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진료에 대한 의료계 인식이 오히려 악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시적 비대면진료 허용으로 이를 경험한 의사들이 늘어나면서 단점이 부각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7일 대한내과의사회·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대한이비인후과의사회·대한가정의학과의사회는 각 의사회 회원을 대상으로 한 비대면진료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 설문조사는 지난달 14일부터 28일까지 진행됐으며 2588명의 회원이 참여했다.
그 결과 72%의 응답자가 비대면진료에 부정적이라고 답했다. 이는 비대면진료를 경험한 의사들이 늘어나면서 관련 인식이 악화했다는 게 의사회들의 분석이다. 실제 지난해 10월 내과의사회가 1079명의 회원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부정적인 답변은 60%에 불과했다.
설문조사에 참여한 회원의 72.7%는 전화상담에 참여한 바 있고 이중 처방전까지 발행한 비중은 82.8%에 달했다. 하지만 대면진료와 비교해 충분한 진료가 이뤄졌다고 생각한 회원은 7.9%에 불과했다.
다른 문항을 보면 비대면진료가 감염병 등 불가피한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인정하지만 아직 시기상조라는 의견도 54.4%로 우세했다. 진료의 기본 개념 파괴 우려로 절대 안 된다는 반응은 18%였다.
비대면진료 시 우려되는 점으로는 ▲환자를 충분히 진찰하지 못해 오진 위험이 있다는 반응이 94% ▲비대면진료 전문의원 출현 69% ▲비대면진료 관련 플랫폼 난립 66% ▲대형병원으로의 환자 쏠림 현상 심화 59% 등을 꼽았다. 의사회들은 각각의 우려사항에 대한 응답비율 역시 지난해 설문조사보다 증가한 양상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비대면진료 도입 후 허용 가능한 진료범위와 관련해선 감염병으로 인한 국가위기 상황에서 한시적으로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77.9%로 가장 많았다. 이밖에 도서벽지 등 의료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에 한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62.4%, 장애인이나 거동 불편자로 한정해야 한다는 응답은 51%를 차지했다. 전면적인 도입보단 한시적·제한적으로 시행해야 한다는 의미다.
특히 응답자의 90%가 비대면진료를 재진으로 시행돼야 한다고 답했다. 이 역시 지난해 설문조사보다 악화한 내용이다. 지난해 조사에선 초·재진 상관없이 처방전 발행이 가능하다는 의견이 70%였던 반면 이번 조사에선 50%로 감소했다.
비대면진료 주체가 1차 의료기관이여야 한다는 의견도 90%에 달했다. 제한 없이 이뤄져도 된다는 의견은 7.8%에 그쳤다. 무분별한 허용으로 인한 의료전달체계 붕괴를 우려한 탓이다.
비대면진료 및 건강상담, 의약품 배송에 대해서도 87.5%가 부정적이었다. 이중 79%는 연계된 전문의료기관으로의 환자 쏠림을 경계했다.
플랫폼 간의 경쟁 심화로 업체들이 환자건강보다 이익창출에 집중할 수 있다는 우려도 77%에 달했다. 비대면진료를 초진으로 허용할 시 국민건강에 큰 위해를 끼칠 것이라는 의견도 70%였다. 불충분한 진찰, 의료쇼핑, 약물 남용 등의 우려 때문이다.
전자처방전 전달 시스템 구축 문제도 담겼다. 설문조사 응답자들의 57%는 이 사실을 모으고 있었고 66%는 부정적인 견해를 나타냈다. 모바일 기기로 처방전을 전달하는 것은 대체 조체를 활성화할 위험이 있고 복약지도를 부실하게 만든다는 지적이다. 이는 성분명 처방, 만성질환자에 대한 처방전 재사용 등으로 이어져, 의약분업의 취지를 근본적으로 훼손할 것이라는 우려다.
비대면진료 제도화 이후 적극 참여하겠다는 회원은 9%에 불과했고 21%는 현재의 대면진료만 유지하겠다고 답했다. 또 42%의 응답자가 비대면진료는 의료취약지 등 특수상황에서 제한적으로 시행될 것이라는 견해를 보였다. 의료 접근성을 고려했을 때 원격의료는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의견도 26%로 집계됐다.
