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번의 정년을 경험하니 새롭지 않다. 가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며 인생 후반기를 준비하겠다."
서울의대 이종구 전 교수(65, 가정의학과 전문의)는 메디칼타임즈와 만나 공직에 이어 대학 교수 퇴임에서 느낀 감정을 이 같이 밝혔다.
이종구 전 교수는 서울의대 졸업(1982년) 후 1989년 연천군 보건의료원 공무원으로 시작해 1994년 국립보건원 보건행정담당관과 방역과장을 거쳐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 이어 질병관리본부 본부장(현 질병관리청장)을 역임하고 2011년 퇴임했다.
그는 같은 해 서울대병원과 서울의대 가정의학과 교수로 임용되어 대학 교직 생활을 시작해 올해 2월말 정년퇴임했다.
정부 공무원으로 23년, 서울의대 교수로 10년 등 총 33년 공직과 교수를 동시 경험한 의사이다.
공직과 교수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이종구 전 교수는 "대학교수는 예산과 조직이 없다. 국회와 언론, 감사 등에서 자유롭다. 반면 공무원은 법과 예산, 정책에 의해 움직인다"면서 "의대교수 생활에서 배운 점은 생명 탐구를 위한 고도의 두뇌집단으로 진료와 연구에 대한 열정이다. 공무원들은 정책 실행을 통해 자부심과 성취감을 느낀다"고 전했다.
교수, 진료와 연구 생명탐구 ‘열정’…공무원, 정책 실행 ‘성취감’
그는 "의료현장과 정책 사이 연결고리 역할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진료와 연구로 시간을 쪼개쓰는 교수들이 이른 아침이나 늦은 저녁 회의 시간을 칼같이 엄수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교수들은 환자를 위해 의료 본질을, 공무원들은 국민건강을 위한 정책에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사스와 메르스, 코로나 등 신종 감염병 발생이 국내 보건의료 체계에 던지는 교훈은 무엇일까.
방역 전문가인 이종구 전 교수는 "신종 감염병이 발생하면 과거의 대응 체계는 한계가 있다. 중요한 것은 어떤 감염병이 발생하는 지에 대한 감시망 구축"이라고 전제하고 "미국은 200여개 감시망을 구축해 신종 감염병 탐지를 수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역학조사관 양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감염병 감시망을 구축하고 끊임없이 훈련과 교육을 지속해야 새로운 감염병에 빠르게 대처할 수 있다"면서 "백신과 치료제 개발을 위한 국내 제약바이오 역량 강화와 인프라 구축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코로나 사태에 부각된 방역의료정책 투명성과 합리성을 어떻게 평가할까.
이종구 전 교수는 "보건정책이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의사결정 구조가 합리적이어야 한다. 그리고 관련 단체 의견수렴을 통해 법과 제도화가 뒤따라야 한다. 정책과 제도 시행 후 잘못됐다면 빨리 수정하고 바꾸는 절차적 정의가 필요하다"며 "의료계에서 보건의료정책을 탁상행정이라고 지적하는 부분도 현장과 괴리감이다. 현장에 기인한 정책 수정 등 합리적 문화 형성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질병관리본부장을 역임한 그는 현 질병관리청 육성을 위한 정부의 과감한 결단을 주문했다.
이종구 전 교수는 "미국 CDC(질병관리센터)는 도로 표지판 하나를 바꾸는 것을 놓고 치열한 토론을 벌인다. 당뇨병 환자 등 국민건강을 위해 어떤 도로 구조와 표지판이 합리적인지를 논의한다. 경직된 행정이 아닌 근거 중심"이라며 "복지부가 담당하는 만성질환과 검진, 정신질환 등 공공보건사업은 질병관리청으로 과감히 넘겨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중앙부처 속성 상 부서와 조직 축소를 우려하나 질병관리청이 제 역할과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과감한 판단이 필요하다. 물론 질병관리청이 관련 정책을 가져와도 적응하기 위한 시일이 소요될 것"이라며 "질병관리청 인력과 조직이 강화되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만성질환 등 공중보건사업 질병청으로 이관해야 “경직된 행정 아닌 근거 중심”
이종구 전 교수는 "아직 인생을 평가하긴 이르지만 공무원과 교수 모두 팀플레이와 조화 그리고 리더십이 중요하다"면서 "군림하는 리더가 아닌 구성원을 존중하고 신뢰하는 진정성 있는 리더가 돼야 성과를 낼 수 있다"고 조언했다.
그의 정년 후에도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다. 이미 약속한 대학원 교육과 전공의 교육 그리고 이종욱글로벌의학센터 강의 등 적잖은 스케줄이다.
이종구 전 교수는 끝으로 "정년으로 인생 후반전을 자유롭게 준비할 수 있는 하프타임이 주어졌다. 퇴임 이전 약속한 강의를 소화하고 향후 설악산 인근에 마련한 집에서 아내와 함께 산행도 즐기고 건강관리에 치중할 계획"이라면서 "30년 넘게 정신없이 달려왔다. 좋은 공기를 마시며 인생 후반기를 어떻게 설계할지 차분히 생각해 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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