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의료진, 병원이 모두 만족하는 병원. 스마트병원 시스템을 선제적으로 구축하고 그 길을 가고 있는 병원들의 한 목소리로 말하는 최종 목표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정신'이 뒤따라야 한다는 데도 공감을 표시했다.
그럼에도 일부 대형병원을 제외한 중소병원들이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는 만큼 '디지털'에 투자하기에는 현실적으로 무리가 있다는 시선이 존재했다.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은 23일 '공공병원의 미래, 스마트병원에서 길을 찾다'를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었다. 심포지엄에서는 보건복지부가 추진한 '2020년 스마트병원 선도모델 개발 지원 사업'에 선정돼 시스템을 구축한 병원들의 현재가 소개됐다.
복지부는 사업 첫해인 2020년 일산병원, 분당서울대병원, 서울성모병원, 동산의료원, 용인세브란스병원 등 5곳을 선정하고 병원당 최대 20억원의 예산을 지급했다.
은평성모병원, 시행착오 끝에 '보이스 EMR' 개발
정부 사업 대상 기관은 아니지만 권순용 대한디지털헬스학회장(서울성모병원 정형외과) 은평성모병원 개원 당시 스마트병원 시스템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도전을 이야기했다.
권 회장은 내부적으로 TFT까지 꾸리고 의료로봇 도입, 키오스크 적용 확대, 실시간 모니터링 보드 설치, QR 및 바코드 확대, 환자용 애플리케이션, 의료진용 모바일 EMR 등의 다양한 시도를 공개하며 환자와 의료진의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는 결과를 공유했다.
다양한 시도 끝에 찾아낸 성공적인 스마트 시스템은 '보이스(Voice) EMR', 일명 음성 차트라고 소개했다. EMR 차트를 목소리로 입력하는 시스템이다.
권 회장은 "EMR은 의사를 번아웃 시키는 주된 요인이다. 차트를 쓰는 게 싫어서 의사를 그만둔 사람도 있다"라며 "미국에서 발표된 논문에는 EMR을 시간을 잡아먹는 괴물이라는 표현까지 쓰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미 해외에는 보이스 EMR 시스템이 상용화되고 있었지만 언어적 장벽 때문인지 국내에서는 제대로 된 시스템이 없었던 터. 당시 은평성모병원은 3년 동안 보이스 EMR 개발에 집중했다. 의사와 환자의 소통을 원활히 하고 EMR 차트 입력시간을 줄임으로써 환자 돌봄 시간이 늘어나며 데이터를 표준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권 회장은 "음성으로 차트를 기록하는 시스템은 코로나 대유행에서 특히 빛을 발했는데 코로나19 중증전담병상에서 레벨D 보호구를 착용한 의료진의 의무 기록 작성에 획기적인 도움을 줬다"라며 "현재 영상의학과, 병리과, 핵의학과, 간호 병동 기준 사용률이 45~95%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환자 안전과 생명을 보호하면서 의료의 질과 효율을 극대화하는 게 스마트병원"이라며 "현이상학적이긴 하지만 시행착오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는 정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일산병원 병실 자동화 시스템, 환자 활령 징후부터 위치 추적까지
일산병원은 복지부 지원을 받아 'i-smart 병원'을 구축하고 있다. 이 중에서도 병실 자동화 시스템에 대해 집중적으로 소개했다. 병실 업무를 자동화했고 위치동선 기반을 마련해 원내 감염 확산 방지를 위한 실시간 감시 시스템을 구축했다.
병실 자동화를 위해서는 냉장고 온도 모니터링 센서, 패치형 체온계, 신장계, 스마트링(맥박), 병동자산 추적(비콘), 수액 모니터링, 저울, 체온계, 혈압계에 투자했다.
그 결과 스마트기기 연동률, 적용 병동 범위가 늘었고 환자 위치확인 등록도 고위험 환자 군에서는 월평균 30~55건이 이뤄지고 있다. 낙상 고위험 환자가 층을 이탈하는 경우나 섬망과 인지장애가 있는 환자에 대한 위치 확인 등록이 특히 많았다.
일산병원 오성진 보험자병원정책실장도 "스마트병원의 길을 가려면 도전정신은 꼭 필요하다"라며 "10개를 시도하면 성공하는 것은 한두개다. 8개를 실패했다고 포기하지 말고 30개를 시도하면 5~6개는 성공한다는 도전 정신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일산병원 박민현 스마트병원혁신부장은 스마트병원 추진을 고려한다면 리더십과 유연한 조직문화를 1순위로 꼽았다. 더불어 선택할 수 있는 디바이스가 다양해야 하고, 프로세스가 사용자 기반으로 설정돼 있어야 한다고 했다. 또 네트워크 환경, 사용자 교육, 지속 유지관리 방안도 생각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분당서울대병원, 원격 중환자실 모니터링 및 협진시스템
분당서울대병원은 중환자실의 스마트화를 시도, 원격 중환자실 실시간 모니터링 및 협진시스템(e-ICU)을 구축하고 있다.