4개과 의사회 회장단은 비대면진료 논의가 의료계 의견을 무시한 채 급박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더욱이 아직 비대면진료의 안전성과 유효성이 검증되지 않았는데 경제부처 주도로 제도화에 속도가 붙고 있다는 지적이다.
회장단은 이번 설문조사로 비대면진료에 대한 의료계 우려가 오히려 커졌음을 알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동안의 비대면진료 경험으로 진료의 기본이 되는 시진·청진·촉진 등의 진찰이 적절히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다는 설명이다.
불충분한 진찰은 오진 위험을 높이고 이로 인해 국민 건강권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우려다. 특히 비대면진료가 산업적 측면에서 정착된다면 전문의료기관이 생겨나 의료영리화의 수순을 밟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회장단은 비대면진료를 전면적으로 시행하는 것이 아닌 시범사업으로 제한적으로 진행돼야 한다고 봤다. 우선 의료취약지나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시범사업을 진행해 그 장단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제언이다. 또 의료전달체계의 왜곡을 막기 위해 인증된 1차 의료기관 주도로 재진 환자를 한정된 지역·인원 안에서 진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범사업 방식과 관련해 비대면진료만 받는 환자군과 대면진료만 받는 환자군을 비교하며 어떤 양상을 보이는지 분석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회장단은 이번 설문조가 결과를 토대로 대한의사협회와 정부에 '현장 의사들은 원칙적으로 비대면진료를 반대한다'는 입장임을 공고히 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내과의사회 박근태 회장은 "우리는 원칙적으로 비대면진료에 반대한다"며 "지난 대한의사협회 대의원정기총회에서 비대면진료를 논의하자는 안이 통과됐는데 이를 마치 비대면진료를 받아들인 것처럼 여기는 시선이 있다"고 전했다.
이어 "우리 4개과 의사회는 가장 많은 비대면진료 경험을 보유하고 있다. 코로나19라는 특수상황 때문에 의협에서 안건이 통과됐지만 우리 4개과와 협의 없이 진행돼선 안된다"며 "제도화 논의 이전에 비대면진료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먼저 정해야 한다. 우리의 목소리를 발표했으니 의협과 정부는 이를 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청과의사회 임현택 회장은 코로나19 대유행 시기에 비대면진료로 환자가 사망한 사례를 들며 그 위험성을 지적했다.
임 회장은 "비대면진료를 산업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이다. 델타 오미크론을 겪으면서 환자가 비대면진료를 받다가 사망한 케이스가 꽤 있었다"며 "특히 두 돌 되는 아이가 비대면진료를 받다가 구급차에서 사망하는 케이스가 있었는데 대면진료를 했으면 살릴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똑같은 증상이라도 진단은 다양하게 나오는 데 제한된 정보로 의사가 판단하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며 "예측이 가능한 오미크론 사태에서도 환자가 사망하는데 예측이 불가능한 문제에 폭넓게, 산업적으로 다가서는 것은 국민건강을 우선하지 않는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이비인후과의사회 황찬호 회장은 산업계가 의료시장에 들어오기 위해선 의사와 환자의 관계를 먼저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황 회장은 "기업은 이윤추구집단으로 진료에 대한 이해도가 낮다. 초진을 허용해 달라는 부분만 봐도 그렇다"며 "플랫폼이 의료시장에 들어오려면 의사와 환자의 관계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진료는 만남이다. 환자 상태 파악에선 만남이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비대면진료는 구멍이 많다. 실제 안전성과 유효성이 검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도입하면 위험하다"며 "산업계가 먼저 스스로의 안전성을 입증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의료계에 어필해 설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정의학과의사회 강태경 회장은 비대면진료로 오히려 의료취약지 문제가 심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강 회장은 "지금은 도서벽지라도 몇 명의 환자를 보기 위해 의원이 남아있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비대면진료로 이 환자마저 사라지면 이런 의원도 사라지게 될 것"이라며 "비대면진료를 경험한 일선 의사들이 손해가 없음에도 이를 반대하는 것은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경험한 이들이 반대를 무시하고 제도화를 밀어붙이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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