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이 의료법 위반이 아니라는 대법원 판결에 의료계 내부갈등이 격화했다. 의과계는 국민건강 훼손 우려로 각을 세우는 반면 한의계와 간호계는 모든 의료인의 현대 진단기기 사용을 촉구하는 모양새다.
23일 의료계에 따르면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전날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한 한의사에게 의료법 위반으로 벌금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앞선 판결에선 초음파 검사는 현대의학적 전문지식이 필요해 한의사 사용이 불법이라는 판단이 나왔다. 하지만 이번 판결에서 진단 보조의 목적이라면 한의사도 사용할 수 있다고 결과가 뒤집힌 것.
관련 법령에 이를 금지하는 규정이 없고 초음파 투입에 따른 부작용이 보고된 바 없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이 같은 판결이 나왔다고 해서 곧바로 한의원 초음파 검사가 국민건강보험 적용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게 대법원 입장이다.
의과계는 격하게 반발하고 있다. 한의사의 초음파기기 사용은 정확한 진단을 보장하기 어려워 국민건강에 위해를 끼친다는 이유에서다. 직역 간 경계가 무너져 비표준화된 진료가 제공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대한의사협회는 성명서를 내고 이번 대법원 판결은 각 의료직역의 전문성과 경험을 고려하지 않고 면허의 경계를 파괴해 버리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이는 무면허의료행위를 부추겨 국민 생명과 건강에 심각한 위해를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다.
특히 초음파기기를 통한 진단은 고도의 전문성과 숙련도를 필요로 하는 의료행위로, 단지 기기가 인체에 무해하니 안전하다는 것은 판단은 비전문적인 시각이라고 꼬집었다.
의과계에서도 영상의학과 전문의나 의과대학에서 영상의학과 관련 이론 및 실습을 거친 의사만 이를 수행할 수 있는데, 이를 한의사에게 허용하는 것은 환자의 생명과 건강에 악영향을 끼칠 것으로 봤다.
의협은 "이번 대법원의 판결로 발생할 현장 혼란, 국민보건상 위해 발생 가능성 및 이로 인한 국민 피해에 극도의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이번 판결로 발생할 피해는 온전히 대법원이 책임져야 할 것"이라며 "국회와 보건복지부는 즉시 의료인의 면허범위를 보다 구체적으로 확정하는 의료법령 개정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이번 판결을 계기로 한의사들이 의과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등 면허 범위를 넘어서는 무면허의료행위가 우려된다"며 "이를 지속적으로 시도한다면 국민건강에 심각한 위해를 줄 수 있는 불법의료행위로 간주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총력 대응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울특별시의사회는 현대 진단기기는 그 자체의 위해 여부가 아닌 이를 통한 오진 가능성을 봐야 한다고 꼬집었다. 한의사가 초음파기기를 사용함으로써 환자의 적절한 진단과 치료의 시기를 놓쳐서 발생하는 문제를 따져야 한다는 것.
또 이 같은 의료행위가 국민건강보험에서 인정되지 않는 것을 들어 의료법에 저촉되지 않을 수는 있어도 국민건강보험법상 불법이라고 강조했다.
의사 역시 국내 신의료기술 등재 및 급여화 미비 등으로 해외에서 도입된 진단·치료법을 시행하지 못하는 상황을 들어, 대법원 판결이 대한민국 면허제도에 반한다고도 지적했다.
서울시의사회는 "이번 판결로 위해를 입게 되는 것은 환자들로 그 후폭풍이 두려운 수준이다"라며 "이번 판결로 발생하는 국민적 위해에 대한 책임을 누가 책임을 질 것인지에 대한 기준도 법원이 마련해야 한다. 본회는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에 대한 대법원 판결을 되돌리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규탄했다.
대전광역시의사회는 이번 판결이 대한민국 의료질서를 파괴하고 국민의 건강을 한 번에 무너트리는 사건이라고 규탄했다. 소아청소년과 병동 폐쇄 등 필수의료 붕괴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서 이 같은 판결을 내놓는 것은 보건의료체계 붕괴를 부추길 것이라는 지적이다.
추나요법 급여화 및 한방 자동차보험 인정 등 기존 의과 영역을 한의과로 확장하면서 있었던 진료비 급증도 문제로 지적했다. 초음파기기마저 인정한다면 건보 재정 부담이 더욱 가중될 것이라는 우려다.
대전광역시의사회는 "한의사의 초음파기기 사용인정은 새로운 변법적 사용을 부추겨 의료비 낭비를 초래한다"며 "더욱이 현재 한의원에서 처방·조제하는 내역에 대해 의학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있어 의사와의 진료 정보 교류가 전무한 상태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처방내역에 대한 의학적 검증도 할 수 없고 한의원 내에서 알 수 없는 임의조제를 하는 실정이다"라며 "한의 진료내역에 대한 표준화된 검증도 없이 진료수단과 영역에 대한 무분별한 확대허용은 비표준화된 진료를 통한 국민건강을 심각하게 훼손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는 의료법에 한의사 초음파기기 사용을 허용한다는 조항이 없음에도, 이를 근거로 한 판결을 내리지 않은 것을 들어 대법원이 그릇된 판단을 내렸다고 비판했다.
한의사 초음파기기 사용이 보건위생상 위해가 없다는 판단 역시 이를 왜 사용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암·맹장·장중첩증 등 위급한 질환을 한의사가 초음파검사하는 경우 오진 문제가 심각해질 것이라는 우려다.
또 전원재판부에 참여한 판사의 남편이 한의사인 것을 들어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구성이라고 지적했다.
소청과의사회는 "한의사에게 초음파 검사를 받고 신뢰가 가지 않는 분들은 본 의사회로 연락하시면 검사비를 지원해 결과를 교차 검증하는 캠페인을 진행할 것"이라며 관련 사례를 모아 대법원 판결이 국민건강을 위한 판결인지, 아니면 망치는 판결인지 증명하겠다"고 강조했다.
한의계와 간호계는 이 같은 대법원 판결을 환영한다는 입장이다. 대한한의사협회와 대한간호협회 모두 이를 정의롭다고 평가하며 모든 의료직역의 현대 진단기기 사용을 촉구하는 상황이다.
한의협은 한의학이 현대 과학의 발달에 발맞춰서 현대화 노력을 지속하고 있으며 이는 국민의 요구라고 강조했다.
또 현대 진단기기는 의과 의사들이 발명한 것이 아닌 현대 문명의 산물이며, 현대 의료인은 이를 각자 진료에 활용할 권리가 있다고 전했다.
한의협은 "이번 대법원의 판결은 국민의 건강증진과 보건향상이라는 국가정책을 해결하고, 국민의 진료선택권을 보장하는 획기적인 전환점이 될 것"이라며 "한의계는 초음파기기를 비롯한 현대 진단기기를 교육·연구·학술·진료 등에 적극 활용해 최상의 한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간협은 이번 판결이 모든 의료직역이 현대 진단기기를 사용할 수 있는 단초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기존에 의료법은 면허 범위 외의 의료행위가 무엇인지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하지 못했는데, 이번 결정은 이를 수행하는 것이 의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해줬다는 분석이다.
간협은 "이번 판결로 한의사는 물론 치과의사·조산사·간호사 등 다른 의료인에 대해서도 합리적인 판단 기준이 제시될 수 있기를 바란다"며 "모든 의료인이 각자의 학문 지식과 역량,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른 현대 진단기기를 안전하고 합리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 장치가 마련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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