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버스터 약제인 오메가3, 아스피린의 지위가 예전만 못하다. 각종 미디어를 장식했던 아스피린의 '재발견'은 이제 아스피린의 '재검토'로 전락했다. 미국 예방 서비스 태스크포스(USPSTF)가 60세 이상 성인에서 심혈관 질환 예방을 위한 1차 약물로 저용량 아스피린 사용 금지를 결정하면서 설자리가 좁아진 것.
최근 개정 진료 지침을 공개한 대한고혈압학회도 고령 환자에서 아스피린 사용은 고위험군에 국한해 사용할 것을 당부, 재검토 행렬에 동참했다. 고위험군 환자에 주로 사용하고 위험도가 낮은 고령 환자에선 가급적 사용하지 않도록 한 게 권고의 요지다. 성분도 제형도 변한 것이 없다. 한때 암 예방 효과로 '기적의 약(wonder drug)'으로 칭송받던 그 아스피린이다.
에스키모들이 심혈관질환에 잘 걸리지 않는다는 점에 착안해 발견(?)했다던 오메가3 역시 "효과없음"을 시사하는 연구들이 나오면서 지위가 흔들리고 있다. 전문약으로 분류된 고용량 오메가3는 전문약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물약이란 오명을 쓸 위기에 처했다. 임상 재평가 대상이거나 후보군들도 위태롭긴 마찬가지. 해외에서 (건강기능)식품으로 팔리는 콜린알포세레이트가 국내에서 전문약으로 분류된 건 보편성의 범주에서 보면 나가도 너무 나갔다.
임상 자료의 생산 주체라는 점에서, 그 검토의 주체라는 점에서 의학계와 식품의약품안전처는 공교롭게도 한 배에 타고 있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약효가 떨어지거나 중대한 부작용이 위험이 있는 약이 허가되는 데는 엉터리 임상 자료를 생산한 의학계와 그 자료를 철저히 검증하지 못한 식약처 모두 책임이 있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해외 의존도다. 규제기관이라는 명칭에 어울리지 않게 해외규제기관의 안전성 정보에 지나치게 의존한다는 비판은 식약처 국정감사의 단골메뉴다. 해외의 가이드라인이 나온 이후에야 눈치싸움을 끝내고 한국판 개작에 착수하는 학계도 식약처와 닮은 구석이 많다.
적어도 약에 있어선 서양인과 동양인은 같고 또 다르다. 그 흔한 스타틴도 같은 효과를 보기까지 동-서양인의 투약 용량·기간이 달라진다. 항혈전제에서 자리잡은 '동아시아인 패러독스' 개념도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연구의 필요성을 설파한다. 약제의 활용, 부작용과 같은 리얼월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한국판 임상 지침 없이는 그저 해외 연구에 숟가락을 얹었다는 비판을 모면하긴 힘들다.
임상 자료를 홍보 수단으로 삼는다는 점만 다를 뿐 약은 하나의 상품처럼 생산·소비된다. 의학계에서 주목받은 일련의 발견은 엄격한 시간의 검증을 거치지 않은 패션과 같았다. 제품의 수명 주기와 비슷하게 한때의 번뜩이던 연구가 휩쓸고 간 자리엔 묻지마 찬사 속에 황금기를 보낸 쇠퇴한 올드드럭만 남았다. 올드드럭들이 쌓여만 간다는 건 해외에 의존한채 한 박자씩 느린 대응이 축적된 결과물이 아닐까. 학계가 주도하는 평가의 질서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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