분당서울대병원은 e-ICU 통합관제센터를 구축해 원내 8개 ICU를 실시간으로 연결하고 현재 내부적인 유효성 평가를 통해 의미 있는 데이터를 모으기 위한 추가 시범운영을 하고 있다.
지난해 5월부터 6월 20일까지 약 한 달 동안 시범운영한 결과 전체 모니터링 중환자수는 5158명이었고 비대면 협진은 313건 이뤄졌다. 의사 4명과 간호사 12명을 대상으로 의료인 만족도를 확인한 결과 90% 이상 달성했다.
e-ICU는 병원 밖 의료기관과도 연계할 수 있다. 현재 이천의료원과 안성의료원이 참여하고 있는데, 예를 들어 이천의료원 중환자실 환자의 산소포화도가 떨어지면 분당서울대병원 e-ICU 통합관센터에서 이상징후 알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때 센터에 있는 전담전문의가 환자 상태를 파악해 이천의료원 전공의와 협력해 처치를 완료할 수 있다.
e-ICU 통합관제시스템은 거점병원 협력병원 사이 연결 현황을 확인할 수 있다. 비대면 협진 요청도 웹카메라를 통해 환자 상태 공유를 할 수 있다.
유수영 헬스케어ICT연구센터장은 "우리나라 중환자실 자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e-ICU 시스템은 효율적 모니터링과 관리를 가능케 한다"라며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서는 현장형 정책에 대한 고민과 거점병원에 대한 지원 검토, 더불어 전국 확산을 위한 확산 시범사업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기적 관점에서 거점병원 e-ICU 통합관제센터 운영에 필요한 상주 의료진 추가 고용, 야간 인력 도입 등에 따른 인건비 지원이나 수가 적용에 대한 정책 지원을 제안했다. 전국 e-ICU 네트워크 구축 필요성도 이야기했다. 전국을 14개 권역으로 나누고, 중환자실 적정성 평가결과 1등급 기관 중 상급종합병원 및 지방 거점 국립대병원을 통합관제센터로 지정하는 방식이다.
대형병원도 스마트병원 만들기에 쉽게 뛰어들지 못하는 이유는?
이처럼 병원들이 '스마트병원' 시스템 구축을 위해 뛰어들고 있지만 쉽사리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이지선 미래의료팀장은 "의료현장이 보수적인 데다 재정구조에서 IT에 투자할 수 있는 여력이 되는 곳은 상급종병 말고는 지엽적"이라며 "큰 병원도 스마트병원을 처음 시작하는 게 굉장히 어렵다. 기술 도입 차원을 넘어 시스템을 병원에 안착시키기 위해서는 수천명의 직원을 독려하고 저항을 해소하기 위한 힘든 과정도 있다"고 현실의 어려움을 이야기했다.
그렇기 때문에 모델병원이 필요하다는 게 이 팀장의 생각.
그는 "800~1000병상이 되는 병원 중 테스트베드로 작용할 수 있는 병원이 많지 않다"라며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에서 스마트병원이 이뤄낼 새로운 가치 측정을 보험자병원이 공공병원으로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산병원과 스마트병원 시스템 구축에 힘쓰고 있는 홍성표 피플앤드테크롤로지 대표 역시 현실의 열악함을 토로했다.
홍 대표는 "회사 대표들은 모든 의사결정을 내릴 때 지금 당장 손해를 보더라도 시장의 성장 잠재력에 배팅을 한다"라며 "2020년 일산병원과 함께 스마트의료 서비스에 배팅을 했는데 아직까지는 조금 외롭다. 지금보다 관련 시장이 더 커지고 발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 신욱수 공공의료과장은 "스마트병원이 단지 최신 의료기기를 도입한다든지 최신 솔루션을 설치한다는 데 그쳐서는 안되고 환자안전 강화, 진료역량 향상 등 가치를 높이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라며 "현재 공공의료기관은 스마트병원 시스템을 도입할 수 있을 정도의 기반이 열악한 만큼 현재 적용 가능한 스마트병원 시스템에 대해 고민하고 상시 지원할 수 있도록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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