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가 마련한 필수의료 대책이 오히려 전공의들의 미래를 암울하게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는 수술실 공백을 없애는 계획일 뿐 기피과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주장이다.
28일 열린 2022년도 하반기 KMA POLICY 세미나 겸 워크숍에서 보건복지부가 마련한 '건강보험 지속성 제고 및 필수의료 지원 대책'에 대한 점검과 문제제기가 이뤄졌다.
연세대학교 보건정책 및 관리연구소 박은철 소장은 '필수의료 정의와 활성화 방안' 주제발표를 통해 우리나라 필수의료의 문제와 복지부 대책을 설명했다.
박 교수는 우리나라 필수의료 문제로 미흡한 중중·응급 환자 대응체계를 꼽았다. 병원 간 연계·협력이 부족해 지역 내 대응에 한계가 있다는 설명이다.
이와 함께 필수의료분야 유인책 부재로 인력 유입이 줄어 분만·소아진료 기반 약화를 우려했다. 지역별 분만진료 격차가 발생하고 있으며 소아 중증·응급진료 접근성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
그는 보건복지부가 관련 대책의 주요 과제로 ▲지역완결적 필수의료 제공 ▲적정 보상 지급 ▲충분한 의료인력 확보를 추진하는 상황을 조명했다.
지역완결적 필수의료를 제공하기 위해, 응급의료기관이 지역 내에서 최종치료를 책임질 수 있도록 하는 체계를 구축하고 각자의 진료역량을 강화해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현행 권역응급의료센터를 중증응급의료센터로 바꿔 지역 내 중증응급환자에게 최종치료를 제공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 그 숫자 역시 기존 40개에서 50개로 늘어날 전망이다.
기존 지역응급의료센터는 일반응급의료센터로 바꿔 비중증 응급환자에 대해서만 최종치료를 제공하고, 중증응급환자는 1차로만 수용하는 등 역할도 나눠진다. 지역응급의료기관은 24시간 진료센터로 바꿔 경증·비응급 환자에게만 최종치료를 제공한다.
이 같은 기관들의 협력체계를 강화하기 위해 '응급전원협진망' 등 핫라인을 구축해 신속한 전원 지원이 이뤄지도록 할 방침이다.
분만·소아진료 접근성 강화와 관련해선 분만취약지를 우선 지원하는 등 지역 특성을 고려한 지원책을 마련한다. 또 위험도를 중심으로 산모·신생아 진료체계를 개편하고 중증 소아환자 진료기반을 확충할 계획이다.
적정 보상 지급을 목적으로 공공정책수가가 도입되는 상황도 조명했다. 이는 개별 행위 및 서비스 제공량을 기준으로 보상하는 기존 수가체계에서 벗어나 기관·협력체계, 서비스 질 및 성과, 수요·공급 등 지역 특성을 고려해 보상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이를 응급진료, 중증질환 치료, 분만·소아진료 등에 우선 적용해 보상·지원책을 확대한다는 것.
박 소장은 "우리나라 필수의료 문제는 회색코뿔소와 같다. 개연성이 높고 파급력이 큼에도 사람들이 그 위험성을 간과하고 있다"며 "모든 의료는 필수의료지만 중증질환, 의료·비용 효과성 등을 기준으로 우선순위를 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진 지정토론에서 대한외과의사회 이세라 총무부회장은 정부 주요 정책 방안이 전공의 기피과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정책은 대학병원 응급실·수술실 등을 공백 없이 지켰을 때에만 보상을 지급하는 방식이라는 지적이다.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 전공의들은 기피과라도해도 아무런 혜택을 받을 수 없다는 것.
이 총무부회장은 우리나라 의료체계의 진짜 문제는 의사의 긴 노동시간과 많은 업무량이라고 지적했다. 저수가로 우리나라 의사는 수익을 내기 위해 시간당 25명꼴의 환자를 봐야하는 실정이라는 설명이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외래환자수와 입원일수가 일본과 함께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것. 이런 상황에서 보장성까지 강화되면 의료 소비가 과다하게 증가할 것이라는 우려다.
그는 왜곡된 의사 업무량이 진짜 문제인데도 관련 논의가 차순위로 밀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복지부가 필수의료 대책을 추진하며 의대 정원 증원을 시도하는 상황을 문제로 지적했다. 의료계가 이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이 총무부회장은 "이번 필수의료 대책은 기피과 전공의에 미래를 제시하는 내용이 빠진 채 진행되고 있다"며 "증액 없는 필수의료 대책은 비합리적이다. 다만 진찰료 인상에 다른 방식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필수의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건강보험제도, 특히 기피과가 발생하게 된 원인과 의사업무량을 현실에 맞게 상향 증액하는 것이 보다 중요하다"며 "의료정책 문제는 한 가지만 해결해서 풀리지 않는다. 하지만 정부는 언제나 그렇듯 한 가지 문제에만 집착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문석균 조정실장은 '필수의료 관련 인식조사' 결과를 공개하며 국민·의사가 원하는 필수의료 대책을 제시했다.
이 조사에 따르면 국민 응답자 다수가 보장성 확대가 필요한 질환을 중심으로 국민건강보험을 통해 국가 지원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의사의 경우 생명과 직결된 의료행위를 중심으로 수가 정상화 및 사고에 대한 법적 보호가 이뤄져야 한다는 데 뜻이 모였다. 이 같은 인식을 봤을 때 공통적으로 외상·심뇌혈관질환 등 긴급한 분야를 지원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는 것.
이와 관련 문 조정실장은 "필수의료 문제는 별도 기금을 마련하거나 예산을 확대해 지원해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필수의료 분야 지원을 위한 예산을 별도로 편성해 확대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며 "민간의료기관의 공공·공익적 기능에 대한 정부 지원과 의료사고 및 분쟁 관련 법제도적 정비, 의사 당직 및 근무시간 개선 등 제도적인 지원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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