추진하는 것은 물론 내년도 시범 운영을 목표로 세부 추진 방안까지 마련하며 속도를 내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에 따르면 현재 의료기기 민간 인증은 대한민국 의학한림원이 주관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당초 주관 단체로 병협 등이 거론됐지만 보다 중립적이고 전문적인 단체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되면서 국내 최고 권위의 학술 단체로 의학한림원이 대안으로 떠오른 셈이다.
이에 따라 한림원은 현재 구체적인 세부 계획은 물론 평가 항목 등에 대한 연구까지 진행하며 복지부와 발을 맞춰 추진을 구체화하고 있는 상태다.
의학한림원 박병주 부원장은 "의학한림원은 의사라면 누구나 인정하는 최고 권위의 학술단체로 여타 이해관계가 없이 공정하고 중립적으로 평가를 할 수 있는 기관"이라며 "특히 회원들이 20년 이상 의학 발전에 헌신한 전문가며 학회장, 학회 이사장, 병원장 등을 역임하며 의학, 경영 분야에서 전문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신뢰도 향상에도 이만한 가치가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일선 기업들은 '옥상옥' 규제 지적…"미슐랭 가이드처럼 생각해야"
하지만 일선 의료기기 제조사들은 이러한 정부의 움직임을 마냥 반갑게 여기지는 않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이미 인허가 절차는 물론 신의료기술, 급여 등에 대한 각종 평가와 유통, 안전성 규제까지 받고 있는 상황에서 민간 인증까지 더해진다면 오히려 규제 위의 규제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 것.
A 국내사 임원은 "늘 모든 인증이나 평가가 취지 자체는 그럴싸 하지만 결론적으로 보면 또 다른 이름의 규제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우리나라 의료기기 기업들이 크지 못하는 이유 중 가장 큰 문제가 바로 이중, 삼중으로 얽혀있는 규제 방안"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식품의약품안전처부터 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의료기기안전평가원 나아가 공정거래위원회까지 지금도 의료기기 기업들은 규제기관 속에 둘러쌓여 있다"며 "여기에 더해 인증까지 받으라는 것은 기업에 3중, 4중의 올가미를 씌우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일각에서는 민간 인증 자체가 실제로 국산 의료기기 활용도에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인증을 받기 위해 들어가는 노력과 예산에 비해 실제 활용도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미비할 수 밖에 없다는 것. 결국 힘만 들이고 성과는 없는 허울뿐인 제도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B 국내사 임원은 "의학한림원이 아니라 식약처나 복지부에서 직접 인증을 한다 해도 우리나라 의사들이 국내사 제품을 쓰겠느냐"며 "이미 수입 제품에 비해 절대 열등하지 않다는 의학적, 학술적 근거가 차고 넘쳐도 리베이트나 덤핑 없이는 검토조차 하지 않는 것이 의료계의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국내사들이 해외에 수출 판로를 열려 할때 가장 큰 장벽이 되는 것이 바로 왜 한국 의사들이 실제로 사용한 리얼월드데이터가 없냐는 것"이라며 "심지어 개발이나 임상에 참여한 병원에서조차 써주지를 않는데 인증 하나 받았다고 덜컥 써줄 것이라고 생각하는건 행복회로 아니냐"고 덧붙였다.
결국 아무리 기획 의도가 좋아도 실제 효과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공연히 인적, 물적 인프라와 예산만 추가로 들여야 하는 또 다른 규제책이 나왔다는 평가가 지배적인 셈이다.
하지만 의료계와 의학계는 적어도 의사들의 관심과 지원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점에서 분명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또한 단순히 신청된 제품에 대한 인증을 넘어 될성 부른 기업에 정부 과제와 지원 사업 등을 집중하는 하나의 마중물이 될 수 있다는 평가도 내놓고 있다.
의학한림원 박병주 부원장은 "민간 인증제가 옥상옥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을 알고 있으며 이미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들을 마련한 상태"라며 "단순히 인증만이 아닌 인증을 받을 경우 혁신적 기업으로 인정해 여러 부처와 기관에 분산된 예산과 지원제도를 집중하는 마중물로 활용한다면 기업들에게도 상당한 기회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연장선 상에서 민간 인증을 받을 경우 공공의료기관에 최우선 구매를 권고하고 조달청 및 나라장터에 등록하는 혜택을 통해 판로 확보는 물론 실제 사용 실적을 쌓도록 유도할 계획"이라며 "이렇게 되면 기업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부분들을 채워갈 수 있게 된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렇게 민간 인증이 권위와 전문성을 쌓아가다보면 국제적인 인증의 역할로도 충분히 발돋음 할 수 있다는 것이 박 부원장의 생각이다.
국산 의료기기가 내수 시장을 넘어 세계 시장으로 뻗어가는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실제적인 인증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박 부원장은 "민간 인증제가 의도와 같이 활성화된다면 2027년 3단계 로드맵이 시작되는 시점에는 국제인증기관으로 충분히 발돋음 할 수 있을 것"이라며 "미국의 민간 인증인 JCI가 세계 어느 나라에서건 의료기관의 안전성을 보장하고 마찬가지로 미슐랭 가이드가 맛집을 보장하듯 의료기기 민간 인증이 이와 같은 기능을 충분히 담당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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